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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아우슈비츠; 미학과 현실의 경계
황두진(건축가) 2011-04-21

<쉰들러 리스트>의 무대가 된 유대인 강제노동수용소

‘건축가의 마음속에는 파시스트가 숨어 있다’는 농담이 있다. 건축은 혼란스러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인데 그 질서, 그리고 그 결과로서 효율 자체가 목적이 되면 결국 파시즘이 된다. 힐버자이머, 르코르뷔지에 등 골수 근대주의자들이 남긴 삭막한 도시계획안들을 보면 오히려 ‘건축가들이 파시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나’라는 생각도 든다.

내 마음속에도 미학적 파시스트가 숨어 있나 보다.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가장 강렬한 미학적 체험 가운데 하나는 군 복무 중 비품창고를 방문한 것이다. 그 안은 질서의 미학으로 충만했다! 중대에서 사용할 담요를 받으러 간 나에게 담당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원하는 것을 신속하게 찾아주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밖으로 나오면서 나는 새롭게 경험한 군대 미학의 정연함에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이에 반해 언뜻 보이는 부대 밖 지방 소도시의 풍경은 그야말로 시각적 카오스였다.

여기까지는 그냥 미학적 차원이지만, 질서와 효율이 인간을 말살하는 데 동원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 대표적인 장소는 아우슈비츠, 바로 <쉰들러 리스트>의 무대가 되었던 유대인 강제노동수용소다. 아우슈비츠는 독일어이고 폴란드어로는 오시비엥침이다. 지도를 보면 그야말로 유럽의 한복판, 교통의 요지다. 당시 어지간한 유럽 도시치고 이곳으로 유대인을 보내지 않은 곳은 없었다. 히틀러가 총대를 메자 전 유럽이 내심 기뻐하면서 따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우슈비츠에서는 모든 것이 반듯반듯하고 질서정연하다. 일부 건물들은 원래 폴란드 군의 막사로 건립된 것이다. 참혹한 전시물들, 그리고 전기철조망과 감시초소를 빼고 보면 그냥 환경이 획일적으로 조성된 건물의 집합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우연이었을까,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들의 모습이 여기에 겹쳐 보였던 것은? 그 유명한 정문 앞에 선 나는 도대체 위대한 자연주의자들인 한국인이 어째서 전세계에서 가장 삭막한 파시스트적 주거에 살게 되었을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차라리 아파트 단지 밖의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풍경이 이제는 더 희망적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