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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 나는 동물원을 간다
이화정 2011-12-30

출근하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TV를 보는데 뉴스가 나온다. “어린이대공원 코끼리 탈출!” 동물원을 나온 코끼리가 식당에 들어왔고 놀라 기겁한 식당 주인이 브라운관에 잡힌다. “어, 어, 어, 어, 저기…!” 밥 숟가락을 들고 말문을 잃어버린 그 순간 휴대폰 벨이 울린다. 아빠다! “코끼리가 탈출했다!” 출근한 딸에게 굳이 이 사실을 속보로 알리는 건, 탈출한 코끼리가 바로 우리 동네 코끼리여서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어린이헌장이 자랑스럽게 입구를 지키고 있는 대공원은 아주 어릴 적부터 내 삶의 터전이었다. 봄소풍, 가을소풍, 사생대회와 미술대회, 심지어 집에서 가는 어린이날 피크닉도 나는 죄다 어린이대공원과 그 옆에 붙어 있는 어린이회관을 번갈아서 갔던 아이다. 그런 대대적인 행사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미아찾기 방송’이 나왔고, 그래서 난 어린이대공원이, 아이들을 빨아들이는 세상에서 가장 큰 공간이라 여겼다.

다시 코끼리 탈출 사건으로 돌아가자면. 오죽하면 코끼리가 탈출했을까 싶다. 그 커다란 생명체를 좁은 우리에 가둬두고, 모두 과자를 주면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관찰하며 헤헤거리고 있었으니 코끼리를 위시한 모든 동물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그럼에도 난 어릴 땐 각종 행사로, 대학 땐 동창회로, 그리고 지금은 운동을 하겠다고 동물원에 들른다(몇년 전부턴 무료입장이 가능해졌다). 그런 의미로 동물원은 내게 갈 수도, 아니 갈 수도 없는 애증의 공간으로 내 평생과 함께했다. 난 그래서, 동물원은 인간의 쾌락을 위한 비동물적인 공간이라고 한껏 기치를 높이며 바락바락 설을 풀다가도, 행여 TV에서 동물원이 나오면 하던 일도 멈추고 그 소식을 듣느라 정신이 없고, 어디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그곳에 있는 가장 오래된 동물원을 검색해보곤 거길 굳이 찾아서 들르는 걸 일종의 과제처럼 여긴다. 어느덧 코끼리 탈출은 전설이 됐고, 분수대에 설치된 소박한 조형물 대신 레이저쇼가 가능한 첨단 분수대가 자랑거리처럼 설치된 모던한 공원이 된 내 집 앞 어린이대공원과 해외의 유서 깊은 다른 동물원을 비교분석해보자는 일종의 사명감 때문이다. 베를린에선 유럽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오래됐다는 베를린 동물원(사진)에 가서 한여름 뙤약볕에 몇 시간이고 걸어다니다가 그날 여행이고 모두 접고 유사 일사병에 휴식을 취하러 갔고, 프라하에선 짧은 여정 중 동물원 가는 데 통 크게 하루를 허용했으며, 도쿄에선 초봄 추위에 치를 떨며 혼자서 우에노 동물원을 하루 종일 어슬렁거렸다. 이토록 동물원적인 순간들이라니! 이건 취향도 뭣도 아닌 그냥 거창하게 포장하자면 동물원과 링크된 내 존재에 대한 확인과 의무감 같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