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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와시코우스카] 고딕 러브스토리 속 소녀 본색
이화정 2011-04-11

<제인 에어> 미아 와시코스카

27번째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탄생했다. 팀 버튼의 뮤즈로 주목받은 지 근 2년. 미아 와시코스카의 필모그래피는 이번에도 ‘점프’ 수준이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눈빛, 수식이 없는 악센트, 귀족적인 마스크, 완벽에 가까운 비율의 몸매…. 와시코스카를 할리우드 캐스팅의 핵심에 서게 한 무수한 근거. 와시코스카는 그 근거들을 새로운 ‘제인’에게 적용시킨다.

“무조건 와시코스카를 캐스팅할 것!” <레스틀레스>로 먼저 미아 와시코스카와 작업한 구스 반 산트가 그녀를 담보하고 나섰다. 영화, 드라마 통틀어 27번째 <제인 에어>. 1914년 존 찰스 감독이 영화화한 이후 족히 5년에 한번씩은 새로운 제인이 탄생했다. 거쳐간 여배우의 수만큼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는 역할이었다. ‘제인’을 연기할 배우를 물색하지 못해 고민하던 캐리 후쿠나가 감독은 구스 반 산트의 조언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정략결혼을 하기 싫어 안달했던 팀 버튼의 ‘앨리스’(<앨리스 인 원더랜드>)가 코르셋을 벗기도 전, 와시코스카는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이 즐겨 쓰던 보닛과 드레스를 다시 한번 챙겨 입어야 했다. “다들 시대극 의상을 입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불평한다. 몸을 구부리지도 팔을 들어올리지도 못하니까. 그런데 난 멋도 모른 채 그걸 입기 시작했다.” ‘시대극이 여배우에게 제공하는 상관 관계’가 있다면 와시코스카에게만은 그 모종의 의미를 적용시키기 힘들어 보인다. 와시코스카의 캐스팅 스토리는 그러니까 <엠마>가 ‘<쎄븐>의 브래드 피트의 상대역’인 기네스 팰트로를 스타덤에 올리는 기폭제가 되었다거나, <슈팅 라이크 베컴>과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주목받던 신예 키라 나이틀리가 <오만과 편견>으로 드디어 여배우로서의 지위를 획득한 극적 스토리와는 별개로 분류해야 한다. <HBO>드라마와 영화 몇편에 단역으로 출연한 게 전부였던 호주 출신의 신예는 팀 버튼의 뮤즈가 되어 발음조차 하기 힘든 와시코스카라는 이름을 단번에 각인시켰고, <에브리바디 올라잇>에 줄리언 무어와 아네트 베닝이 연기한 레즈비언 커플의 딸로 적지않은 존재감을 내비치더니 곧이어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구스 반 산트와 작업을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그러니 코스튬 의상쯤이야! 이 모든 게 고작 2년이 채 안된 사이 일어난 실제 사건이다.

다른 ‘제인 에어’와 다른 점

수잔나 요크, 사만다 모튼, 샬롯 갱스부르 등의 여배우를 거쳐 반세기 이상을 당당히 살아남은 캐릭터. 샬롯 브론테의 고집을 반영한 빅토리아 시대의 당찬 여성이 제인이다. “<제인 에어>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고딕 스토리다. 그러니 제인은 말랑말랑한 연애담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내 또래 배우들이 할 수 있는 뻔한 캐릭터와는 다른 무언가를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었다.” 제안을 받기도 전, 제인을 연기하고 싶었다는 와시코스카의 말이다. <앨리스 인 원더랜드>의 촬영을 마치고 원작인 <제인 에어>를 읽었다는 그녀는 프로젝트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에이전시에 먼저 ‘혹시 이 책으로 쓴 시나리오가 있는지’ 물었다. 두달 뒤, 후쿠나가 감독이 ‘제인’을 찾는다는 연락이 오면서 와시코스카의 제인이 탄생했다. 숙모의 학대에 시달리던 고아소녀, 로우드 자선학교의 비인간적인 처사에도 굴하지 않았던 사춘기의 숙녀, 그리고 어두운 베일에 싸인 손필드 저택에서의 당찬 가정교사. 손필드가의 주인 로체스터와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키우기까지 여성 제인은 온전히 극을 이끌어나가는 주체다. 잿빛 드레스를 입으면서 와시코스카의 하얀 피부는 극도로 강조됐고, 어릴 적부터 발레를 한 그녀의 가녀린 몸이 한층 살아났다. 팀 버튼이 극찬한 ‘또래의 어린 배우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어른스런 눈빛’이 상대를 쳐다보는 제인의 눈에 심각함을 더했고 호주 출신임을 나타내는 수식이 없는 또박또박한 발음이 순박함을 보충했다. 앞서 갱스부르가 연기한 제인이 아집으로 똘똘 뭉쳐 보는 이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와시코스카는 제인에게 전에 없던 우아함과 순종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갱스부르의 제인이 조금 더 원작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제인들 중에 와시코스카가 새로운 족적을 남긴 점은 평가할 만하다.

올해 21살. 9살 때부터 발레를 했고, 그녀에게도 미친 듯이 발레 연습에만 매달렸던 시절이 있었다. 발레는 수줍음 많던 그녀를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면역을 주었지만 끊임없이 요구되는 혹독한 자기관리와 짧은 수명은 한편으로 불안한 압박이기도 했다. <피아노>의 홀리 헌터의 연기를 보고 배우에 대한 꿈을 키웠다는 와시코스카는 이제 완벽한 이미지의 세계인 발레 대신, 조금 거칠긴 해도 현실에 더 발을 붙인 연기에 몰두하려 한다. 사진작가인 부모. 특히 가족을 소재로 엄마가 진행한 프로젝트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노출되었던 경험 역시 지금의 그녀에겐 발레 못지않은 연기 자산이다. “항상 엄마의 사진에 찍혔는데 그게 너무 재밌었다. <제인 에어> 때는 의상팀에 부탁해 드레스에 비밀 주머니를 만들어 달래서 촬영장에서 롤라이 플렉스 카메라를 항상 넣고 다니며 촬영을 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역으로 내가 찍는 게 너무 재밌다.” 지난해 디카프리오와 팀 버튼 사이에서 ‘최고의 흥행배우’ 2위에 오르며 이미 스타성을 입증했지만, 아직 와시코스카에게 그 지위를 즐기는 건 요원한 일인가 보다. 역시 촬영이 없을 땐 호주의 고향집으로 직행한다는 그녀. “스타로서의 삶이라고? 그럴 리가! 여전히 집에 가면 쓰레기통 비우러 집 밖에 나간다. 집에 가면 편해지는 것도 그래서고.” 뭐, 이 소녀가 자기 현실을 어떤 식으로 피력하건 간에 전도유망한 그녀의 다음 프로젝트 중엔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도 포함된다. “호주 출신 여배우 클럽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않나. (웃음) 근데 <스토커>에선 니콜 키드먼이 내 엄마 역할로 나올 것 같다. 어쩌면 니콜의 집에 가서 함께 베지마이트(호주식 스프레드)를 먹으면서 담소를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흥분돼 죽겠다.” 금세 또래 소녀의 본색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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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판씨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