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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집에 안 가고 노는 재미
황두진(건축가) 2012-11-16

<새로운 탄생>(The Big Chill)

빅 칠(big chill): 죽을 뻔한 경험이나 위험한 상태.

<새로운 탄생>(The Big Chill)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딱히 뭘 써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를 딱 한번, 그것도 20년쯤 전에 비디오로 빌려서 본 기억이 있을 뿐이다. 자살한 친구의 장례식에 모인 대학 동창들의 이야기가 줄거리인 이 영화의 그 무엇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일까. 호화 출연진의 명연기? 대단한 사운드트랙? 오가는 대화들의 멋진 향연? (“자연은 하나의 거대한 화장실”, “우린 안 떠나, 절대 안 떠나” 같은.)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중년들의 불안?

하지만 나보고 한마디로 다소 불경스러워도 좋으니 이야기하라면 이 영화는 ‘집에 안 가고 노는 재미’에 대한 영화다.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아는,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골이 깊고 풀어야 할 사연이 있는 대학 동창들. 이들은 그중 결혼한 한 동창 부부의 집에 며칠 동안 머물면서 함께 음식도 만들고 술도 마시고 이야기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또다시 모이기를 반복한다. 자살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남녀간 파트너를 교차해가며 숨겨둔 욕망을 드러내다가 급기야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여간 이들은 집에 가지 않는다. 한집에 계속 묵으면서 엠티를 온 것처럼 지내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친한 친구들과 이렇게 노는 것보다 즐거운 것은 없다.

사회활동의 많은 부분이 상업시설로 흡수되면서 우리는 더이상 사람을 집에 부르지도 않고 함께 음식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지도 않으며, 정말 어지간히 친하지 않고서는 남의 집에 가서 자는 경우도 없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이런저런 업소를 전전하다가 시계가 슬슬 자정을 향해 가면 대충 정리하고 집에 가기 바쁘다. 이런 상황이면 놀다가 대충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자는 그 특별한 재미가 있을 턱이 없다. 여행을 가면 물론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역시 누군가의 집이 주는 편안함과 위안을 따라갈 수는 없다.

그래서 나에게 <새로운 탄생>은 결국 집에 대한 영화다. 집은 밥 먹고 잠 자는 것 말고도 상당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며, 내 가족뿐 아니라 친구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와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간단하고도 평범한 사실을 너무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면 오히려 놀랍다.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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