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저녁을 먹다가 갑작스럽게 마주한 안철수 후보의 사퇴 기자회견을 보면서 감정이 참 복잡했다. ‘아… 이건 아닌데…’라는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심정이 동시에 밀려와 감정을 추스르기가 어려웠다. 아마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와 돌이켜보건대 안철수 후보는 마지막에 자신이 양보하는 것을 하나의 카드로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았다면 시기적으로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는 ‘정치개혁’이란 이슈를 고집스럽게 고수하거나, 자신의 지지율이 월등히 높을 때 주도적으로 단일화를 추진하지 않았던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세부적인 면에서 유불리를 따지고, 기싸움을 했던 면모에서 어떤 이들은 이 역시 전략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의 전략은 후보로 나선 이상 당연히 따져봐야 하는 것. 더구나 진짜로 후보를 사퇴하고 떠난 이상 모든 걸 오로지 전략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합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안철수는 그저 이상만을 좇았던 바보일까? 꼭 그렇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단일화 과정을 되짚어보면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반복했던 것처럼 그는 오히려 철저한 기능주의자에 가깝다. 정치개혁을 단지 이상의 실현으로만 말하지 않고 정치에서 멀어진 이들에게 신뢰를 회복해야만 정치가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즉 ‘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한 것도 그것이 원론적으로 바람직해서라기보다는 정치권이 먼저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을 보여야 지지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이상이라기보다는 기능적(현실적) 시각이다. 뭐랄까, 진정성있는 기능주의라고 할까?
다만 ‘진정성있는 기능주의’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기능과 진정성을 상호 배타적으로 보는 우리 사회에서 대단히 낯선 것이고, 이겨야 하는 주체가 자기 자신이 됨으로써 그가 말하는 의도가 순순한 의미에서의 기능주의가 아니라 단지 자기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유의 기능주의라고 의심받을 수 있는 여지도 컸다. 특히 이러한 사고방식은 문재인 후보의 사퇴까지도 자신의 사퇴처럼 승리할 가능성 여부로 결정하는 ‘기능적 시각’으로 볼 가능성이 큰데, 현실적으로 일리가 있지만 정당의 후보인 문재인 후보 입장에선 그렇게 판단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더해 여러 가지 오해와 억측이 쌓이면서 문재인 후보 입장에선 안철수 후보의 진의가 뭔지 헷갈리게 되었을 것이다.
비록 소명의식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서로를 잘 모르는 두 사람이다. 서로의 언어를 모르고 서로의 경험을 모른다. 그런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고 주어진 상황은 지나친 관심이었다. 만약 개인적으로 둘 모두를 잘 아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둘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면 설사 결과가 같았더라도 훨씬 더 부드러운 단일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엔 실수를 한다. 두 사람도 처음이고 두 사람 같은 유형의 정치인을 만난 유권자도 처음이었다. 다만 바라건대 지금부터는 실수를 하지 말았으면 한다. 상대방의 진의를 오해하지도, 그렇다고 기능적 사고에 매몰되지도 말았으면 한다. 또한 주위에서 두 사람을 너무 압박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누구 말처럼 같은 실수의 반복은 실수가 아닌 실력이기도 하고, 두 번째 실수의 결과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결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