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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O.S.T
2002-01-17

`밑` ’으로부터 압도하다

평원을 지나 하늘을 날아 설원을 넘어 지하동굴을 빠져나와 불기둥을 피해 강을 건너는 3시간 가까운 악몽을 꾼 것일까. 아니면 ‘반지를 품은 자’(the ring bearer)를 중심으로 구성된 롤플레잉 게임을 한 것일까. 아니면 그냥 톨킨의 판타지 소설이 그림으로 구현된, 상상 속의 것들이 출몰하는 환영을 본 것일까. 그 무엇이든 이 판타지는 가히 압도적이다. 지난주에도 써먹은 말이나, 이 영화 역시 ‘얼얼하다’. 얼얼한 정도로 치자면 내가 본 것들 중에서 최고다. 너무 굉장한 이미지와 사운드 속에서 나는 펀치드렁크에 걸린다. 그래서 나의 감각은 나중엔 이 환상의 길을 그저 멍하니 따라간다. 영화가 끝나고 길거리에 나왔을 때, 나는 다시 멍하다. 이 환한, 구차한 곳….

음악이야기에 앞서 사운드이야길 좀 해보자. 이 영화의 사운드는 놀랄 만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5.1채널’의 돌비서라운드 시스템은 전후좌우 모든 곳에 사운드를 배치함으로써 예전보다 훨씬 압도적으로 관객의 감각을 몰수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사운드는 전후좌우뿐 아니라 ‘밑’을 강조하는 굉장한 시도를 하고 있다. 보통 ‘위’는 강조되기가 쉽다. 스피커가 위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밑’은 좀처럼 강조하기가 쉽지 않다. 이 영화의 사운드는 깊은 울림소리(리버브)와 잔향효과(딜레이)와 소리위치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밑’의 소리를 재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해골바가지가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 그 소리가 그야말로 천길 밑에서 들리는 듯하다.

이런 식의 ‘밑을 강조하는’ 사운드는 여태껏 들어본 일이 없다. 사실 이 영화는 ‘밑’의 영화다. 영원과 절대와 완벽의 상징인 ‘이음새 없는 반지’는, ‘중간계’의 존재들이 그것을 염원하는 순간 탐욕과 도륙의 상징으로 떨어진다. 반지를 품은 난쟁이 주인공은 반지를 망각함으로써만 반지의 가치를 보존한다. 반지의 뜻이 일깨워지는 순간, 주인공 무리에게도 위기가 닥친다. 지하에서는 반지를 염원하다가 얼굴을 빼앗긴 자들이 불의 전쟁을 준비하고 거기에 영합한 마법사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 밑에서 한번 탐욕하여 기괴하게 타락한 괴물들을 되살려 살육의 향연에 동원한다. ‘밑’의 영화가 밑의 소리를 강조하는 건 당연지사.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것.

음악 역시 ‘밑’이 강조되어 있다. 이것은 그리 특이한 경우는 아니다. 이 영화의 음악은 특히 저음쪽이 강조되어 있다. 아니, 사실은 저음의 박력에 비해 고음 처리들은 조금 밋밋하게 느껴진다. 대신 북소리, 콘트라베이스 소리, 둔중한 브라스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극장의 공간 전체를 밑으로부터 휘어잡는 저음은 일품이다. 물론 가끔씩 찌를 듯한 고음이 귀를 거슬리게 한다. 그것들은 정말 대놓고 신경질적이다.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하워드 쇼어는 사실 이런 신경증적 심리표현의 대가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도 한번 소개했던 그가 이 느낌을 가장 잘 살린 영화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1996년작 <크래쉬>로 기억된다. 자동차 사고를 당하여 이상한 변태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를 그의 음울하면서도 환상적인 선율이 잘 표현했다. 그러나 <네이키드 런치>, 등 다양한 영화에서 다양한 음악을 선보였던 그는 어느 메뉴라도 OK다. <반지의 제왕>의 웅장한 사운드트랙에는 영화음악의 거의 모든 메뉴가 다 들어 있다. 그래서 여러 상들에 후보로 올라가 있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