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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의 시네마나우] 전쟁같은 영화만들기

이란에서 밀반출되어 칸에서 공개된 자파르 파나히의 다큐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는 미학적 혹은 형식적 차원의 제목이 아니다. 철저하게 정치적 차원의 제목이다. 지난 칸영화제의 폐막 이틀 전 공개된 자파르 파나히와 모즈타바 미르타마습의 다큐멘터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은 그것이 영화인 줄 알지만, 굳이 그것이 영화가 아니라는 두 사람의 주장에 동의한다.

칸에서의 필름 공수는 때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상영시간에 맞추기 위해 헬기를 동원하는 사례도 있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는 밀반출 방식을 취했다. USB 스틱을 케이크 상자에 숨겨 이란에서 칸으로 공수해 5월19일 칸영화제 60주년 기념관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곳에는 모즈타바 미르타마습과 자파르 파나히의 부인, 딸이 자리를 함께했다.

‘영화’는, 아니 이 ‘작품’은 노루즈(이란의 새해명절) 하루 전날, 가족들은 새해인사차 집을 비우고, 혼자 집에 남은 자파르 파나히의 일상을 담았다. 아침 식사를 하고 변호사와 통화를 한 뒤 락샨바니 에테마드(이란의 실력파 여성감독)에게 위로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영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1심에서 6년 징역형, 20년간 인터뷰와 외부활동 금지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현재 항소심 중이라서 집에 머물고 있다. 자파르 파나히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나의 차기작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영화연출 활동도 아니고, 인터뷰도 아니다.” 그리고 그는 지난해 정부로부터 제작 허가를 얻지 못했던 차기작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부모 몰래 대학에 합격한 여고생이 대학에 가서 등록을 해야 하지만, 부모에게 감금당한다. 그리고 그녀는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다. 파나히는 머릿속에 콘티를 다 짜두었다. 그 콘티 하나하나를 배우의 동선까지 설명해 나간다. 그가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은 슬프지만 감동적이다.

또 한편으로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는 동시대의 기록이다. TV에서 노루즈를 축하하는 불꽃놀이가 불법이라는 정부 발표가 뉴스로 흘러나오지만, 바깥에서는 불꽃놀이가 계속되고 있다. 파나히는 재미있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꺼내 그 장면들을 찍는다. 그리고 이제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는 마지막을 향한다. 쓰레기를 치우러 온 청년을 만난 파나히는 자신을 찍고 있던 디지털카메라를 집어든다. 그러고는 그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 아파트 바깥으로 나간다. 대학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청년과의 대화 자체가 이미 파나히에게는 또 다른 이야기이며 어쩌면 미래의 영화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라는 자파르 파나히와 모즈타바 미르타마습이 의도하지 않았던 문제, 즉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영화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도 생각하게 한다. 칸에서 만난 이란의 영화인들에 의하면, 자파르 파나히 재판은 어디까지나 본보기 사건이라고 하였다. 즉 겁을 준 다음에 사면을 해줄 것이고, 대신 정부에 대한 비판적 자세는 금한다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여성감독 타흐미네 밀라니의 경우 2002년에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사면된 바 있다. 하지만 과연 이란 정부의 이 전략이 먹힐지는 미지수이다. 그들은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를 영화로 판단할 것이고(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감독은 자신의 작품이 영화가 아니라는데, 정부는 영화가 맞다고 판단하는 상황이), 파나히가 정부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어쩌면 전략을 수정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는 ‘끝나지 않을 이야기’와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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