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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독>의 실존인물 비독의 생애
2002-01-10

장 발장, 혹은 괴도 루팡의 아버지

사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비독’이 포스터에 등장하는 거울가면을 쓴 살인마의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영화들에 비해 <비독>이 상대적으로 홍보가 많이 된 영화가 아니어서도 그랬지만, 워낙 영화를 보기 전에 관련 홈페이지나 팸플릿 혹은 TV영화 정보프로그램 등을 보는 것을 꺼려하는 개인적인 성격 때문에 생겨난 상황이었다. 물론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그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고,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과연 비독이라는 인물이 가상의 인물인지 아니면 실존인물인지가 궁금해지기에 이르렀다. 물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유리가면을 쓴 범인의 신출귀몰하는 모습은 허구의 산물임이 확연했지만, 비독에 대한 묘사는 어느 정도 사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돌아와 찾아본 <비독>의 한글 공식 홈페이지에는 이런 의문에 대한 간단한 해답이 올라와 있었다. 1775년 태어나 1857년(사실 한글 공식 홈페이지에는 1875년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사망한 비독은 영화에서 짧게 소개된 것처럼 한때 위조범, 도둑, 노상강도, 인신매매, 밀매 등 각종 범죄를 일으켰던 실존 인물이 맞았다. 투옥과 탈옥을 여러 번 되풀이하다가 경찰에 입문하여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사로 엄청난 성과를 올렸던 것도 사실이었고, 이를 발판으로 프랑스의 범죄수사 관청인 경시청을 설립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실제로 범죄학은 물론 추리소설 분야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모리스 르블랑이 괴도 루팡의 모델로 삼은 것이 비독이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그 정도 정보로는 비독이라는 인물을 감싸고 있는 베일을 벗기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을 더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본명이 Eug ne Fran ois Vidocq인 비독이 태어난 것은 1775년 7월23일, 차분한 성격을 가진 제빵사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사이에서였다. 그렇게 악한이 되기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린 시절부터 소문난 문제아였다. 부모님이 입학시켜준 가톨릭학교에서 최고의 골칫덩어리로 악명을 날렸고, 이는 14살의 나이에 실수로 펜싱 선생님을 살해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로 귀결된다. 그 사건을 계기로 가출을 한 비독은 군에 입대했지만 많은 문제를 일으켜 추방을 당하고, 17살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으로 정국이 어수선하던 시기에 그는 세명의 군인들이 여죄수들을 길로틴으로 처형하기 위해 폭력적으로 다루는 장면을 보고는 군인들을 죽이는 사건을 저지르게 된다. 공포정치를 펴던 혁명정부는 당연히 그를 처형하려 했지만, 혁명정부의 지원자였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는 가까스로 사형을 면하게 된다.

그뒤 파리로 무대를 옮긴 비독은 소매치기, 도둑, 창녀 등과 어울리며 여러 번 자질구레한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지만, 계속해서 탈옥에 성공하고 탈옥한 뒤에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며 변장과 위장으로 숨어다닌다. 그런 그의 연이은 탈옥과 뛰어난 위장술은 그를 파리의 유명인사 반열에까지 오르게 만들었다. 그렇게 경찰들과 숨바꼭질을 하던 비독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은 1809년 경찰의 정보원이 되면서부터였다. 그뒤 그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의 경험을 활용해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데 뛰어난 성과를 올리며 인정을 받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비능률적이던 파리의 경찰 운영방안을 통일하기 위해 경시청을 설치할 것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자신처럼 범죄자였던 이들을 끌어들여 경시청의 수사일선에 활용함으로써 범죄자들을 효과적으로 소탕하는 데 성공한다.

그뒤 1811년부터 경시청장으로, 1832년부터는 세계 최초의 사립탐정으로 그가 프랑스 역사에 남긴 활약은 이루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카드 형식으로 범죄인 명부를 관리하는 방법이나 총과 관련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탄도학 등이 그에 의해 세계 최초로 경찰 시스템에 도입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런 그의 활약은 비단 괴도 루팡의 모델로만 쓰인 것은 아니었다. 코난 도일이 창조해낸 명탐정 셜록 홈스는 물론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장 발장과 형사 자베르 역시 그를 모델로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찰스 디킨슨의 <위대한 유산>과 멜빌의 <모비딕>에는 그의 이름이 직접 등장할 정도고, 포의 추리소설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에는 그의 수사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듀판이라는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여하튼 그렇게 독특한 삶을 살아간 비독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독 소사이어티라는 단체. 미국 내에서 벌어진 미해결 사건들을 전문가들이 함께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단체는, 현재 비독이 살아간 연도 수와 같은 82명의 저명한 범죄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1998년 이들의 공식 모임에 대니 드 비토가 나타나 그의 영화사인 저지필름을 통해 이 비독 소사이어티를 영화화하겠다고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직까지 구체적인 진행이 되고 있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조만간 비독의 후예들이 등장하는 할리우드영화를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철민/인터넷 칼럼리스트chulmin@hipop.com <비독> 공식 홈페이지 http://www.vidocq-lefilm.com/

<비독> 한글 공식 홈페이지 http://www.vidocq.co.kr/

비독의 생애 http://www.crimelibrary.com/classics2/vidocq/

비독 소사이어티 홈페이지 http://www.vidocq.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