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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혁] 그의 다음 선택이 궁금해
남민영 사진 백종헌 2011-10-06

<투혼>의 김주혁

김주혁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초콜릿을 닮았다. 남자다우면서도 젠틀한 김주혁의 이미지가 마냥 ‘백마 탄 왕자’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로맨틱코미디 장르에서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은 때로는 용기가 없어 첫사랑을 놓치고 혹은 현실에 부딪쳐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택하는 우리 주위의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한층 더 거리감 없이 이 배우가 가까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쯤 김주혁은 롯데 자이언츠의 간판투수 윤도훈으로 마운드에 섰다. 영화 <YMCA 야구단>에서 이미 투수 역할을 맡은 적이 있었기에 <투혼>을 촬영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어깨에 부상을 입을 정도로 촬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전작 <적과의 동침>을 끝내자마자 <투혼>에 빠져들고 이어 <커플즈>를 끝내면서 그는 쉼없이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영화 제목처럼 김주혁에게도 ‘투혼’이 필요한 시기였던 것이다. 지금도 피곤하지 않냐고 묻자 그는 “육체적인 피곤함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몸이 힘들면 자연스레 마음도 힘들어지기 마련인데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즐겁고 신이 난다”는 그의 말에서 데뷔 13년차의 배우답지 않은 천진난만함이 엿보였다.

김주혁이 분한 윤도훈은 통산 149승에 빛나는 괴물 같은 투수다. 그러나 영화는 그의 황금 시절이 아닌 사고뭉치, 철부지, 패전처리 투수로 전락해버린 암흑기에 포커스를 맞춘다. <투혼>은 선수로서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나 별볼일 없는 남자의 성장기에 가까운 영화다. 기존에 맡았던 로맨틱한 캐릭터와는 전혀 다르지만 김주혁이 윤도훈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스포츠 선수의 삶이나 배우의 삶이나 누군가의 주목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공감만으로 윤도훈에 빠져들기엔 여러 제약도 많았다. 투수이자 뼛속까지 부산 사나이인 윤도훈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야구연습은 물론이고 부산 사투리도 익혀야 했다. “사투리의 리얼함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더 신경 썼다”는 그의 말대로 윤도훈은 우리가 익히 아는 그냥 부산 사람이 아닌 김주혁의 내면에서부터 뿜어져나온 진짜 사나이다. 실제로 이번 영화를 찍으며 그는 모니터를 한번도 확인하지 않았다. 얼굴이 어떻게 나오는지보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내와 선수로서의 슬럼프라는 두 가지 고충을 양 어깨에 짊어진 윤도훈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주혁은 영화에서 윤도훈을 성장시키며 자신도 한층 더 성장한 느낌이다. <방자전>을 시작으로 <적과의 동침> 그리고 <투혼>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휴 그랜트’라 불리며 로맨틱 가이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그가 색다른 면면을 꺼내놓고 있으니 말이다. 전혀 다른 지점을 꿈꾸는 건가 싶은데 김주혁은 로맨틱 가이 또한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나에 대한 이미지가 여기에 있는데 그게 고착됐다고 혹은 싫다고 안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그걸 가져가면서 이렇게도 가고 저렇게도 가보고 하는 거다. 비슷한 걸 했는데 똑같은 수준밖에 안되면 이미지 소모겠지만 잘해내면 이미지 소모가 아니다. 대신 로맨틱코미디를 선택하는 데 좀더 신중해지겠지. 좀더 캐릭터가 재밌는 걸 선택하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부터가 중요하다는 그의 말에 연기에 대한 신념이 보인다. 그런 그의 소원은 “다큐처럼 연기하면서 캐릭터의 매력 또한 살리는 것”이다. 욕심 많은 이 배우의 다음 선택이 기다려지는 것도 이런 현명함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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