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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만으로 충분한 이야기가 무리한 욕심에 무너지다 <너는 펫>
강병진 2011-11-09

<너는 펫>의 개봉을 앞두고, 남성연대라는 이름의 단체가 <너는 펫>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다. “이 영화가 남성을 ‘개’로 규정해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위배했다”며 “재미를 위해 누군가의 인격이 모독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야요이 오가와의 동명 원작은 펫을 길들이려는 주인이 결국 펫에게 길들여지고 마는 애완의 속성이 연애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만화였다. 결국 마음 씀씀이가 더 큰 쪽이 약자인 건 상대가 ‘개’든 애인이든 마찬가지다. 만화에서 TV드라마로, 그리고 한국영화로 찾아온 <너는 펫> 또한 <우리 결혼했어요>를 <TV 동물농장>으로 번안한 이야기에 가깝다.

스펙과 연봉, 미모 등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여자 은이(김하늘)의 고민은 너무 잘난 자신이다. 직장 동료에게나 애인에게나 부담스러운 존재인 그녀에게는 잘난 그녀를 잘난 대로 살게 해줄 공간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포근한 침대와 따뜻한 물을 찾아다니며 여러 집을 전전하던 댄서 인호(장근석)가 은이의 집으로 들어온다. 남자가 아닌 펫으로 살겠다는 인호의 결심에 그를 키워주기로 한 은이는 그에게 ‘모모’란 이름을 붙여준다. 이들이 주인과 펫의 관계로 평화롭게 살던 어느 날, 은이의 첫사랑이 나타나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주인의 관심이 옮겨가자, 모모는 애완동물답게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다.

영화 <너는 펫>은 총 14편의 원작 만화에서 1편을 확장시켰다. 몇몇 설정이 바뀌기는 했지만 사실상 원작의 스미레와 모모, 스미레의 첫사랑인 하스미가 벌이는 삼각관계가 영화의 주된 이야기다. 러닝타임의 제한상 원작만큼은 아니어도 주인과 펫의 관계가 종종 남녀의 관계를 오가는 긴장은 영화에도 담겨 있다. 하지만 독특한 설정과 캐릭터와는 별개로 <너는 펫>은 그다지 많은 웃음이 드러나지 않는 로맨틱코미디다. 원작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삼각관계라는 단순한 구도로 정리했지만 오히려 단순한 이야기를 무리하게 확장하면서 생겨난 각색과 연출의 기술적인 오차 때문인 듯 보인다. 영화는 이야기의 사이사이를 다양한 에피소드로 메우고 있지만 대부분 정리를 하지 않고 성급히 넘어가는 장면들인 탓에 웃어야 할지, 감동을 받아야 할지 애매한 순간이 많다. 모모와 첫사랑 사이에서 느끼는 은이의 갈등이 종종 뜬금없어 보이는 것도, 주변 인물들을 연기하는 조연들의 생기가 없는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장근석은 <너는 펫>의 강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는 요소다. 한류 관객을 의식한 듯 그가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이 꽤 비중있게 들어가 있지만 이야기와 상관없이 고려된 비중은 영화의 단순한 구도마저 흔들어놓는다. 무엇보다 장근석만을 위해 만든 이런 장면들은 관객의 성별과 그에 대한 호감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설정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이야기가 무리한 욕심에 무너진 아쉬운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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