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미디어를 섬기는 사람들
2001-03-09

시드니 루멧 감독의 <네트워크>

Network 1976년,

감독 시드니 루멧

출연 페이 더너웨이, 윌리엄 홀덴

EBS 2월24일(토) 밤 9시

시드니 루멧 감독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는 활동범위가 극히 넓은 연출자다. <허공에의 질주> <형사 서피코> <에쿠우스>, 그리고 <패밀리 비즈니스> 등 대표작에서 알 수 있듯 시드니 루멧 감독은 평이한 가족드라마에서 형사물, 그리고 연극의 영화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 손댔다. 스티븐 보레스 같은 평자는 감독에 대해 “심리드라마와 가벼운 오락물에서 가장 높은 효율성을 발휘하는 감독”이라고 논한 바 있다. 이러한 평가는 수긍할 여지가 있다. 시드니 루멧 감독이 TV 출신 영화감독이라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저예산 작품을 선호했으며, 제작기간과 예산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제작자를 흡족하게 하는 감독이었으므로. 따라서 감독에 대해 스타일이나 시각적 양식에서 단일한 지향점을 가졌다기보다는 ‘공생’의 드라마를 빼어나게 엮어내는 이야기꾼으로서 논하는 것도 그리 어긋난 평가는 아닐 것 같다.

뉴스 앵커 하워드 빌은 뛰어난 독설로 인기를 얻던 사람이다. 방송사 사장은 추락하는 시청률을 탓하며 그를 해고하려고 든다. 하워드는 생방송 도중에 자살할 것이라는 예고를 한다. 이 사건으로 방송사 내부는 일대 아수라장이 되지만 시청률은 금세 뛰어오른다. 기획부서에 근무하는 여성 다이아나는 하워드의 상품성을 깨닫고 사장을 설득해 계속 고용하도록 종용한다. 하워드의 프로그램은 인기를 회복하지만 일종의 기만적인 쇼가 되어버린다. 데뷔작 시절부터 시드니 루멧은 폐쇄공간을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네트워크>에서도 마찬가지로, 외부와 단절된 방송사 스튜디오에서 벌어지는 미디어 관련자들의 온갖 행태를 파헤친다. 영화는 후반으로 가면서 점입가경이다. 하워드는 자살소동으로 가까스로 시청률을 만회하지만 정신착란 증세를 보인다. 역설적인 것은 그를 보면서, 그리고 말과 행동을 따라하면서 시청자들이 즐거워한다는 점이다. 대중매체의 어이없는 신격화 현상, 그리고 이를 둘러싼 소동극을 다룬 <네트워크>에 대해 폴린 카엘 같은 비평가는 “메시아적인 소극”이라고 단정했다. 이미 1960년대에 정치인 암살, 경찰의 학생운동 진압 등의 과정을 TV 생방송으로 시청했던 미국인들에게 <네트워크>의 미디어 비판적인 태도는 환영받을 여지가 다분했다.

<네트워크>의 피터 핀치와 윌리엄 홀덴의 연기대결은 불꽃이 튄다. 특유의 독설을 쏟아붓는 피터 핀치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정작 관심이 가는 건 페이 더너웨이다. <네트워크>에서 페이 더너웨이는 출세를 목표로 삼고 동분서주하는 맹렬여성으로 분한다. “난 일을 제외하면 도무지 어울리는 게 없어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남자의 섹스 능력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평하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이같은 역할은 1970년대 당시 변화하는 영화 속 여성상, 즉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남성과 대등한 위치에서 일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후 여배우들에게 이상적인 모델처럼 받아들여지곤 했다. 따라서 같은 해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페이 더나웨이로서는 당연한 권리행사였던 셈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nuage01@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