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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한 죽음의 위기에 놓인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 <히어애프터>
강병진 2011-03-23

첫 번째 오해. <히어애프터>는 재난영화인가. 영화의 초반부, 타이를 휩쓰는 쓰나미의 가공할 위력을 묘사한 장면 덕분에 <히어애프터>는 2011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히어애프터>는 <2012>나 <딥임팩트> <해운대> 같은 재난영화가 아니며 펑샤오강의 <대지진>처럼 재난이 남기고 간 상처를 가족애로 위무하는 영화도 아니다. 두 번째 오해.<히어애프터>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소재로 한 스릴러영화인가? 죽음 너머의 세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스릴러영화는 아니다. 세 번째 오해는 <히어애프터>가 <식스 센스> 같은 영화와 비슷할 것이란 예상으로 두 번째 오해와 맞물린다. 극중에서 맷 데이먼이 연기한 조지가 죽은 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심령술사이기 때문에, 죽은 자들을 볼 수 있었던 <식스 센스>의 말콤(브루스 윌리스)을 연상시킬 수는 있지만 이 영화에는 그처럼 발설하고픈 반전의 스포일러가 없다. <히어애프터>는 죽음 너머의 삶에 집착하게 된 세 사람이 현실을 돌아보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하는 성장드라마에 가깝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던지는 질문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에 가깝다.

세 사람 가운데 첫 번째 인물은 프랑스의 대표 아나운서인 마리(세실 드 프랑스)다. 타이에서 애인과 밀월여행을 즐기던 그녀는 쓰나미에 휩쓸려 사후세계를 경험한 뒤, 죽음의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샌프란시스코 항구의 하역노동자인 조지(맷 데이먼)는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를 이어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남자다. 한때 돈 잘 버는 심령술사였지만 지금 그는 죽은 자들과의 관계가 산 자들과의 관계를 잠식해버리는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런던에 살고 있는 소년 마커스(프랭키 맥라렌)는 쌍둥이 형제를 잃은 뒤, 죽은 형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마리는 자신의 경험을 함께 믿어줄 사람을 원하고, 조지는 삶의 안식을 찾고 있으며, 마커스는 죽은 형과의 재회를 갈망하지만 뜻대로 되는 건 없다.

<히어애프터>가 재난영화일 것이란 첫 번째 오해는 나머지 두 오해에 비하면 그나마 타당하다. 예기치 않게 들이닥친 재난과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볼 때, <히어애프터> 또한 그처럼 거친 운명을 버티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쓰나미와 함께 <히어애프터>가 묘사하는 또 다른 재난은 테러다. 지난 2004년 실제 타이를 휩쓸었던 쓰나미를 영화의 무대로 설정했듯이, 이 또한 지난 2005년에 벌어진 런던 지하철 테러사건을 가져온다. <프로스트 vs 닉슨>의 작가 피터 모건이 쓴 시나리오를 거의 고치지 않고 연출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지금의 세상이 그처럼 언제 어디서 누구든지 지금 당장이라도 겪을 수 있는, 그래서 너무나 만연한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영화에서 극중의 마리는 쓰나미 때문에 죽음을 경험했지만 마커스는 <그랜 토리노>의 청소년 갱단과 흡사한 아이들에게 형을 잃었다. 조지의 능력은 어린 시절 척수염 수술을 받다가 생겨버린 저주다. 악의 무리가 판치는 서부, 1945년의 이오지마섬, <그랜 토리노>가 묘사한 미국의 뒷골목, <체인질링> 속 대공황의 LA, 그리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그려낸 사각의 링과 실제 현실은 다를 게 없는 셈이다.

<히어애프터>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전작과 비교할 때, 밀도가 낮은 영화다. 죽음에 대한 인물들의 감정적인 비통함은 그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사색적인 시선에 갇혀 종종 비어 있는 순간을 연출한다. 다만, 여전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인식하는 세상, 그리고 그 속에서 보고자 했던 인물들의 모습이 연결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뜻하지 않게 어딘가 버려진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으로 버티는 풍경을 그려왔다. 죽은 자나 다름없는 <히어애프터> 속의 인물들 또한 어떤 기적적인 만남을 통해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의 단초를 발견한다. 한 인터뷰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렇게 말했다. “저세상에 뭐가 있는지는 모른다. 저세계에 뭐가 있고 없는지에 대해서 저마다 믿는 바는 있지만 모두 가설일 뿐이다. 가봐야 아는 거 아닌가. 어쨌든 이 세계에서 죽음은 종착지니까.” 죽음이 도처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인식은 지진과 쓰나미에 고통받고 있는 지금의 일본과 결부지을 때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살아남았다면, 또 다른 재난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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