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사치요
신념의 말은 공허하다. 상대가 세상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굳건한 믿음을 기어코 지켜낼지는 두고 봐야 하는 일이다. 한때는 신념의 말을 받아 적기 위해 쫓아다녔다. 당신은 왜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까. 감독이든 배우든 가리지 않고 물었다. 어떤 절실한 이유를 그들은 갖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상대가 성에 차지 않는 답변을 들려줄 때도 신념의 말 자체를 의심하진 않았다. 질문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거나 아니면 인터뷰 시간이 모자랐다고 넘겨짚었다. 신념의 말과 다른, 숙명의 말이 존재함을 알게 된 건 이 일을 시작하고 한참 뒤였다. 돌이켜 보면, 그 사실을 일깨워 준 이는 장률 감독이다. 2005년 10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장률 감독을 처음 만났다. 그는 당시 두 번째 장편 <망종>을 들고 영화제를 찾았다. 열 돌을 맞은 영화제는 그 어느 해보다 행사가 많았고, 데일리 취재는 그 어느 때보다 벅찼다. 미리 점찍어둔 영화들을 중심으로 취재가 이뤄질 수밖에 없었고, 그 리스트 안에 <망종>은 없었다.
“<망종> 봤어?” 영화제가 중반을 넘긴 시점이었던 것 같다. 간신히 한숨 돌리려는데 편집장이 난데없이 캐물었다. 질책이나 다름없는 추궁이었다. 두 번의 상영은 모두 끝이 난 상태였다. 장률 감독의 출국일부터 확인했다. 영화를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인터뷰 약속부터 잡았다. 프리뷰 룸에서 허겁지겁 <망종>을 봤고, 생각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장률 감독과 대면했다. 몇 개의 질문을 받아낸 그는 갑자기 대화를 끊어내듯 이렇게 말했다. “난 장사치에 불과해요.” 그는 숭고한 예술가가 아니라 비천한 장사치에 불과하다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망종>의 김씨처럼 자신은 “폭력적이다가도 옷이 벗겨지면 바보” 같은 남자라고도 덧붙였다. 어떤 신념의 말보다 또렷하고 단호한 토로였다. 그 앞에서 잠시 멈칫거렸던 것 같다. 그 뒤로 신념의 영화보다 숙명의 영화에 더 이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