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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 내 엄지 다 바쳐 위닝 일레븐
김성훈 2011-05-13

투톱은 델 피에로, 반 니스텔루이. 미드필드는 데이비드 베컴, 폴 스콜스, 펩 과르디올라, 리오넬 메시. 포백은 게리 네빌, 프랑코 바레시, 스탐, 애슐리 콜. 골키퍼는 피터 슈마이켈. 후보 선수는 라울, 베르캄프, 오베르마스, 로이 킨, 피케… 등 주전 못지않게 화려하다. 유니세프 자선행사를 위해 결성된 해외 축구 올스타팀이냐고? 그럴 리가. 플레이스테이션의 축구 게임 <위닝 일레븐>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팀이다. 시즌 중에는 전술을 세우고 콘솔을 통해 선수가 되어 게임을 뛴다. 오프 시즌에는 선수영입을 하고 친선게임을 가진다. 그렇게 한 시즌을 소화하는데, 이를 ‘마스터리그’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게임상에서 55시즌을 치르고 있는데 단 한번도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게임당 평균 득점은… 자랑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여기서 그만하고. 뭐, 어쨌거나 <위닝 일레븐> 시리즈를 시작한 지 올해로 정확히 19년째다(소니와 코나미는 나한테 상줘야 한다. 이참에 ‘플레이스테이션3’를 어떻게 좀…. 퍽!).

수컷끼리 우정쌓기 딱 좋은 온라인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나 <포트리스>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위닝 일레븐>을 즐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축구가 좋다. 초등학생 때 차범근 축구교실에서 유소년 육성교육에 의해 길러졌지만 별 소득을 보지 못한 내가 톱클래스 선수가 될 수 있는 순간은 오로지 게임상에서뿐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씨네21> 기자가 된 지금까지 일주일 중 많으면 사흘, 적으면 하루 정도는 엄지손가락에 손금이 닳을 때까지 (게임을) 뛴다. 지금은 단 하루만 한다. 마감이 끝난 금요일 오전 9시부터 회사 출근하기 전인 낮 12시까지. 이때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다. 그런데 그냥 게임만 하는 게 아니다. 랩톱에 <풋볼매니저>(유럽에서 이혼 사유에 해당된다는 그 악마의 게임!)를 켜놓고 전술을 실험하고 유망주를 발굴하고, 축구잡지 <포포투>를 읽으면서 은퇴 선수들의 스토리를 공부한다. 주말마다 중계해주는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게임을 더 즐기기 위해서다. 이 정도 하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해설까지 직접 하는 경지에 이른다. 마치 배우가 자신의 캐릭터에 푹 빠져 있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일주일 중 단 세 시간이지만 마감하면서 받은 피곤함을 한방에 날릴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럼 샬케04의 노이어 골키퍼 영입하러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