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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나이 마흔, 늦게 핀 영화인생 - 최낙권
2001-03-12

눈엔터테인먼트 대표·<번지점프를 하다>

어떤 배경,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듀서로 입문, 어떤 작품에 참여했나.

솔직히 나는 영화광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는 미술에 관심이 있었고 대학교 때는 음악동아리를 했고 대학졸업 뒤엔 죽 무역일을 했다. 그러다 94년 결혼을 하고나니 이게 아니다 싶었다. 무역일이란 게 늘 해외로 나돌게 마련이라 가정을 꾸려나가기엔 적합한 일이 아니었다. 좀더 안정된 일을 찾던 중 음악동아리 선배가 ‘블루캡’이라는 영화사운드 업체에서 음반기획이나 영화관련 일을 해보자 해서 이건 무역보다는 안정적이겠다 싶어 수락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이후 영화 관련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챙겨 보고 신씨네에서 하는 6개월짜리 영상아카데미 프로듀서양성과정을 들었다. 그때 강의를 한 사람들이 심재명, 차승재, 신철, 오정완 대표 등이었고 김승범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원동연(<돈을 들고 튀어라>의 원작자)이 내 동기였다. 거기서 영화인력들을 알현하고 프로듀서가 뭘 하는지 왜 있어야 하는지 등을 알았다. 영화판에 내 나이 또래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고, 프로듀서를 해보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98년에 블루캡을 그만두고 중국으로 갔다. 무역할 때 인맥을 확인하는 의미도 있었고, 중국어도 단련시켜야 했고, 무엇보다 중국영화시장을 보고 싶었다. 돌아오자마자 장윤현, 구본한 대표가 당시 쿠앤씨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했다. 제작부장은커녕 제작부원도 안 해본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했지만 무조건 믿어줬고 이사직함을 달고 <텔미썸딩> 등의 영화제작을 지켜보았다. 2000년 독립해서 눈엔터테인먼트를 차렸고 첫 작품 <번지점프를 하다>를 개봉시켰다.

프로듀서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 언젠가 이런 영화를 만들어봐야지 떠올린 영화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이런 걸 하고 싶다는 것보다 독특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전에 쉽게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영화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틀이 꽉 찬 영화, 법정영화도 좋아하고 컬트나 마니아적인 영화보다 대중적인 영화를 선호한다.

왜 프로듀서를 하는가? 어떤 재미? 어떤 의미.

언젠가 심재명, 이은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프로듀서의 자질이란 원만한 대인관계, 시나리오를 보는 눈, 제작비 안 떼먹을 만큼의 기본적 양심, 건전한 상식 그리고 영화에 대한 열정과 약간의 지식이라고. 그 정도라면 나도 크게 벗어날 것 같지는 않아서 자신감을 얻었다. 사실 평생 해야 할 일을 나이 마흔에 찾은 것 같다. 좋아했던 미술이나 음악도 모두 이 일에 아우를 수 있고 무엇보다 영화를 마친 뒤 성취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결국 영화는 감독이 만든 것이긴 하지만 나를 시발점으로 하여 시작되고 작품에 대해 내 의견이 전체방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재미있더라. 영향력 행사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다. 적극적인 의견개진이 가능하다는 것이 흥미롭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 사건? 어떻게 헤쳐나갔나.

늘 고비고 늘 변수가 따른다. 하지만 가장 어려웠던 때라면, 김대승 감독이 나에 대한 신뢰를 잃었구나 하는 순간이었다. 구정 개봉을 목표로 촬영을 진행시키고 있었는데 프로덕션 스케줄이 안 따라주었다. 세트촬영도 많지 않은데 날씨도 좋지 않았고 배우들도 릴레이식으로 아팠다. 게다가 배우가 3월부터 TV드라마를 해야 되는 상황이었고 제작자로서는 TV와 영화에서 동시에 배우를 노출시킨다는 것은 당연히 피하고 싶었다. 그 사정 내가 왜 모르겠냐마는 결국 개봉일은 절대 못 움직인다, 그 기간 안에 촬영횟수는 아무래도 좋으니 무조건 찍어라 했다. 거의 매일 촬영에 들어갔고 이병헌은 농담으로 동네사람들이 “취직하셨어요?” 묻더라고 했다. 김 감독이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사실 내가 감독이라도 ‘저거 영화 하는 사람 맞아? TV 나오면 어때, 영화만 잘 만들면 되지’ 했을 것 같다. 한참은 대화도 없었다. 스탭들도 욕 많이 했을 거다. 그 순간, 이거 장사꾼 됐구나 했다. 촬영을 끝내고도 후반작업시간과 개봉일자 때문에 한참 고민했었다. 찍는 건 그래도 후반작업을 날림으로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개봉을 2주 미루고 후반작업에 시간을 줬다. 물론 그것도 충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간 경험에서 ‘이것만은 고치겠다’고 생각한 충무로 관행이 있다면.

글쎄, 관행이라고 하긴 뭐 하고 상업영화의 매뉴얼이 필요할 것 같다. 크랭크인을 언제 하면 개봉날짜는 언제 잡는 것이 좋겠다, 예고편, 포스터는 어느 시점에 풀고…, 식으로 프리프로덕션에서 개봉까지를 매뉴얼라이징하지 않으면 늘 처음하는 사람은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일 것 같다.

나의 스승, 나의 교범은.

특정인을 거론한다는 게 조심스러운 일이다. 모두들 장단점이 있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차승재 대표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이은 대표의 논리적이고 치밀한 점을 닮고 싶다.

3세대 프로듀서들이 해야 할 일, 담당해야 할 몫은 무엇인가.

선배들이 너무 잘해왔다. 그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프로듀서라는 업종이 이만큼 왔을까 싶다. 이제는 해외시장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활동이 중요할 것 같다. 소재선택에서도 시작부터 해외시장까지 염두에 두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아직 미개척인 시장까지 뚫어야 한다고 본다. <번지…>의 경우 초반부터 소재에 대한 고민을 했었고 오히려 해외에서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 영화수출뿐 아니라 리메이크 판권까지도 추진중이다.

지금 준비중인 작품.

아직 구체화한 것은 아니고 변동가능성도 많다. 많은 협조가 요구되는 프로젝트라 성사가 안 될 가능성도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3명의 한국 파일럿과 3명의 일본 파일럿이 한팀이 되어 에어쇼를 준비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우정을 그린 ‘싸나이영화’다. <탑건> 같은 로맨스도 있을 것 같다. <번지…>를 썼던 고은님 작가가 지금 시나리오 작업중에 있다. 5월까지는 구체적인 결과를 내서 올해 말에는 촬영에 들어갔으면 한다.

백은하 기자 luc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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