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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데이즈>의 김문생 감독, <마리이야기>이성강 감독을 만나다 (2)
2002-01-18

`영화보고 하늘 볼 마음 생긴다면 만족해요`

디지털 기술이 아니라 사람 마음이 중요

김 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려서 직접 만드는 사람이 아니니까 가끔 소외감도 느껴요. 애니메이터들은 대부분 애니메이터 출신의 감독을 원하거든요. 애니메이션 파트나 업계에서 다들 날 이방인으로 보고 있는 거죠. 내 생각을 전달할 때 그림으로 그려보일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할 때도 있지만, 꼭 그림을 그려야만 애니메이션 연출을 할 수 있다고 생각진 않는데…. 이 감독은 그림 그리죠?

이 많이 그리긴 하지만, 저도 뭐, 수정할 때나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고 그려보이는 거죠.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안 해 봤고요. 연출이 가능하다는 건, 사람들과 같이 얘기를 쉽게 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 리테이크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건데, 그러기 위해선 내가 잘 아는 방식으로 가야 되겠다 싶었죠.

그게 기존 애니메이션 프로덕션과는 겹치는 부분이 별로 없었어요. 내가 했던 경험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람들을 끌어오면서 그게 어느 정도 잘됐기 때문에…. 아쉽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그분들이 가진 경험을 충분히 가져올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거예요. <마리이야기>는 내가 편한 방식으로 꾸려온 거지만.

김 전 그렇게 이방인으로 보는 게 후지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만드는데, 아니 감독이 연기자 출신 아니라고 연기 지도 안 하나? 애니메이터는 연기자예요.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하는 데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기자를 통해서 내 표현을 하고 싶은 건데, 좋은 연기자, 좋은 애니메이터가 필요하죠.

하지만 오케스트라에서 악기 소리가 아무리 좋아도, 지휘자가 없으면 조화를 이루기 어렵잖아요. 감독은 교통정리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화는 감독 생긴 대로 나온다고 하잖아요.

이 감독님 만나니까 <마리이야기> 하고 똑같구나 싶은데. (웃음) <마리이야기>는, 성과로 볼 때 선배들이 해왔던 것에 이어 애니메이션에 다시 한번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것 같아요. 우리도 이럴 수 있구나 하는. 개인적인 욕심으론 제가 첫 단추를 끼우고 싶었는데, 첫 단추를 잘 끼우셨어요.

전 또 다르겠죠. 좀 방방 뜨길 좋아하고, 활동적이고 그러니까 작품도 그렇게 나오겠죠. <마리이야기> 이후로는 이보다 떨어지는 작품들은 용서를 안 할 거예요. 개봉을 해? <건드레스>? 어휴. 그런 면에서 맛의 미감을 한 단계 상승시켰다는 게 좋았고, 제 영화도 그런 단계를 딛고 더 나아가길 바라요.

이 사실 감독은 전체적으로 얼마나 잘 아우르는가의 문제죠. <마리이야기>가 애니메이션의 어떤 견본이 될 수 있다면 좋고, 기쁜 일이에요. 하지만 <마리이야기>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 한 것도 아니고, 테크닉을 연구해서 만든 게 아니라 결국 사람이 한 거예요.

이런 얘기를 하고 싶고, 어떤 방식의 그림, 어떤 음악을 써서 할 건가 하는 창작적인 바람에서 출발한 거죠. 뭔가 달라야 한다, 그런 건 아니에요. 뭘 생각하느냐 하는 주제서부터 기술도 사람도 끌고 들어오는 거죠. <마리이야기>를 얘기할 때 디지털을 강조하는데, 그게 다는 아니거든요. 디지털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게 더 컸고요. 회화적인 느낌이 강한 것이나 정서적인 느낌 같은 걸 전달하고 하는 것도 기계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죠.

김 스타트는 저와 완전히 반대예요. 난 달라야만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최고가 되려면 유일해야 한다, 유일해지면 그 자체로 최고다.

하지만 서로 반대라고 생각했는데, <마리이야기>를 보면서 역시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우리를, 문화를 지켜주지 않을까. 난 디즈니 싫어하거든요. 작품이 나빠서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태도가 싫어요. 몇몇 작품들말고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싫어해요.

<마리이야기>를 보고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여기에 아마 우리의 정체성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난 ‘달라야 한다’는 출발을 앞세웠지만, 이 감독이 만든 것도, 또 내가 만드는 것도, 결국 다 각자의 모습이죠.

사실 뒤집어보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레테르도 외제투성이고, 그런 환경에서 살면서 한국적인 것 주장할 필요도 없고, 그냥 있는 그대로, 그것이 유일하게 달라지는 길이다, 그런 점에서 같은 마음일 거란 생각이 들어서 참 재밌다 싶었죠.

행복한 감독들, “즐기면서 일하자”

김 <원더풀 데이즈> 하면서 전 성공지향적인 인물에서 많이 바뀌었어요. (웃음) 모자라든 어떻든 내가 이 일을 평생 할 거라는, 그런 계기가 됐죠. 현실적인 여건은 어려웠지만, 어느 누구는 돈이 있어서 1천호에 그릴 걸 난 10호에 그리는 것뿐이죠. 그렇다고 10호가 1천호보다 꼭 더 못한가? 아니에요. 더 작을 뿐이죠. 예술이 되려면 자기 정신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건이 좋아지고, 환경이 좋아진다고 꼭 작품이 좋아질까.

이 전 <마리이야기>를 만들고 좀더 능숙해졌다고…. (웃음)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조직에 대해 알게 됐죠. 재미없어졌어요. 내 작업실에서 혼자 작업하고 그럴 때 만났던 자유스러운 사람들을 많이 잃어버리고, 딱딱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김 난 10년이 지나면 이 일을 하고 있을 거라 상상했는데, 그 모습이 된 거엔 불만없어요. 예전에 광고하면서 거의 10년을 1주일에 3일씩 자고 살 땐 인생이 왜 이럴까, 불행하다, 그랬는데, 지금도 1주일에 두세번 집에 들어갈까 말까지만 편안해졌어요. 영화를 만나면서 변화한 거죠. 전엔 꽤 잘 살았던 것 같은데, 가난해져서 좀 슬플 뿐. (웃음) 그건 불행한 게 아니라 불편한 거고.

이 생활 전선으로 친다면 전 항상 아르바이트로 살아왔죠. <마리이야기>도 아르바이트 같았고. 사람들이 많으니까 몇시에 나와야 되고, 몇시에 퇴근하는 게 정해지고, 경직된 사람들도 만나야 했던 게 좀 달랐지만. 이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면 다시 아르바이트 인생의 여유만만함이…. (웃음)

<마리이야기> 땐 중단되지 않게 끌어가야 되니까 긴장을 했었어요. 좀 반성이 되는 게, 더 즐기면서 했어야 하는데…. 앞으로는 좀 즐기면서 해야죠. 주5일근무제를 실시하고(웃음) 사람을 생각하는 작업으로….

김 전 1주일 내내 즐기자, 즐겁게 일을 하자, 그러면서 1주일 내내 회사 나와, 그러는데요. (웃음)

이 저도 일할 땐 일하는 걸 즐겨라, 난 무지하게 즐겁다, 너희들은 즐겁지 않니? 그랬죠.

김 진짜 즐겁지 않아요?

이 대체로는 즐겁다는 생각은 잘 못해요. (웃음) 특히 애니메이션은 즐기기 힘든 작업인 것 같아요.

김 그래도 이미 푹 빠져 있는데…. 전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냐는 말을 좋아해요. 애니메이션 작업은 시작할 때 제일 기분 좋고, 끝날 땐 그 두배로 좋죠. 그러기 위해 그 과정을 즐겁게 견디는 게 감독의 숙명 같아요.

글황혜림 blauex@hani.co.kr

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 사진 1 김문생 감독 , ☆ 사진 2 이성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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