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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활동 중심 세대의 꿈을 그린 SK텔레콤 유토
2002-01-17

2535, 당신의 영토는 어디?

제작연도 2001년 광고주 SK텔레콤 제품명 유토(UTO)> 대행사 화이트·TBWA 제작사 매스메스에이지(감독 박명천) 현존하는 이동통신 브랜드들을 눈여겨보면 간혹 어지러울 때가 있다. 011, 017, 018, 019 등 번호도 여러 개인데 각기 밑에 성별·세대별·서비스별로 하부 브랜드를 마당발처럼 펼쳐놓아 그 종류를 다 열거하려면 숨이 찬다. 그럼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브랜드가 있다. 2535세대를 겨냥한다는 SK텔레콤의 ‘유토’와 KTF의 ‘메인’이다.

그건 필자가 해당 세대의 정중앙에 자리해 있다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거니와 그동안 광고계에서 이 세대를 뚜렷하게 구분해 조명한 사례가 드물다는 것이 무엇보다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신세대, 1318세대 등 얘기만 들어도 생동감이 넘치는 젊은 세대와 달리 왠지 어중간하고 밋밋해보이는 2535세대. 과연 이들은 어떤 세대인가. 목표소비자 분석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을 광고에 기대 궁금증을 풀어본다.

‘메인’ 광고에 따르면 2535세대는 한시도 휴대폰이 없으면 곤란할 만큼 일, 사랑 등을 위해 분주하게 소통을 즐기는 부류다. 현란한 음악과 조명으로 얼룩진 나이트클럽에서조차 휴대폰을 제쳐놓지 못하는 광고 속 넥타이 신사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휴대폰 사용 빈도가 높은 당신에게 다양한 맞춤서비스로 ‘메인’ 대우를 제공하겠다는 것, 이것이 CF가 2535세대에게 던지는 유혹의 핵심이다. 쉽게 이해가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반면 유토 CF는 긴 설명을 요구한다. 신조어를 브랜드로 사용했다는 점부터 일단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유토는 ‘You’와 ‘土’의 합성어로 ‘당신의 영토’란 뜻을 갖고 있다. 이 광고는 공간적인 배경을 일상의 공간(사무실)과 유토의 세계로 분할하는 이채로운 영상형식을 띠고 있다.

브랜드 출시를 알리는 론칭 광고는 세련된 풍모의 넥타이 신사(영화 <컷 런스 딥>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맥기니스)가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위태로운 전구의 불빛에 어떤 암시를 받은 듯 벽의 좁은 통로를 따라 어디론가 기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벨소리를 쫓아 신사가 향한 곳은 유토. 광고는 유토의 실체를 미지의 상태로 남겨둔 채 ‘마이 어드레스(my address), 유토’란 정의를 내리며 끝난다.

현재 방송을 타고 있는 후속탄은 유토의 세계를 좀더 구체화했다. 이번에도 사무실에서 일에 열중해 있는 신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신사는 뇌에 유토란 로고를 떠올리더니 순간 사무실과 연결된 옆 공간으로 이동한다. 그곳은 수영장처럼 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어떤 여성과 함께 유유히 물 속을 가로지른다. 이같은 CF스토리는 직장업무 같은 사회적인 요구를 만족스럽게 수행하는 동시에 개인적인 욕구도 적극 추구한다는 것을 2535세대의 포괄적인 속성으로 이해한 데서 출발했다. 유토는 이 가운데 개인적인 영역인 후자를 개입의 지점으로 삼았고, 이를 유토와 동격화하는 접근방식을 택했다.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수행하는 부류로 2535세대를 인식한 점은 유토와 메인이 비슷하다. 그러나 메인 광고가 현실을 반영하는 데 주목했다면 또다른 세계를 찾아나서는 과정을 담은 유토 CF는 꿈의 영역에 초점을 맞췄다는 차이가 있다. 메인과 유토 가운데 어느 쪽이 현명한 길을 선택했는지 차치한다면, 2535세대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유토 CF의 영상 장치는 흥미를 끈다.

TTL 광고, 굿모닝증권 광고 등에서도 익히 과시했듯이 연출자인 박명천 감독은 이번에도 정교한 전략적 사고를 담은 세트미학을 선보이고 있다. 사무실과 연결된 벽의 통로나 수조라는 신비롭고 기묘한 공간설정은 알고보면 실용적인 가치로 점철돼있을 유토란 이동통신 브랜드의 가치를 실재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모델의 뇌를 해부학 그림마냥 비추며 유토란 브랜드를 인식의 영역으로 표현한 대목은 인상적이다. 희로애락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한 모델, 도시적이고 세련되면서도 감성을 절제한 ‘쿨’한 화법 등은 보는 이들을 냉정한 관찰자의 위치에 세워두며 해석의 여지를 안긴다. 이것이 광고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개입을 유도할지, 아니면 ‘귀찮아’ 정서에 밀려 외면받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언뜻 유토 CF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란 장편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에서 주인공 ‘나’는 자아와 사랑은 거세됐지만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계의 끝’이란 세상에 안주할지, 아니면 ‘세계의 끝’을 둘러싼 벽을 뛰어넘어 자아와 사랑을 되찾는 대신 혼란과 풍파가 기다리는 세상으로 탈출할지를 놓고 갈등한다. 결국 ‘나’는 탈출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하는 여인과 지낼 수 있지만 ‘세상의 끝’ 안쪽에 존재하기는 마찬가지인 숲으로 향한다.

유토 CF 역시 유토의 세계로 가면 2535세대의 일탈이 가능하다는 극적인 해결점을 제시하는 것 같진 않다. 일상의 공간과 유토를 밀착해놓고, 모델에게 넥타이를 맨 채 유영하도록 만든 광고의 영상은 유토 역시 ‘뫼비우스의 띠’처럼 원점으로 돌아가게 돼 있는 세계임을 암시하고 있다. 꿈을 얘기하고 있지만 2535세대의 꿈은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있다는 현실적인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