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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NO, 주변은 YES! - 오기민
2001-03-12

마술피리 대표·<여고괴담>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고양이를 부탁해>

어떤 배경,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듀서로 입문, 어떤 작품에 참여했나.

옛날 이야긴 하기 싫은데(웃음)…. 오랫동안 노문연(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에서 활동하다가 92년 김동원, 변영주 감독 등과 함께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는 푸른영상 창립멤버로 들어갔고, 장산곶매에도 잠깐 머물렀다. 유의미한 시간들이었지만 극영화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삼호필름과 LIM에 들어갔는데 두곳 모두 한국영화 제작에 의지가 없어 때려치웠다. 이후 첫 작품으로 기획시대에서 문승욱 감독과 <이방인>을 만들었다. 폴란드에서 찍으면서 그곳의 안정된 시스템, 스탭들의 연륜 등에 놀랬었다. 98년엔 박기형 감독과 함께 씨네2000에서 <여고괴담>을 만들었다. 예상보다 크게 잘돼 흥행 PD, 호러 PD라고 불렸지만, 별로 달갑지 않았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민규동, 김태용 감독과는 다른 영화에서 만날 요량이었는데, 원래 염두에 뒀던 감독과 뜻이 맞지 않아 포기하고 연락했다. 그러고보니 지금 작업하고 있는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을 빼곤 모두 서울단편영화제에서 만난 이들이다. 내가 좋게 봤으니 수상할 리가 없지. (웃음) 만들고 싶은 영화를 꾸준히 제작하려고 지난해에 마술피리라는 제작사를 열었다. 창립작인 <고양이를 부탁해>는 인천에서 5회분의 촬영을 진행한 상태다. 올해 준비중인 작품들은 고딕공포라는 컨셉의 <장화홍련전>, 전경린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감독 도성희), 변영주 감독의 <유괴> 등이 있다.

프로듀서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 언젠가 이런 영화를 만들어봐야지 떠올린 영화가 있다면.

내 관심은 주변적인 것, 마이너리티에 가 있다. 주변과 흔히 말하는 일상은 다르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 요즘 그 일상을 행복하게 바라보는 영화들이 나온다. 대개 객관이 전제되지 않은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그걸 연장시켜가면 굶어죽는 이도 보는 시각에 따라 행복하다는 비약도 가능하다. 내가 하고 싶은 영화들은 그런 일상과는 거리가 먼, 주변부에 관한 영화다. 판권이 이장호 감독에게 있는 것으로 아는데 님 웨일즈의 소설 <아리랑>도 하고 싶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우리 집안이야기를 하면서 한국 근현대사적인 상황들을 그려보고 싶기도 하고. 물론 뒤의 작품은 프로듀서보다는 감독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소재이고 주제이다보니 구상만 하고 접어놓은 지 꽤 됐다.

왜 프로듀서를 하는가? 어떤 재미? 어떤 의미.

먹고살려고. 또 스케줄 조정하면 좋아하는 낚시하러 전국 팔도 돌아다닐 수 있는 직업이니까. (웃음) 의미같은 건 없다. 단, 너무 영화에 미치지 않았으면 한다. 프로듀서 일도 마찬가지다.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영화를 떠받들고 싶진 않다. 영화 만드는 것에만 매몰되면 가끔 큰 걸 못 본다. 프로듀서가 선택해야 하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어떤 건 돈이 안 되는 데다 모험에 가깝고, 또 하나는 안정적이고. 매번 고민해야 한다. 둘 다 안 할 수는 없고 그 지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 사건? 어떻게 헤쳐나갔나.

언제나 힘들다. 감독 결정하고 배우 캐스팅 하고 투자 끌어들이고 쉬운 게 없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돌아보면 언제든 내 한계나 어리석음이 있었을 것이고. 그게 또 원동력이자 자양분이 됐던 것 같다. <여고괴담> 때는 너무 빡빡한 일정 때문에 힘들었다. 물론 이춘연 사장이 아니었으면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 어른이 많은 부분을 내게 맡겨줬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조율하는 것이 프로듀서의 역할이니까. 무엇보다 그땐 오기가 있었다. 감독을 결정할 때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떤 영화를 만들 건지, 나하고 공유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인지를 본다. 지금까지 작업한 감독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공적인 만남이었던 것 같다.

그간 경험에서 ‘이것만은 고치겠다’고 생각한 충무로 관행이 있다면.

역시 시스템이다. 언제까지 감독이 모든 것을 일일이 체크해야 하나. 엄청나게 많은 제작비를 쏟아부은 만큼 분야별로 전문화되어야 하는데 연출부만 보더라도 달라진 게 거의 없다. 한 작품 끝내면 축적되는 게 있어야 하는데 다들 뿔뿔이 흩어진다. 일단 전문 조감독제 등이 도입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해줘야 한다.

나의 스승, 나의 교범은.

내게 감동을 줬던 사람들은 있다. 충무로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정성일씨를 본 적 있다. 쇼크였다. 그가 보여준 영화에 관한 관심, 태도, 지식, 감수성까지. 그가 뽑은 걸작들을 보면 죽겠다 싶을 정도의 영화들도 있지만. (웃음) 함께 어울리던 김홍준 감독, 김명준 노동자뉴스제작단 대표도 마찬가지.

3세대 프로듀서들이 해야 할 일, 담당해야할 몫은 무엇인가.

3세대 구분의 명확한 기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386세대라는 말처럼 의미없는 말장난 같아 반감도 있다. 개인적으로 파이를 키우자는 말에는 선뜻 동의가 안 된다. 큰 규모의 영화들이 맡는 몫도 있겠지만, 다른 영화들이 죽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비상업적인 소재의 영화를 만들 때는 딜레마에 부딪힌다. 퀄리티를 높여야 하는데 충분한 제작비를 모으기가 쉽지 않다. 물론 방법이 없진 않을 것이다. 영화만드는 것도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영화 속 이야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

지금 준비중인 작품.

정재은 감독과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촬영 때 스크립터로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도형일기>가 잘 알려졌지만, 개인적으론 <둘의 밤>이라는 단편의 느낌이 더 좋다. 정 감독이 연출하는 <고양이를 부탁해>는 이전 영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여고괴담> 두편은 내가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영화였다. 그런데 <고양이를 부탁해>는 프로듀서가 개입할 부분이 별로 없는 영화다. 시나리오를 놓고서 이야기를 할 때도 내 의견을 감독이 못 받아들이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순순히 물러섰다. 개인의 퍼스낼리티가 담긴 영화다. 그래서 요즘 촬영 나가도 대화가 거의 없다. 어떻게든 영화에 드러나겠지.

이영진 기자 ant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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