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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진의 판판판] 더 막가는 괴물이 나타났다
강병진 2011-12-05

종합편성채널 개국, ‘제작비 상승-시청률 경쟁-콘텐츠 질적 저하’ 악순환 우려

지난 10월18일에 열린 ‘TV조선 채널 설명회’. TV조선 임직원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간접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때 케이블 방송에서나 볼 수 있던 이 자막은 최근 몇년 사이에 지상파 방송으로 침투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쓰는 스마트폰 얘기가 아니다. <나는 가수다>의 경우, 참가자가 부른 노래의 제목은 언제나 음원사이트 로고와 함께 소개된다. 문자 투표에 참가한 이들을 추첨해 준다는 스마트TV의 상표가 버젓이 실리기도 한다. 광고 단가는 낮아졌는데, 케이블TV처럼 중간광고는 할 수 없고 내보낼 수 있는 광고의 종류도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고안된 광고 방식일 것이다. 광고 외의 시간에도 사실상 광고를 방송하는 예능프로그램과 막장드라마의 출현은 사실상 태생이 같은 것으로 보인다. 시청률은 올리되, 제작비는 낮춰야 하거나 뽑아내야만 하는 상황 말이다.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이 지난 12월1일 개국했다. 사실 종편의 운명보다 종편에 의해 변화를 맞게 될 지상파 방송이 더 우려된다. 종편은 사업자 결정부터 채널 배정까지 원하는 대로 모든 걸 이뤄냈다. 케이블과 위성방송에 의무 전송되도록 시행령이 개정됐고, 중간광고는 허용되면서 지상파에서는 금지된 생수 광고도 받을 수 있고, 광고 시간도 더 많다. 현재 종편 사업자는 지상파에서 금지된 전문의약품과 의료기관 광고까지 허용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데, 역시 그들이 원하는 것이니 성사될 게 뻔하다. 개국 전부터 스타급 PD와 연예인의 몸값을 불린 종편은 그러한 은혜로 번 돈과 기업에 칼 대신 신문을 들이대며 받아낸 협찬을 다시 투입해 더욱 공격적인 물량공세를 펼칠 것이다. 그로 인한 직접적인 결과는 프로그램 제작비의 상승이다. 제작비의 상승은 다시 과도한 수익 창출과 시청률 경쟁을 낳는다. 종편에 비해 수익 창출의 제약이 있는 공중파로서는 간접광고는 더 많이 받고, 막장드라마는 더 세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편 개국과 동시에 많은 방송관계자들 또한 “기존의 공중파가 종편과의 경쟁에 가세하는 순간, 전체 방송 콘텐츠가 질적으로 하락할 것이 예상된다”고 말하는 건 이 때문이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완성도 높은 사극도 간접광고의 여지가 없는 사극의 특성상 줄어들지 않을까? 똘복이와 담이가 카페베네에서 만날 수도 없고, 담이가 종이 대신 갤럭시탭으로 필담을 나눌 수도 없는 일이니까. 밀본의 계략에 신음하던 세종이 마음을 달래려 우황청심환을 복용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영화계 일각에서는 종편이 새로운 부가판권시장이 될 것이며 영화에 직접 투자할 수도 있을 거란 기대를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시청률 경쟁에 뛰어든 종편은 어차피 흥행작 위주로 판권을 올릴 것이며 종편이 투자한다고 해도, 한국영화의 다양성에 기여할 리 만무하다. 배우와 작가, 스탭들을 사실상 방송사와 공유하는 영화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 또한 개런티의 상승이 가져올 제작비 상승의 후폭풍이다. 한 투자관계자는 “과거 2000년대 중반 한국영화가 그랬듯 제작비 거품이 문제가 될 것”이라 예견했다. 그러나 영화계 전체에 돈이 넘쳐났던 그때와 달리 이제는 개런티를 상승시킨 만큼 어느 부분에서는 제작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전체 방송 콘텐츠의 질만이 아니라, 한국영화의 질적인 하락까지 염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수 편향의 뉴스 보도를 걱정하는 정치권,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기업, 콘텐츠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방송계와 영화계 외에 종편이란 괴물이 짓밟아버릴 영역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지난 2007년 연말에 출현한 괴물에 못지 않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막가는 괴물이 2011년 연말에 나타났다.

사진제공 한겨레 신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