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디추운 날들, 해지는 먼 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다. 아름다웠던 아나운서 정은임. 헤아려보니 그녀가 뜻밖의 교통사고로 지상을 떠난 지 8년이 지났다. 한번 만나본 적도 없는 정은임 아나운서를 나는 왜 이렇게 살갑고도 애틋하게 기억하는가. 그 새벽의 목소리 때문이다.
2003년 10월의 어느 새벽. 신문과 방송을 통틀어 소위 ‘메이저 언론’에서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한 노동자의 죽음. 129일간의 크레인 고공농성 중 목숨을 끊은 김주익 한진중공업 전 노조위원장에 대해 그녀는 자신이 맡고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오프닝에서 이렇게 전했다. “새벽 세시, 고공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고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네, 들립니다…. 나는 가만히 말해본다. 2003년으로부터 10년 가까이 흐른 오늘 이 시간에도 철탑 위에 올라가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한없는 참혹함을 느끼면서….
지금 이 시간, 전국 여러 곳에서 여섯명의 노동자가 철탑과 굴다리 난간에 매달려 고공농성 중이다. 이 무시무시한 추위 속에 ‘하늘사람’이 되어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우리 이웃들이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다. 불법적인 정리해고 철회와 불법을 저지른 기업에 대한 국정조사, 이토록 상식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동자들이 추락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철탑에 올라야 하는 이 시대 야만성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2000년 이후 ‘노동유연화’ 어쩌고 하는 말로 포장, 양산되기 시작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은 대다수 노동하는 사람들을 자본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존중받아야 할 노동의 가치를 막장으로 내몰며 훼손한다는 측면에서 참으로 끔찍하다.
철탑 위로 올라간 노동자들은 ‘노동하는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해 오늘도 지독한 추위와 위험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높디높은 철탑 난간, 허공에 매달린 한점 새둥지 같은 곳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그분들의 목숨을 누가 지킬 것인가. 바로 우리다. 시민이라는 이름의 우리. 시민의 대다수는 노동하는 사람들이다. ‘하늘사람’이 되어 싸우고 있는 바로 그분들처럼.
정은임 아나운서가 고공농성 소식을 전하던 그때,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음악, 티렉스의 <Cosmic Dancer>가 가슴을 울렸다. 그 음악을 다시 듣는 밤이다. 태어나자마자 난 춤을 추었죠. 고공에 계신 분들이 속히 내려와 지상에서 함께 춤추는 날이 어서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