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컬처잼 > e-윈도우
인간과 불화하는 종교
2002-01-31

<예수의 마지막 유혹>같은 논란의 대상된 <Mn>

정치와 종교를 쉽게 대화의 화제로 올려서는 안 된다는 말은 정말 금언 중에 금언이다. 특히 정치와 종교에 절대적으로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그 말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켜야할 처세술 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최근 정치에서는 야당이 됐든 여당이 됐든 어느 쪽을 욕해도 별로 큰 반발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정치 이야기를 화제로 올리는 것은 어느 정도 용납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종교를 화제에 올리는 것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나 어느 일부분이라도 반종교적인 내용이 담긴 생각을 입 밖에 내뱉는 순간, 분위기가 썰렁해지면서 그 이후의 사태는 예측을 불허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종교적인 신념은 일반적인 `논리`로는 반박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8년 마틴 스코시즈의 88년작 <예수의 마지막 유혹>의 국내 배급이 결정되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일부 개신교 단체들이 상영 저지를 위한 영적 전쟁을 선포하며 항의시위와 서명운동 등을 벌인 끝에 개봉을 좌절시킨 일도, 그런 종교적인 신념이 `논리`를 압도한 대표적인 예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지난해 말 다시 <예수의 마지막 유혹> 개봉이 추진되었으니, 유사한 상황이 되풀이되리라는 것은 빤한 일이었다.하지만 이번엔 법원이 기독교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목사 강씨가 낸 영화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한 덕에 <예수의 마지막 유혹>은 1월25일 국내 관객과 조우할 수 있었다. “강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자료가 충분치 않아 본 신청은 이유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기각사유였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영화의 개봉을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신념에 따른 행동에 딴죽을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 최소한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이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자유를 조금이나마 고려해야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사실 잘 알려진 것처럼 <예수의 마지막 유혹>을 둘러싼 `논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원작을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953년 아직 완성도 하지 않은 원작소설 때문에 고국인 그리스 정부에 의해 기소되었던 경험이 있으며, 이듬해에는 교황이 원작소설을 로마 가톨릭 금서 목록에 올리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다. 또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 역시 미국 내 기독교인들의 엄청난 반발로 배급이 어려웠고, 감독 개인적으로는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스에서는 영화의 상영 자체를 금지하기 위한 법적 공방이 진행되었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영화 상영이 예정돼 있었던 6개 극장이 수천명의 기독교인들에 의해 난입당해 영사장비와 영화의 필름이 불살라진 일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 1999년 말부터 그리스에서는 <예수의 마지막 유혹>의 재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주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사건의 주인공은 <Mn>(M의 n제곱)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소설을 펴낸 소설가 미미스 안드로라키스. 그는 인터넷을 통해 M으로 시작하는 아이디를 가진 n명의 여성들과 채팅을 하는 과정에서, 그녀들이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과 판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특히 역사적으로 유명한 남성 인물들이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태도에 대해 여성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 놀랐고, 그중에서도 예수의 남성적인 면에 대한 여성들의 해석에 깊이 빠져들었다.문제는 그러한 채팅의 내용이 소설 속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성적으로 끌리고 막달라 마리아와 성적으로 즐기는 예수의 모습으로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 분량은 전체 책에서 두 페이지에 불과했지만,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당연히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일단 공산주의자 출신이자 라디오 진행자로도 유명한 작가 안드로라키스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서 불거져나왔다. `신성모독`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그의 책이 불태워지는 일도 생겨났던 것.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그리스 북부의 한 주정부가 책의 판매를 2달간 미루는 일이 일어났고, 일부 종교지도자들이 <Mn>을 `2000년 기독교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불결하고 추잡하며 비과학적인 공격`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일도 뒤따랐다.반면 그 과정에서 안드로라키스가 일부 사람들에게 순교자처럼 그려지며, 소설이 그리스 내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예상된` 상황도 벌어졌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입양 아들 패트로클로스 스타브로는 한 인터뷰에서 `한심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교회는 안드로라키스를 저주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종교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막으려 하면 할수록, 그 책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파장은 더욱더 넓어진다는 것이 <예수의 마지막 유혹>을 통해 이미 증명되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다행이 그뒤 안드로라키스가 구속되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소설도 별다른 문제없이 지금까지 팔리는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여하튼 <Mn>을 둘러싼 그리스 내의 논쟁을 보면서, 다시 한번 <예수의 마지막 유혹>의 국내 상영이 조용히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랬다.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고, 그저 그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자유를 넓은 아량으로 인정하자는 이유에서다. 비록 그 내용에 실제로 신성을 모독하는 부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도 개봉된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만 개봉되지 못할 이유는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인인 모 일간지의 문화부 차장이 지면을 통해 `<예수의 마지막 유혹>을 보고 나서 이전보다 기독교에 더 가까워졌다는 느낌은 확연했다`고 밝혔던 것처럼,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그리고 영화를 보고 더 기독교에 가까워질 수 있는 이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이철민/인터넷칼럼리스트 chulmin@hipop.com<사진설명>1. 니코스 카잔차키스 홈페이지.2. 드디어 국내에서 개봉되는 <예수의 마지막 유혹>.3. 그리스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소설 <Mn>의 저자 미미스 안드로라키스.4. <예수의 마지막 유혹>의 재판이라고 불린 문제의 소설 <Mn><타임>의<Mn>기사:http://www.time.com/time/europe/magazine/2000/0410/filth.html니코스 카잔차키스 홈페이지: http://www.historical-museum.gr/kazantzak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