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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 <라잇 온 미>
김혜리 2012-10-31

헤아려보면 퀴어 멜로드라마의 구역에서 흡족한 작품을 만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일단 이성애 관계가 중심인 드라마를 다룬 영화보다 표본 수가 적으니 당연하고, 두 번째로는 비주류적 소재를 영화화시키는 1차 목표에 탈진한 나머지 과장과 감상주의의 유혹에 말리기 쉽다. 이성애자의 패러다임에 끼워맞추어 동성 커플에게 남녀 역할을 작위적으로 분담시키는 오류는 숱한 함정 중 하나에 불과하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최고의 퀴어영화에 주어지는 테디베어상을 탄 아이라 잭스 감독의 <라잇 온 미>는, 에이즈 공포와 거대한 불관용에 맞선 인정투쟁의 부담을 상대적으로 덜어낸 21세기에 비로소 연애의 결에 집중할 수 있게 된 퀴어 러브스토리의 상을 예시한다.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사는 덴마크 출신의 다큐멘터리 감독 에릭(투레 린드하르트)은 전화데이트를 통해 변호사 폴(재커리 부스)을 만난다. 대외적으로 여자친구까지 둔 폴은 처음엔 방어적 태도를 취하지만 오래지 않아 에릭의 생일 파티를 주최할 정도로 관계에 투신한다. 동거에 들어간 에릭과 폴은 많은 연인들처럼 비현실적인 행복과 아늑한 평화, 친구 그룹을 공유하고 크고 작은 불화를 경험한다. 그중에서도 폴의 약물 의존증은 둘의 관계에 가장 깊은 시련을 가져온다. 그러나 진짜 이별은 그 모든 궂은 날씨를 견딘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견고한 사실을 확인했을 즈음 문을 노크한다. 10년에 걸친 이 사랑의 임상기록은 연도를 표기한 자막으로 장을 나누어 흘러가지만, 그 숫자는 챕터의 제목이 아니라 에릭과 폴이 함께 축적한 시간의 눈금에 가깝다. 예컨대 ‘2000년’ 챕터 안에 담긴 사건은 해당연도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2000년과 다음 자막 2003년 사이의 기억이다. 보통 연애 서사에서 기승전결로 간주되는 고비에 전혀 방점을 찍지 않고 규칙적 박자로 걸어가는 <라잇 온 미>의 각본은, 자전적 영화답게 흥행 시나리오 모범 작법의 반명제다. <라잇 온 미>는 그러나 이 ‘퇴적’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모범 작법이 결코 성취할 수 없는 감흥에 도달한다. 임종의 침상에서 그들이 돌이키게 될 결정적 순간은, 당시에는 표내지 않고 인물을 통과해가지만 어김없이 결과를 남긴다. 관객은 이벤트를 목격하는 대신 집과 벽지, 가구의 변화를 눈치채면서 세월의 더께를 헤아리게 된다. 영화 내내 눈길을 끄는 에릭의 벌어진 앞니와 폴의 뺨에 난 미세한 흉터처럼, 성인이 된 뒤 만난 두 남자는 쉽게 변하지 않으며 악습도 쉽게 떼지 못한다. 아이라 작스는 벼락같은 시작이나 장려한 대단원이 연애의 심장이 아니며, 사랑의 몸통은 시작과 대단원 사이 구간을 숱한 구덩이를 뛰어넘고 구멍을 근근이 메워가며 지탱하는 시간에 있다고 믿는 듯하다.

무엇보다 <라잇 온 미>의 미덕은, 사랑영화로서 퀴어 멜로드라마가 지닌 보편성과 특수성을 인위적인 수술 자국 없이 자연스럽게 끌어안았다는 데 있다. 에릭과 폴의 사랑은 별나면서도 별나지 않다. 질투로 벌인 언쟁의 결과로 각방을 쓰려다가 닭살 스킨십으로 화해하기도 하고 섹스하다가 생리적으로 민망한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둘의 최대 갈등은 커밍아웃을 둘러싼 배신감이나 가족, 사회의 압박이 아니라 성격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런가 하면 이들에겐 퀴어 커플만의 쓸쓸하고 따뜻한 관용이 존재한다. 폴이 데이트 도중 우연히 옛 여자친구와 마주쳤을 때 에릭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을 때 관객은 심각한 다툼을 예감하지만 영화는 “겁은 많아 가지고!”라고 구박하는 시늉을 하는 에릭과 장난스레 도망치는 폴의 명랑한 뒷모습을 보여준다. <라잇 온 미>는, 새벽에 이별을 고한 상대를 출근길에 바래다줄 수 있는 관계를 이해하는 관객을 위한 사랑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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