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욕망이라는 이름의 디지털
2002-01-23

신현준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용산전자상가’를 방문할 때의 심정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디지털 문화에 대한 희망찬 기대를 품고 발걸음도 가볍게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노와 울분을 애써 삭이면서 가는 것이다. 중간은 없다. 전자는 “나는 구매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포스트데카르트 소비주의의 정언명령에 적합한 경우라면, “나는 리콜한다. 고로 분노한다”는 포스트소비자주의 막가파주의의 산물이다. 불행히도 이번에는 후자였다.

사건의 시작은 컴퓨터를 켰을 때 “하드 디스크에 불량 섹터가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뜬 일이다. 이런 메시지는 ‘20010911 뉴욕 테러’나 ‘미군, 아프가니스탄 공습’에 관한 뉴스만큼이나 공포스럽다. 물론 당사자에게만 그런 것이겠지만. 성격 탓인지 직업 탓인지는 모르지만 컴퓨터에 이상이 있으면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미루게 된다. 운영체제가 삐걱거리면 그 안에 있는 데이터들도 함께 돌아가실 것 같아 초조하기 이를 데 없다.

생난리를 쳐서 데이터를 백업받고, A/S를 받으려고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일은 복잡하게 꼬여갔다. 내가 구입한 제품의 국내 판매에 대한 권리가 모 대기업으로 인수·인계되었다는 것이다. 그 대기업으로 전화를 해보았더니 “정식 수입품으로 확인되지 않은 제품은 A/S 기간 내에 불량이 발생했어도 교환해줄 수 없다”는 ‘방침’을 전해주었다. 왕복달리기하듯 두 업체에 번갈아가며 전화다이얼을 돌려야 했고, 마지막으로 들은 응답은 “외국의 본사에 연락을 취해보겠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며칠 기다려보라’는 이야기였다. 5년만 젊었어도 악다구니를 썼겠지만, 불혹의 나이에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나 어디다 기사 쓰는 사람인데 그 따위로 하면 글로 갈겨버린다”라고 협박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니가 사이비 기자냐’라는 생각이 들어 참고 또 참았다.

좌불안석 끝에 결국은 구입처를 찾아 ‘용산가는 길’에 올랐다. 그런데 웬걸, 그 업체가 입주해 있던 사무실에는 다른 업체의 간판이 붙어 있었다. 들은 말이라곤 “두달 전 이사갔다”는 것이 전부였다. 허탈한 심정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다가 “당신의 소중한 데이터, ***에 저장되고 있습니다”라는 광고 플래카드가 보였다. 10년만 젊었으면 뻘건 스프레이라도 찍찍 뿌렸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변화가 발생했다. ‘정 안 되면 십몇만원 버린 셈치고 새로 하나 사지’라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닌가. 한술 더 떠 ‘새로 나온 디지털 하드웨어가 뭐 없나…’ 하면서 매장 앞을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DVD 레코더나 mp3 디스크맨 같은 제품은 나의 신경계를 자극하더니 급기야 새로운 대상을 향해 욕망이 증식하고 있었다. ‘불량제품 교환’이라는 몇 시간 전의 합리적 요구는 사라지면서, 내가 디지털을 욕망하는지, 디지털이 나를 욕망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심란한 기분으로 사무실에 돌아와서 지난 학기 대학원에서 강의했던 텍스트를 집어들었다. 디지털 자본주의라는 자본주의적 지배의 새로운 국면에서는 “행위의 코드가 인지모델과 심리적 상호작용의 모델들을 통해 정신에 직접 각인되고 있다”라든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집합적인 지적 능력에, 기술적·사회적 인터페이스들 내부에, 사회적 소통의 기호틀 속에 각인된다”는 어떤 사상가의 주장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솔직히 그때는 ‘뭔 말일까…’ 했다.

그렇다면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제공한 새로운 시공간이 공공의 지식과 정서적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은 그저 시류에 편승했던 것일 뿐인가. 혹은 ‘컴퓨터 고장’ 같은 사소한 일 가지고 자본주의적 지배의 새로운 국면이 어쩌고, 욕망의 기호증식이 어쩌고라고 떠드는 것이야말로 과대망상인가. 디지털 자본주의 쓴맛을 톡톡히 보고 있는 아르헨티나나 러시아에 비하면 한국은 쓴맛보다는 단맛을 많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아버릴까… 선택은 자유. 다 좋다. 그런데 본사에서는 왜 아직도 연락을 주지 않는 것이냐. 빛의 속도로 정보가 날아다닌다는 디지털 시대에….

*추기: 인터넷상에서는 이 제품의 불매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소비자운동을 대단한 민주주의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꼴통들 몇놈이 악악대는 것만 몇달 참으면 그만이다”라는 한국 기업의 ‘배째라주의’ 앞에서는 아직 허약하다. 물론 내일까지 전화가 오지 않으면 나도 10년 만에 ‘운동’이란 것에 동참해야겠다. 신현준/ 기술문명 비평가 http://homey.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