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십대영화 욕심난다 - 심보경
2001-03-12

디엔딩닷컴 이사·<후아유>

어떤 배경,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듀서가 됐나.

대학 졸업하고 광고회사에서 광고기획을 했고, 그뒤엔 매니지먼트사에서 배우 매니저로 일했다. 언니(심재명)의 권유로 명필름에 입사해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이 93년. 입사해서 <그 여자 그 남자> <닥터 봉> <게임의 법칙>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등의 마케팅 일부터 배웠다. 명필름에서 <코르셋> 제작을 준비하는 동안, 경상비를 벌어볼 요량으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홍보했다. 서른살이 되던 해에 <접속>을 준비했고, 프로듀서로 데뷔했다. 명필름은 언제나 이은 감독과 심 대표, 그리고 나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역할을 나눠 공동 진행하는 식이다. <해피엔드>의 경우 크레딧은 기획으로 올랐지만, 캐스팅과 마케팅 등을 진행하기도 했고, 부제작을 맡았던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이은 감독이 외적인 시스템 가이드를 하고, 내가 시나리오 등 제작기획에 관한 부분, 현장 컨트롤, 마케팅 등의 후반 관리를 두루 담당했다. 광고와 매니지먼트로 출발했다는 ‘출신성분’ 때문인지,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 젊은 문화에 관심이 많고, 마케팅 측면에 관심과 아이디어가 많은 편이다.

언젠가 이런 영화를 만들어봐야지 떠올린 영화가 있다면.

할리우드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와 돈 심슨의 영화들을 벤치마킹하고 싶다. 이들의 영화에는 스타가 있고 음악이 있고, 젊은 감각이 살아 있다. 다른 무엇보다 캐릭터와 플롯을 중시한다는 것도 맘에 든다. 그들처럼 기본기를 갖추고 있고, 포장도 근사한 영화들을 만들고 싶다. 욕심이 나는 건, 십대영화다. 지금까지 십대영화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하나의 틀에 불과했지만, 난 십대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다. 심의나 등급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최호 감독의 <후아유> 이외에도, <아메리칸 파이>처럼 십대들의 첫경험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 <첫경험>을 기획중이다.

왜 프로듀서를 하는가? 어떤 재미? 어떤 의미.

하나하나 만들고 완성해가는 재미다. 한편의 영화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해, 잠재된 능력을 끄집어내 쓰는 훈련을 하는 것. 내게 없는 능력은 계발해 나가야 한다. 말하자면 내가 가진 능력 이상을 끄집어내고 발휘하고 종합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를 통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수확이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 사건? 어떻게 헤쳐나갔나

<접속>으로 처음 프로듀서를 맡았을 때다. 현장에서의 여러 가지 돌발상황 앞에서 혼자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영화란 게 참 힘들구나, 실감했다. 영화가 종합적인 예술이라지만 프로듀서에겐 종합적인 고통이더라. 한마디로 내가 나를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나리오에 관여할 땐 크리에이티브가 부족함을 한탄하며, 촬영 진행중엔 영화라는 메커니즘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이대 후문에서 마지막 촬영을 하는데, 일급 스탭이 만든 이 좋은 작품이 혹시 망하면 어쩌나, 조바심이 들더라. 지방시사 스케줄 체크하고, 부산에 봉고 타고 내려가 남포동에서 영화 전단을 직접 뿌리기도 했다. 이 작품 끝나고 더는 못하리라, 생각했지만…. (웃음)

그간 경험에서 ‘이것만은 고치겠다’고 생각한 충무로 관행이 있다면.

합리적인 프로덕션 시스템 구축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게 아쉽다. 기술적인 측면에 대한 개념이 있고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너무 쉽게들 생각하는 것 같다. 프리프로덕션과 후반작업에 여유를 두고, 마케팅의 기본 일정을 잡아놔야,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고, 영화라는 벤처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영화가 흘러가는 전체적인 공정을 정확히 알고 운영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다들 개인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데 관심을 쏟고, 막 시작하는 이들조차 단기 승부를 보려는 추세다. 산업이 건강해지려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스승, 나의 교범.

이은 감독. 프로듀서로서 많은 걸 배웠다. <접속>하면서 “너무 괴롭다”고 하소연할 때마다 달래주기는커녕 “괴로워한다고, 일이 해결되냐. 방법을 찾아야지”라고 다그쳐서, 많이 야속했다. 그런데 지금은 고맙다. 변수 앞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는 태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방식을 배웠다.

3세대 프로듀서들이 해야 할 일, 담당해야 할 몫은 무엇인가.

요즘 대작도 많이 나오고 있고, 타깃도 확장됐다. 거품이 빠진 다음이 문제다. 타깃별로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명감인지, 공명심인지, 그런 게 있다. 음악이든 영화든, 다양한 타깃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나와줘야 한다는. 상업지향적인 프로듀서들이 많이 나와서, 다양한 영화의 토양을 다져야 한다. 우리는 소위 386세대와 신세대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 아닌가.

지금 준비중인 작품.

TTL 광고기획사 화이트와 명필름이 공동 투자해서 만든 영화사 디엔딩닷컴의 창립 작품 <후아유>를 준비중이다. 디엔딩닷컴은 N세대, 멀티미디어세대 지향 영화사다. 다양한 미디어의 소구층인 십대를 타깃으로, 그들이 관심을 기울일 만한 영화를 만들되, 온라인상에서 마케팅과 제작이벤트를 진행하려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MTV의 사례처럼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목표다. <후아유>는 <바이준>의 최호 감독 연출로, 젊은이들의 꿈과 일과 사랑을, 사이버 공간에서 풀어간다. 직접 기획한 게임 사이트에서 베타 테스터로 참여한 남자가, 같은 빌딩의 수족관 다이버를 게임 파트너로 만나면서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는 이야기. <접속>의 아류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이버 공간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이제 문화고 대세다. 그런 트렌드를 게임 형식으로 풀어가되,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일의 동선을 따라 전개하는 멜로가 될 것이다. 6월 크랭크인 예정이다.

박은영 기자 cinepark@hani.co.kr

▶ 충무로 세대교체, 제3의 물결 - 편집자

▶ 일상은 NO, 주변은 YES! - 오기민

▶ 단군신화를 꿈꾼 적 있나 - 조민환

▶ 울리거나, 혹은 웃기거나 - 김미희▶ 영화, 이렇게 만들면 두배로 재미있다 - 김익상

▶ 좋은 나이 마흔, 늦게 핀 영화인생 - 최낙권

▶ 아름다웠던 80년대, 액션으로 풀어볼까 - 김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