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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구하다 <사랑의 침묵>

언뜻 북소리처럼 들리는 규칙적인 사운드로 영화가 시작된다. 런던 노팅힐 가르멜 수도원의 수녀들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외부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병원이나 치과를 찾을 때를 제외하면 짧은 외출조차 허락되지 않으며,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현대의 문물들은 이곳에선 무용하다. 어쩌면 유물론 자체가 쓸데없어 보이는 공간, 영화 <사랑의 침묵>은 런던 한가운데 위치한 여자 수도원의 1년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계절이 변하고 새로 들어온 수련 수녀들이 무언가를 익혀가는 동안, 나이든 수녀는 세상을 떠난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소소한 변화들이 생겨난다. 영화는 우선 이 닫힌 세계의 개요를 보여준 뒤, 현대의 물질적 관념들을 토해내는 식으로 구성된다.

1878년 개관된 이후로 이곳 수도원은 줄곧 외부로부터 봉쇄된 채였다. 침묵은 그곳의 법칙이지만, 하루 단 두번의 휴식시간에 마치 구두점을 찍듯 나직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이들은 침묵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이른다. 침묵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직시하게 되면, 이는 도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수녀가 된 것이 삶으로부터 도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연출자의 질문에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했다는 어느 수녀는 “신이 내 곁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간다. 이것이 도피다”라고 말한다. 극장에 앉은 어느 관객이라도, 심지어 신을 믿지 않는다 해도 뜨끔할 대답이다. 만약 이들의 말처럼 믿음이 견뎌내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세상을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자신조차 믿고 있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개개의 사건이 아니라, 수도자들이 행하는 전체적인 모습이나 행사 등을 통해 관객은 단순하지만 동시에 강력한 진리를 구할 수 있다. 구원자, 그리고 인류에 대한 헌신이 가슴에 새겨진다. 부활절 전의 성주간(Holy Week)을 중심으로 영화는 수도원의 일상을 담지만, 사건의 의미에 관심을 둘 필요는 없다. 이 닫힌 세계로의 여정이 르포르타주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타 수도원을 담은 영상물과 다르게 <사랑의 침묵>은 수녀들의 직설적인 인터뷰가 담긴 것이 장점이다. 마이클 화이트 감독이 10년간 서신을 통해 설득한 덕분인지 인터뷰를 통해 수녀들의 진솔한 내면이 공개되었다. 그 내용은 영화의 외향과 일맥상통하는데, 사건보다는 하나의 전체, 기계적이진 않지만 규칙적인 리듬이 그들이 말하는 진리 속에 담겨 있다. 따라서 영화의 시작부에 들었던 종소리는 영화 말미에 마치 생활의 운율처럼 재해석된다. 고전주의 속에서 생명력을 느끼는 기분이 든다.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몇몇의 몽타주가 적나라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여타의 장점들이 이를 가린다. 간결하지만 압축적인 메시지와 수도원의 아름다운 풍경이 관객을 100여분 동안의 피정으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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