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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향한 기본자세 <퍼스트 포지션>
이영진 2012-10-24

나폴리에 사는 11살 소년 아란은 발레 수업을 받기 위해 매일 2시간씩 로마로 통학한다.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으니 외톨이가 되는 게 당연하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뒤 미국의 한 가정에 입양된 14살 소녀 미카엘라는 아란만큼 지독한 연습벌레다. 그녀의 목표는 흑인은 발레리나가 될 수 없다는 편견을 깨는 것이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뉴욕 변두리에 사는 16살 소년 조안은 하루빨리 프로 무용수가 돼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고향에는 자신의 성공만을 간절히 바라는 가난한 가족이 있다. 17살 소녀 레베카는 조안보다 더 암담한 상황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됐으나 아직 발레단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지 못했다. 레베카는 더이상 토슈즈를 신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발레는 자신의 유일한 미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12살 소녀 미코는 어떨까. 미코의 결심은 언제까지나 굳건할까. 이들이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파이널 무대에서 만났다. 세계적인 발레단에 입단할 수 있는 기회를 단박에 거머쥘 수 있는 시험대. 주어진 시간은 5분이다. 이 짧은 시간 안에 누군가의 꿈은 이뤄지고, 누군가의 꿈은 유예되거나 산산조각난다.

1만명이 넘는 지원자 중 단 300여명만이 설 수 있다는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파이널. 이 콩쿠르 결선무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의 뼈대로 삼았다. 그렇다고 ‘누가누가 잘하나’를 지켜보는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빼빼 마른 발레리나들은 모두 신경성 식욕 부진증 환자이며, 발레리노는 게이이고, 또 무대 뒤에서 기다리는 엄마들은 사이코일 거란 사회적 통념을 깨고 싶었다.” 어린 시절 보스턴 발레학교에서 ‘퍼스트 포지션’을 배우며 발레리나를 꿈꾼 적 있다는 감독 베스 카그먼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인물들과 치열한 경쟁의 드라마를 선택했지만, 환호와 갈채가 쏟아지는 무대 위를 조명하기보다 자책과 열망으로 어지러운 무대 뒤를 관찰하는 데 더 관심을 쏟는다. 비비탄 총을 아쉬운 듯 쓰다듬으며 “(연습 안 하고) 지금 쏘고 놀면 혼날 거예요”라고 말하는 아란, 결선 무대를 코앞에 두고 인대 골절 부상을 입었지만 기어코 바를 잡는 미카엘라, 어서 빨리 돈을 벌라는 부모의 성화 앞에서 힘들다는 내색조차 못하고 전화를 끊는 조안, 첫 번째 무대에서 연거푸 실수를 했지만 ‘끔찍했어’라는 한마디로 두 번째 무대를 준비하는 레베카, 엄마의 극성스런 요구에 딱 한번 싫은 표정을 짓고야 마는 미코. 만약 무대 뒤 모습을 세심하게 잡아내지 못했다면 <퍼스트 포지션>은 무미하고 밋밋한 오디션 중계에 그쳤을 것이다. (양 발꿈치를 붙인 상태에서 양 발끝의 각도를 180도로 만들어야 하는) 발레의 ‘퍼스트 포지션’은 부단한 반복 훈련 없이는 불가능한 자세다. 발레가 궁극의 도약을 꿈꾼다면, 꿈의 기본자세는 간절함이라고 <퍼스트 포지션>은 거듭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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