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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윤지훈 죽음은 예정돼 있던 것">
2011-03-20

(서울=연합뉴스) 이연정 기자 = 두꺼운 뿔테 안경 뒤로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꼭 소년 같다. "드라마 재밌었다"는 말에 연방 웃으며 손짓 발짓을 곁들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모습은 동네 아저씨 같기도 하다.

그런 그가 연출을 하고 극본까지 쓴 드라마는 바로 SBS 수목극 '싸인'. 결코 쉽지 않은 드라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권력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되고, 이를 막으려던 남자 주인공은 결국 순교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그가 이런 불편한 드라마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과연 뭘까.

지난 17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싸인'의 장항준 감독을 만났다.

드라마가 주인공 윤지훈(박신양 분)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 데 대해 장 감독은 "보통 진실이니 정의니 하는 것들은 책에만, 그것도 아주 고리타분한 도덕책에만 있다"면서 "현실에서 그 가치를 논하는 사람들이 거의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정의라는 것, 진실이라는 것을 지키는 것이 때론 얼마나 고통스럽고 또 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윤지훈의 죽음은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면서 "박신양씨한테 '윤지훈이 20회에 죽는다. 그것도 초반에 죽어서 그 회에는 거의 출연분이 없는데 괜찮겠느냐'고 말했고 박신양씨도 선뜻 동의했다"고 소개했다.

장 감독은 "'싸인'은 진실과 정의라는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서 "윤지훈이란 인물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그가 우리 사회에는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그는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 등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영화들은 대개 코미디였고, 방송에서는 개그맨 못지않은 입담을 과시해 KBS '야행성'에서는 고정 출연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런 장 감독이 부검 장면이 가득한, 그것도 정의와 진실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안고 있는 드라마를 떠올린 건 10여년 전 만난 한 법의관 때문이었다.

장 감독은 "12년 전쯤인가, 부검의(그때는 법의관 대신 부검의라는 표현을 썼다고 설명)와 형사의 사랑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여자 부검의를 소개받아 취재를 했다. 그때는 부검의라는 직업에 큰 의미를 부여한 건 아니어서 대충 어떤 식으로 일하나 보는 수준이었다"고 운을 뗐다.

"끝으로 그분한테 '본인 직업을 작품에서 그리게 될 텐데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분이 뜻밖의 이야기를 하더군요. '우리는 죽은 사람의 대변인 같은 존재다'라는. 그분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법의관이 이런 직업인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 후 법의학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러던 차에 드라마를 할 기회가 왔고, 장 감독은 부인 김은희 작가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왕 하는 거 여의도(방송가)에서 안 하는 걸 하자"며 '싸인'을 구상했다. 법의학이라는 소재가 영화에서는 새로울 게 없지만 드라마에서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

하지만 욕심과는 달리 쉽지 않은 길이었다. 장 감독은 "배우들과 함께 8개월여 간 시신 검안 현장 등을 따라다니고 법의학 책을 뒤져가며 공부했고 대본에 쓸 사건을 구상하기 위해 사건기록 200여개를 훑었다"며 웃었다.

무거운 주제 때문에 흥행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사실 '싸인'은 1차 편성심사에서 탈락했지만, 드라마 하나가 무산되는 바람에 대타로 들어갔다"면서 "방송국에서도 두 자릿수 시청률이 나오면 성공이고, 만약 15%를 넘으면 대성공이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1회에서 16.1%의 시청률을 기록한 '싸인'은 12회에서 20%를 돌파한 뒤 지난 10일 방송된 마지막회에서 25.5%의 자체 최고 시청률(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을 기록했다. 제작진의 예상에 비하면 '초대박'을 기록한 셈이다.

'싸인'에서는 가수 서윤형 피살사건과 대기업 직원 연쇄 의문사를 비롯, 실제 사건을 연상시키는 사건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장 감독은 "물론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드라마에 나온 사건은 대부분 김은희 작가와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며 "픽션으로 봐 달라"고 했다.

"극 중 정우진 검사(엄지원 분)의 대사에 이런 게 있어요. 미군 사건 때인데, '우리는 너희들이 미군이라서, 피부색이 달라서 체포한 게 아니다. 너희들이 누군가를 죽였기 때문이다'라는 거죠. 그게 저희가 사건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장 감독이 꼽는 '싸인'의 명장면은 뭘까.

"미군 사건 때 다경이(김아중 분) 방에서 윤지훈과 이명한(전광렬 분)이 대립하는 장면이 있어요. 이명한은 '부검은 산 사람들의 질서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윤지훈은 '부검대에 올라오면 다 똑같은 사람이다. 누구도 죽음을 방조하거나, 죽음에 동참할 권한은 없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이 왜 대립할 수밖에 없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인데 지금도 대사를 잘 썼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하지만 그가 가장 좋아한 캐릭터는 윤지훈도, 이명한도 아닌 여검사 정우진이었다.

장 감독은 "정우진은 속물인데 정의롭게 변하는 캐릭터"라면서 "묘한 양면성을 지닌 인물인데 엄지원 씨가 자기 식으로 잘 소화해냈다"고 칭찬했다.

'싸인'은 탄탄한 대본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한국 메디컬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는 호평을 얻었지만, 방송사고의 오명도 피하지 못했다.

무리한 촬영 스케줄로 마지막회 방송 도중 컬러바가 뜨고 후반 20여분 간은 음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등 '생방송 드라마'의 한계를 드러낸 것.

장 감독은 "사실 한 주에 72분짜리 두 편을 만든다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다. 이런(법의학) 드라마는 사전제작제로 가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못 됐다"면서 "야외촬영이 많고 부검신에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결국 사고가 터졌다"며 안타까워했다.

방송 사고로 유종의 미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싸인'이 한국형 수사드라마의 모델을 제시한 건 부인하기 힘들다. '명품 드라마' 싸인의 시즌 2를 볼 수 있을까.

"'싸인'은 시즌제를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든 드라마입니다. 저와 김은희 작가는 생각 안 하고 있어요. 박수칠 때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rainmaker@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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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