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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주식회사>, 그 유머와 테크날러지의 비결
2002-01-09

디지털의 냉기 덥히는 노스탤지어

● 10여년 전만 해도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테크놀로지 그 자체가 볼거리였다. 손으로 그림을 한장 한장 그리거나 인형을 한 동작씩 움직이는 기존 애니메이션 방식으로는 도저히 표현하기 힘든 입체감과 역동적인 카메라 구도는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스크린에 투사된다는 자체만으로 경이감을 일으켰다. 이러한 경이로움에는 우리보다 앞선 미래의 영상기술을 가졌다는 선망과 ‘우리는 저런 그림 절대 못 만들어’로 대표되는 자기검열과 자괴감의 복잡한 속내가 함께 담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94년께 갑작스런 애니메이션 붐이 불었을 때 많은 회사들이 저마다 디지털 영상이라는 ‘할리우드의 마법’을 자신이 제대로 전수받았다고 자랑했다. 그 결과 여러 작품들이 마치 ‘우리는 이런 기술을 썼다’고 자랑하듯 차가운 금속성 질감의 그림을 내용과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끼워넣고 흐뭇해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디지털 영상 테크놀로지는 더이상 ILM이나 픽사 등 할리우드 몇몇 회사들의 전유물도 아니고 비법이 숨겨진 마법도 아니다. 한때 첨단 영상기술의 백미로 꼽혔던 3D 컴퓨터그래픽은 요즘 대학생의 졸업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는 기본적인 기술이 됐다. 극소수만 알고 있는 비법의 희소성을 상실한 지금, 디지털 영상기술은 다시 어떤 내용, 어떤 메시지를 담고 가느냐 하는 본연의 역할에 대한 평가로 우열을 가리게 됐다.

픽사= 존 레세터

최근 극장가에 간판을 건 <몬스터 주식회사>는 디지털 애니메이션에서 테크놀로지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재미있는 애니메이션’(funimation)이라는 신조어를 내세우며 등장한 <몬스터 주식회사>는 <토이스토리> <토이스토리2> <벅스 라이프>에 이은 디즈니와 픽사(Pixar)의 네 번째 공동제작 작품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2억달러가 넘는 흥행 성적을 거두었고, 우리나라에서도 <해리 포터…> <반지…> 등과 함께 순조로운 항진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공동제작이라고는 하지만, <몬스터 주식회사>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픽사 특유의 색채가 짙게 배어 있다. 그리고 그 색채는 바로 존 래세터라는 디지털 애니메이션 분야의 한 귀재가 뿜어내는 아우라이다.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존 래세터는 야전에서 한발 물러나 제작총지휘를 맡았다. 연출은 그의 제작팀에 있던 피트 닥터가 맡았다. 하지만 비록 이선으로 물러나기는 했지만, <몬스터 주식회사>는 여전히 작품 전반에 걸쳐 존 래세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럼 ‘픽사=존 래세터’라는 등식 속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친숙함과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할리우드의 가족주의 전통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가족주의는 여태껏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지탱해온 기둥 이데올로기였건만, 어찌된 일인지 이제는 그것에 관한한 픽사가 디즈니보다 더 디즈니적이다. 디즈니가 성공이 보장됐던 안락한 틀 속에서 자기복제를 거듭하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동안, 픽사(또는 존 래세터)는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치명적인 단점이라 할 수 있는 비인간적인 차가움을 가족주의의 온기로 감싸는 절묘한 조합으로 새로운 가능성의 길을 열고 있다.

<몬스터 주식회사>는 눈물보다는 웃음과 재미를 내세우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여기서 만나는 웃음은 엽기적인 아이디어나 황당한 개그로 인한 실소나 폭소가 아니다. 그렇다고 세상사에 대한 날카롭고 시니컬한 풍자가 일으키는 냉소도 아니다. 우리가(냉정하게 말하면 미국의 중산층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또는 입장을 바꿔 극중 주인공의 처지가 된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웃음의 모양으로 표현하면 빙그레 입가에 짓게 되는 미소라고나 할까? 우리는 이런 웃음을 아주 예전 영화에서 접한 적이 있다. 40년대 프랭크 카프라나 50년대 빌리 와일더의 영화에서 볼 수 있던 익살과 웃음. 이제는 미국영화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 골동품적인 정서가 21세기적 영상이라는 디지털 애니메이션에서 펼쳐진 것이다.

프랭크 카프라, 빌리 와일더의 웃음

<몬스터 주식회사>의 주요 등장인물인 설리와 마이크 와소스키는 인간세계로 따지면 전형적인 블루칼라이다. 첨단의 기술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아이들 놀라게 하는 재주로 살아가며 공장에서 자신의 실적 올라가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소시민이다.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불만을 느낄 수도, 비명공장이라는 거대한 생산체제 내에서 살아 있는 부속으로 전락한 상황에 대해 반기를 들 수도 있건만 어느 누구도 그런 반골정서는 보이지 않는다. 설리의 그늘에 가려 늘 조연에 만족해야 하는 와소스키마저 설리의 기록 향상을 돕는 데 최대의 만족을 느낀다. ‘땀흘린 만큼 대가가 있다’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이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아메리카의 신화’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뻔한 때로는 반동적이기까지 한 정서가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다. 이유는 이 작품의 무대가 과거지향적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첨단 퓨전 레스토랑이 등장하고, 괴물들의 비명에너지 채집 시스템으로 인해 착각할 수 있지만, <몬스터 주식회사>의 무대와 배경이 주는 정서는 2차대전 직후 베이비붐 시대를 맞으며 대량소비 사회로 치닫던 미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단순하게 아침에 출근해서 업무시작 종소리와 함께 일을 시작해 점심과 휴식시간을 거쳐 저녁 업무종료 소리와 함께 집으로 가는 생활. 고풍스런 사무직원의 안경테와 전형적인 화이트칼라인 문어괴물 워터누즈 회장, 별다른 조직의 갈등도 없고 회사에서 칭찬받는 것과 여직원과의 데이트로 모든 노동의 피로가 보상되는 단순하지만 안락해 보이는 사회이다.

이 작품의 유일한 인간, 소녀 부를 보자. 솔직히 온갖 기발한 장난감과 인형에 둘러싸이고 매일 TV와 비디오에 노출되는 요즘 아이들에게 랜달 정도의 카멜레온 괴물은 ‘까르르’ 웃게 만드는 장난감에 불과하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속의 부는 그런 랜달을 너무나 무서워한다. 현세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마냥 천진스럽고 마냥 귀여운 부는 카프라 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나왔던 마거릿 오브라이언이나 설리 템플에 대한 일종의 디지털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인물과 배경이 과거지향적이라면, 그 안에 담고 있던 정서나 이데올로기 역시 “그때가 좋았는데…”라는 회고 정서를 담는 것이 자연스럽고 보기좋다. 픽사는 그런 원칙을 충실하게 지켰다.

같은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 때문에 <몬스터 주식회사>는 종종 드림웍스의 <슈렉>과 비교된다. 두 작품 모두 탄탄한 줄거리와 세심한 인물 설정, 적절한 유머, 높은 기술적 수준을 자랑한다. 둘 다 주인공이 현세에서 볼 수 없는 괴물이다. 하지만 <슈렉>이 사랑의 허위와 진실, 세상이 지배하는 상식의 통념에 대한 반발을 담고 있는 성인지향적인 주제라면, <몬스터 주식회사>는 복잡한 현실의 고민을 잊어버릴 수 있는 현실도피적인 웃음을 추구한다. <슈렉>이 유럽의 전설을 빗대 대중미디어가 지배하는 현실의 허구를 비꼰다면, <몬스터 주식회사>는 미국영화 속에서 가장 행복하고 평안했던 시절의 모습을 복제해 그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노래한다. 따라서 <슈렉>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몬스터 주식회사>의 가족주의가 현실의 문제를 도외시한 ‘무책임한 낙관주의’라고 못마땅할 테고, <몬스터 주식회사>를 좋아하는 입장이라면 <슈렉>의 세련된 풍자와 비판이 ‘관객의 기대와는 상관없는 현학적인 허위’로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은 보는 사람의 맘이다.

영화 뒤에 숨은 테크날러지

복고적인 분위기와 사람냄새 나는 웃음 때문에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사실 <몬스터 주식회사>의 테크놀로지는 조금만 주의깊게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탁월하다. 부드럽고 푹신푹신한 촉감이 눈으로 느껴지는 설리의 몸에 난 털이 움직이는 모습은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새삼 다시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자연스럽다. 카멜레온 괴물 랜달의 피부색이 변하는 장면이나 유연한 캐릭터들의 움직임 역시 탁월하다. 특히 후반부에 롤러코스터를 연상케 하는 설리와 랜달의 추격장면은 기술적인 측면만 따졌을 때 단연 이 작품의 백미이다. 다분히 제작진이 ‘이래도 안 볼 테냐’라고 작심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이 추격장면의 속도감과 화려한 카메라 움직임, 그리고 정교한 타이밍 계산이 돋보이는 연출은 놀라움을 넘어 보는 이를 기죽게 한다.

그런데 더 약이 오르는 것은 이런 화려한 테크놀로지가 따지고 보지 않으면 눈에 안 띌 정도로 자연스럽게 극 속에 숨어 있다는 점이다. 마치 그런 재주 부린 것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꼭꼭 숨겨놓은 듯한 인상을 줄 정도이다. ‘우리는 이런 영상기술을 사용했다’며 기를 쓰고 티내려고 애를 쓰는 일부 국내 디지털 애니메이션과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자세가 옳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든, 셀 애니메이션이든, 아니면 실사영화든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는 목적이 같다. 불꺼지고 은막에 영상이 투사되는 동안 즐거움과 재미, 눈물과 웃음을 얻고 싶어 가는 것이지, 디지털 영상기술 수준을 자랑하는 데모 테이프를 120분 동안 감상하려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그릇이 멋있고 편리하다고 해도 결국 핵심은 그 그릇에 담긴 음식의 맛이다. 음식이 맛이 없고 영양가가 없는데, 그릇과 포크가 좋다고 해서 식당을 칭찬하지는 않는다. <몬스터 주식회사>는 새로운 영화는 아니다. 기술적으로는 첨단의 기법이 동원됐지만, 작품이 추구하는 세계는 오히려 한참 과거를 지향한다. 보는 입맛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이런저런 논의에 대해 존 래세터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냥 보고 웃으세요. 재미있으라고 만들었지, 토론하라고 만들지 않았습니다.” 김재범/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oldfield@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