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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스> 들고 내한한 아메나바르 인터뷰 (2)
사진 이혜정김혜리 2002-01-18

직접 음악을 작곡하는 건, 남에게 맡기면 잔소리꾼이 될 것 같아서

- 서스펜스영화에서 음악을 가장 능숙히 구사하는 감독이라는 평을 듣는데요. 영화음악가로서 영화를 반주하는 원칙이 있나요.

전제는 효율성의 추구입니다. <디 아더스>에는 고전적이고 너무 두드러지지 않는, 유령영화로서는 매우 인간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는 이 영화에 어울리는 음악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플루트, 첼로 같은 독주 악기를 택했습니다. 첼로는 인간의 음성과 비슷하니까요. 메인 타이틀은 자장가풍이고, 최근 스릴러에서 과용되고 있는 피아노는 제외했습니다. 대신 피아노와 하프시코드, 하프와 하프시코드를 믹스해 색다른 느낌을 시도했어요. 음악 작업의 스트레스가 크지만, 남에게 맡기면 정말 꼴도 보기 싫은 잔소리꾼 감독이 될 것 같아 직접 내 영화의 음악을 작곡합니다. 다른 감독의 영화로는 <마리 포사> <Nobody Knows Anybody>의 스코어를 만들었습니다.

- <디 아더스>는 <식스 센스> 같은 영화와 비교하면 매우 유럽적입니다. 그러나 유럽 호러영화와 견주어보면 최상급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속성과 고전적 미국 스릴러의 요소를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스스로 어떤 영화적 전통과 연이 닿는다고 생각합니까.

원칙은 되도록 많은 영화, 다양한 경향, 장르를 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할리우드 감독들로부터 내가 아는 대부분을 배운 것은 사실입니다. 한편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영화에 대한 감독의 통제력을 보존하는 유럽의 전통을 지속하는 일에 찬성입니다. 이런 점에서도 <디 아더스>는 두 세계의 독특한 콤비네이션입니다. 유럽에서 찍었고 유럽의 돈도 들어갔지만, 할리우드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요소를 융합했지요. 장르의 게임을 했고 스타를 등장시켰으니까요. 비록 니콜은 상업영화로서가 아니라 인디펜던트영화로서 <디 아더스>에 참여했습니다만.

- 할리우드와 공동작업을 한 <디 아더스>에서 새롭게 경험한 것은 테스트 시사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최종 편집권에 대한 간섭은 없었나요.

할리우드와 큰 영화를 만들 때면 다들 그런 문제를 걱정하지요. 그러나 모든 과정은 편했고, 시사 반응도 좋았어요. 500명의 표본 관객으로부터 통계가 나왔는데 몇몇 지적이 흥미로웠고 실제로 영화의 세부를 약간 수정했습니다. 예컨대 그레이스와 남편의 베드신은, 이 여성이 지닌 섹스에 대한 갈증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시나리오를 쓸 때 마음에 들어한 부분이었지만, 관객은 난데없고 충격적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스페인 시사결과도 마찬가지여서 “그렇다면 잘라내자”고 결정했습니다. 관객의 턱짓을 좇아 영화를 일일이 고치고, 그래서 영혼도 정신도 없는 ‘디카페인’ 영화, 지루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용납할 수 없지만, 테스트 시사결과가 경전 행세를 하지 않는 한 상업적 잠재력을 가진 영화만들기에는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 <떼시스>에서 카스트로 교수는 대중의 욕구에 영합하는 영화를 옹호했습니다. 당신은 그 영화에서 스너프필름의 해악을 명확히 보여줬지만, 반면 영화 말미에 병원의 입원환자들이 폭력장면에 도취돼 있는 것도 보여주었습니다. 영화감독으로서 모종의 내적 갈등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는 인상도 받았는데요.

일단 영화 속의 모순을 좋아합니다. <떼시스>의 컨셉 자체에 모순이 있었다는 건 아니구요. <떼시스>를 쓰면서 나 자신의 도덕적 좌표를 찾을 수 있다고 할까. 개인적으로 영화는, 적어도 내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에 한 다리를 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집세를 낼 수 있도록 관객이 극장에서 내 영화에 관람료를 지불하기를 원하니까요. 그것은 어떤 기본입니다. 반면 나는 모든 것이 성공 때문에, 관객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행해져도 된다고 믿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모종의 모럴이 있습니다.

- 사람들은 흔히 당신을 스타일리스트로 여깁니다. 뒤집어 나쁘게 말하면 절박한 주제의식은 덜하다는 평가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세편의 영화에서 일관된 주제도 없지 않습니다. 현실과 꿈의 경계,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세계 사이의 경계를 검토했으니까요.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나는 언제나 내 영화를 두 가지 차원에서 완성도 있게 만들려고 합니다. 일단 즐거움을 위해 극장에 오는 관객을 위해, 물리적인 형식적인 차원에서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내 영화는 다양한 테마도 갖고 있습니다. <오픈 유어 아이즈>에서 사체냉동산업 이야기는 맥거핀이고 거기에는 리얼리티, 우정, 배반에 관한 생각이 들어 있고 우리가 스스로 악몽을 만드는 방식, 소외, 고립,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게 없다면 영화는 재미도 없었겠죠. <디 아더스>는 아무 데나 40%를 잘라내어 본다 해도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주가 되는 영화입니다.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이 내겐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종교, 가족과 사랑의 어두운 측면 등등. 내게 있어 오락과 철학의 두 가지 레벨에서 존재합니다.

- <디 아더스>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가 공존합니다. 그게 당신의 우주관인가요.

나는 불가지론자입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서로를 보지 못한다는 설정은 히치콕식으로 말하자면, 가족이나 사랑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하기 위해 설정된 맥거핀입니다. 개인적으로 초자연적 경험은 없어요. 그에 근접한 일은 하나 있었죠. 마드리드의 내 아파트에서 새벽녘에 쿵쿵거리는 무거운 발소리가 울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위층을 확인한 결과, 거의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 한분이 살고 있을 뿐이더군요. 진상은 아직도 모른답니다.

- 특정 영화사나 프로듀서와 장기 계약을 맺고 있는 상태인가요.

첫 영화를 만들 때 소시에다스 제네랄 드 시네와 세편짜리 계약을 맺었고 <디 아더스>로서 계약을 완수한 셈입니다. 고려하고 있는 새 영화는 없고 그저 가능성을 활짝 열어둔 채, 그간 못했던 독서와 영화구경을 하고 인생을 음미하려고 합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집필에 들어갈 만큼 강한 아이디어가 지금은 없어요. 뭘 원하는지 흐릿한 상태에서 달려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디 아더스>의 경우 엔딩과 중간의 몇몇 포인트를 먼저 구상했지만, 보통은 시나리오 착수 전에 탄탄한 구조를 만듭니다.

- 공동기자회견에서 영화 만들기를 하나의 생계수단으로 여긴다고 쿨하게 말했는데, 언젠가는 다른 일을 하고 살 수도 있을까요.

아뇨. 나는 작곡이나 글쓰기보다 연출이 가장 편해요. 작곡가나 작가일 때는 내 자신이 ‘침입자’(intruder)같이 느껴집니다.(웃음) 물론 집세를 내는 방편이라는 점이 중요하지만 영화 만들기에는 부정할 수 없는 쾌락과 흥분이 있고 그게 내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가장 좌절스러운 일이 있다면 지루한 영화를 만드는 거겠지요. 그건 내 삶 자체를 지루하게 만들 테니까요. 영화를 안 만들면? 글쎄, 그냥 관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내겐 만드는 일이 가장 잘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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