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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서스펜스의 재동, <디 아더스>의 아메나바르를 만나다
김혜리 2002-01-18

당신의 어지럼증은 나의 즐거움

영화 <디 아더스>(The Others)에서 정작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공중을 떠다니는 것은, 하얀 천에 사슬을 끄는 원혼들이 아니라 관객이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30) 감독은 열려 있는 방문을 결코 용납 못하는 엄격한 안주인 그레이스(니콜 키드먼)의 호령도 아랑곳없이, 모든 가능성의 문을 비스듬히 열어놓는다. 이 저택에서는 찻잔 하나도 실체를 확언할 도리가 없다.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한밤의 괴성과 임자없는 연주는 유령의 놀음일까, 아니면 그저 강박관념의 메아리일까? 모든 소동 뒤의 진상은 히스테리컬한 엄마를 놀리려는 아이들의 장난인가? 아니면 집을 빼앗으려는 음험한 하인들의 흉계인가?

그레이스의 저택을 감싸고 빛을 완강히 거부하는 마지막 커튼이 떼어내질 때까지 <디 아더스>의 모든 대사는 중의법의 수수께끼로 남는다. “나는 바닥이 좋아요. ‘진짜’같이 느껴지니까요.” 현실과 꿈의 나침반을 잃어버리고 결국 유치장 바닥에 앉아 있기를 고집하던 아메나바르의 전작 <오픈 유어 아이즈>의 주인공 세자르의 신음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영화에 말려든 관객의 혼잣말일 수도 있다.

‘보여주기’대신 ‘안 보여주기’를 연구하다

스물셋에 내놓은 장편 데뷔작 <떼시스>(1996)와 두 번째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1997)가 아메나바르에게 붙여준 애칭은 ‘스페인의 스필버그’. 그러나 이 영화영재의 유년을 지배한 것은 TV나 영화가 아니라 책과 이야기였다. 극장이나 TV로부터 아이들을 멀리 둔 부모 슬하에서 자란 아메나바그 소년은 열살이 되기도 전에 단편 스토리를 쓰고 그 이야기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지어내며 시간을 보냈다. 흥미로운 스토리, 그리고 그것을 한층 효과적으로 구경꾼 앞에 펼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의 방법론. 후일 그의 영화를 지탱한 두 가지 자산을 아메나바르는 꽤나 일찍부터 저축한 셈이다. 아메나바르는 15살이 됐을 무렵, 자신이 글쓰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 ‘묘사’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미지에 눈떴다. “일일이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보여주는 것이 훨씬 빠르고 쉬운 설명”임을 알아차렸다고 그는 회고한다.

마드리드대학에 입학한 아메나바르는 비로소 영화를 공부한다. 이때 만들어진 단편 <히메놉테로>는 단편영화 제작에 착수한 대학생들의 일상에 픽션과 리얼리티가 중첩되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이야기로, <떼시스>의 ‘배아’격이라고 할 수 있다. 또다른 단편 <루나>는 차를 몰고 가던 한 여자가 픽업한 남자와 몇 시간 동안 갖는 밀도 높은 체험을 기록한 폐소공포증적 스토리의 작품. 한정된 공간에서 연기와 대사만으로 긴장의 탄력을 지속하는 구성이 아마 <디 아더스>의 밑거름이 됐을 법하다. 재학 중에 받은 첫 장편 <떼시스>의 연출 제안으로 아메나바르는 캠퍼스 생활을 짧게 접었다.

스너프필름이라는 뜨거운 소재를 건드린 스릴러 <떼시스>는 초짜다운 군더더기와 원색의 치기가 보이지만, 몇배 강렬한 영화적 재기와 패기가 그것을 가볍게 가리는 영화로 탄생했다. 그러나 <떼시스>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보이지 않는 것, 부재하는 것을 통해 스트레스와 공포를 극대화하는 아메나바르의 스타일이 테두리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 “<떼시스>는 폭력에 관한 영화이므로 폭력을 보여줄 적당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내 목표는 폭력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의 이슈를 관객에게 던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의 폭력을 디스플레이해서 그 목적을 달성할 도리는 없었다. 내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진짜배기’ 폭력이었고 시각효과는 진정한 느낌을 낼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도달한 해결책은 카메라를 반대편에 세워 캐릭터의 반응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그 의미를 전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아주 파워풀했고 그때부터 나는 ‘보여주기’ 대신 ‘안 보여주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철부지가 시련을 통해 과오를 회개한다는 성경의 욥이야기를 닮은 우화적 내용과 공상과학적 장치를 결합한 두 번째 스릴러 <오픈 유어 아이즈>에서도 아메나바르는 관객에게 등장인물과 똑같은 양의 정보만 허락했다. 시나리오의 밀도와 일관성에서 한충 성숙한 <디 아더스>에서도 이같은 아메나바르의 전략은 지속된다. 1999년 선댄스영화제에 소개된 <오픈 유어 아이즈>는,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재능에 세계영화계가 눈을 뜨도록 재촉했고 톰 크루즈의 프로듀싱 파트너 폴라 와그너도 그중 하나였다.

무혈의 테러가 자아내는 ‘뺄셈의 서스펜스’

<오픈 유어 아이즈>를 촬영하는 동안 아메나바르는 정반대의 영화를 꿈꾸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평면이 지그재그로 엇갈리는 <오픈 유어 아이즈>와 달리 하나의 로케이션, 소수의 캐릭터를 가진 지극히 심플한 영화를 구상하던 그는, 우연히 들은 햇빛 알레르기 병에 걸린 아이들의 일화를 이야기의 그물코로 삼아 세 번째 영화의 스케치에 돌입했다. 이렇게 태어난 아메나바르의 첫 번째 영어영화 <디 아더스>는, 무혈의 테러와 보이지 않는 위협이 자아내는 ‘뺄셈의 서스펜스’로 요약되는 아메나바르 스릴러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클라이맥스다. <식스 센스>의 트릭을 두세겹 포개놓은 듯한 플롯도 전작보다 완숙하지만, 한편의 드라마로서 감정을 휘젓고 뉘앙스를 조율하는 솜씨의 발전 폭은 더 크다.

<디 아더스>에 이르러 아메나바르의 기교적 스토리텔링과 클래식한 화면, 세심한 사운드디자인은 각각 높은 완성도를 이루는 데 그치지 않고, 너무 큰 덩어리의 슬픔을 삼키려다 목이 메어버린 한 여성의 내면과 인생의 섭리를 그려내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숲 속에서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그레이스가 홀연히 나타난 남편과 재회하는 신의 연출은 좋은 예. 컴퓨터로 그려낸 안개와 잠시 모노로 먹먹해졌다가 객석을 휘돌며 열리는 사운드디자인은 그레이스의 내면과 그녀가 처한 상황의 공허함을 생생히 드러낸다. 고립과 소외를 다룬 <떼시스>와 <오픈 유어 아이즈>에서도 질투를 중요한 모티브로 썼던 아메나바르는 그가 “나의 가장 감정적인 영화”라고 부르는 <디 아더스>에 이르면 그레이스와 아이들 사이의 드라마와 미스터리 내러티브를 나란히 진행시키다가 이중의 클라이맥스로 동시에 몰고 감으로써 내용과 형식의 한결 깊숙한 결합을 도모한다.

아메나바르는 스페인 국내와 해외에서 흔히 테크닉의 유희만 탐닉하는 스타일리스트로 인식돼왔지만, 어찌보면 미스터리 장르의 속성상 ‘발견의 여정’을 뒤쫓는 그의 영화는 상당히 교훈적인 일종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세편의 작품에서 아메나바르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삶을 통제하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만 상상 못한 사건으로 고통스런 진실에 직면한다. 1월8일 대한극장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아메나바르 감독은 반전에 의존한 영화들이 통상 최후의 폭로로 영화를 끝내는 것과 달리, 반전 이후 설명적인 에필로그를 붙이는 성향에 대해 “인물들이 발견에서 멈추지 않고 그 발견으로 말미암아 뭔가 배우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영화는, 관객의 지성과 벌이는 게임

2001년, <디 아더스>는 스페인에서 2400만달러의 입장수입을 올려 1960년대 이래 스페인영화계에 처음 출현한 블록버스터로 불리며 산티아고 세구라 감독의 <토렌테2>와 더불어 스페인영화의 자국시장 점유율을 2000년에 비해 9% 상승한 19%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스페인영화계에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여전히 신기하고 예외적인 존재로 간주되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과거 스페인영화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거장들이나 페드로 알모도바르, 훌리오 메넴, 알렉스 드 이글레시아같은 동시대 스페인 감독들, 유럽 호러의 전통과 뚜렷한 접점을 찾기는 어렵다. “나는 아마 자기 나라 안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할리우드와 조우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예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아메나바르는 미국과 유럽의 자본, 스페인 스탭, 앵글로 색슨계 배우들과 작업한 <디 아더스>가 어느 나라 영화로 불리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스스로 칠레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성장한 배경을 갖고 있기도 한 그는 <디 아더스>가 지극히 잉글랜드적인 향기의 작품인 만큼, 영국에서 개봉됐을 때 관객이 ‘생물학적으로’ 영국적인 영화라고 느끼길 바랐고 그래서 라틴계 캐릭터를 일부러 만들어넣거나 하는 일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영화교사’를 묻는 질문에 “내가 알아야 할 대부분의 것은 앨프리드 히치콕, 스티븐 스필버그, 스탠리 큐브릭 세 사람에게서 배웠다. <디 아더스>를 완성한 지금은 그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고 신중히 답한다. 세 감독의 공약수는 관객의 반응과 심리를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데 능하다는 점이다. 아메나바르는 그것이 미국영화의 세 거장을 좋아하는 이유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조작의 측면과 영화의 훌륭함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내게 있어 필름메이킹의 본성은 마술과 통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감추고 청중이 엉뚱한 곳을 쳐다보도록 짐짓 속인 다음 쾅! 놀라게 하는 것 말이다.”

근원적인 두려움을 끈적끈적한 피가 흐르는 유럽식 고어영화 대신 깔끔한 서스펜스 게임을 통해 풀어내는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주류 할리우드의 문턱을 어렵지 않게 넘어섰다. 다음에 그는 또 어떤 설계도의 미궁을 지어 우리를 초대할까. “관객으로서 감독이 내 정신을 갖고 게임을 벌일 때 나의 지성에 대한 존중심과 정직성을 잃지 말기를 바라듯이, 나 역시 영화를 만들면서 정직성과 관객의 지성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아메나바르의 말을 믿어본다면, 그 미궁이 얼마나 어둡고 위험한 것이든 간에 그는 우리에게 믿음직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도 함께 건네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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