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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윤리학] 배우 그리고 친구 사이(2)
장영엽 이기준 사진 최성열 2013-02-25

<분노의 윤리학> 문소리, 곽도원, 김태훈, 조진웅의 유쾌한 수다

독자가 묻고 조진웅이 답하다

-그동안 강한 인상을 남기는 배역을 많이 맡았는데, 부드럽고 젠틀한 역할을 맡고 싶은 의향은 없나._Hanna Lee(페이스북) =어떤 역할이 올지 미리 알고 그에 대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배역을 맡았을 때, 그 당시 배우가갖고 있는 내적인 것들에 기반해 마음이 쏠리는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어떤 작품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마음 가는 재밌는 배역이 있으면 하게 되더라.

독자가 묻고 곽도원이 답하다

-이제까지 본격적인 코믹 연기는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코미디영화에 욕심이 있나. _angelyeeun13(미투데이) =코미디에 대한 무한한 욕심이 있다. 개그맨들을 정말 존경하는데, 그분들은 자신을 낮추고 세상 사람들이 웃는 얼굴을 보며 행복해한다. 나는 그게 배우가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인 것 같다.

독자가 묻고 문소리가 답하다

-조진웅, 곽도원, 김태훈, 이제훈씨 중 멜로 연기를 한다면 누구와 가장 잘 맞을 것 같나. _유미성(페이스북) =하나, 둘, 셋, 이제훈! 제훈이와의 멜로를 위해서라면 더한 악행도 할 수 있다. (웃음) 아기를 낳고 감정의 기복이 커지면서 멜로에 대한 관심도 커진 것 같다. 이럴 때 멜로 연기를 한번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가 묻고 김태훈이 답하다

-<분노의 윤리학>에서 살인범을 연기하는데, 극중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_Hyein Kim(페이스북) =개인적으로는 참 평탄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배우에겐 굴곡진 삶을 살아보는 게 감정을 잡는 데 좋은 것 같다. 우선은 내가 가진 감정들 속에서 최대한 현수의 모습을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와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캐릭터는 명록이었다. 룸살롱에 다니던 여대생의 포주이자, 그녀의 살인범을 찾기 위해 인물들을 협박하는 잔인한 캐릭터일 줄 알았는데 영화에서는 귀엽고 능글맞은 면모가 종종 보인다.

조진웅_감독님이 명록은 조금 더 귀여웠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어떻게 귀여운 걸 하냐고 했다. (웃음)

문소리_그런데 조진웅이라는 배우가 원래 타고난 귀염성이 있다. 조진웅 귀엽게 가거나 악랄하게 가는 건 한끗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장면에서 보면 명록은 정말 인간이 아니구나 싶다. 사람을 도구로 보고, 자신이 살기 위해 이용하거나 지나쳐야 할 관문이라고 보니까. 여대생을 “조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자’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 면은 악랄한데, 한편으로는 상대방의 가치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태도가 능글맞게 보이기도 한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인물이 명록인 것 같다.

명록은 <분노의 윤리학>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희로애락 중 가장 우선하는 인간의 감정은 분노라는. 이 장면을 찍을 때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조진웅_나는 명록이 지적인 욕구가 많은 인물이라고 봤다. 결코 지적인 인물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굉장히 지적이고 학식이 높은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빙의되어 사는 거지. 명록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그래?”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없다. 자신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행동하는데 그게 또 정확하지는 않다. 그런 아이러니를 표현해보고 싶었다.

문소리_그게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면인 것 같다. 보편적인 허세의 욕구를 표현하다보니 명록이 많이 밉게 보이지는 않더라.

곽도원_자동차 안에서 촬영한 명록의 그 신이 여러모로 재밌었다. 명록이 동행한 룸살롱 여자 은영에게 발을 주무르라고 하며 그 대사를 치잖아. 그 역을 맡은 여배우가 이은우다. 이 배우의 기존 이미지가 ‘천사’다. 그런데 그 역할을 맡았다는 얘기를 듣고 독기를 품었구나 싶더라고.

조진웅_형, 원래는 은영이가 명록의 발을 입으로 빠는 거였어. 은우씨가 감독님과 미팅할 때에는 명록의 대사를 쳐주는 연출부의 양말을 벗겨서 발을 빨았다고 하더라고. 정말 적극적인 배우다. 사실 내가 발이 굉장히 건조한데, 그날 풋크림만 두통은 쓴 것 같다. 상대 배우에게 조금이라도 불쾌감을 줄까봐.

문소리_(곽도원을 가리키며) 이 사람은 하루 종일 가글한 사람이야.

곽도원_(여대생과 키스 신을 찍느라) 하루 종일 가글했다. 거기다 에티켓 필름을 입 천장에 하나, 혀에 하나, 혀 아래에 하나 붙였더니 입이 아릴 정도였지.

문소리_풋크림 두통에 가글 몇통…. 정말 힘들다, 힘들어. (웃음)

수택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파국을 맞는 영화 후반부의 스튜디오 신이 중요했을 것 같다.

문소리_정말 스튜디오에 선화가 딱 들어섰을 때 세 남자(조진웅, 김태훈, 이제훈)의 몰골이 볼만했다.

조진웅_맞다. 문소리 선배가 스튜디오에 들어와서 세 인물이 벌이는 난장판을 바라보는데, 그 표정이…. 지문에는 ‘놀란다’고만 되어 있었는데 너무 벌레 보듯 보는 거라. (웃음) ‘이 쓰레기들 뭐하고 있나’ 싶은 제스처를 취하더라.

문소리_다들 나를 반가워하긴 했다. 세명 모두 절박한 상황이라, ‘살려주세요’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조진웅_이 장면 찍기 전에 박명랑 감독과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칼에 찔리고, 총에 맞아도 무조건 자기는 살 거라고 생각하는 게 세 남자들의 마음이다. 사실 이 장면을 두번 찍었다. 먼저 스튜디오 안에서 싸우고 있던 세 남자들끼리 한번 촬영을 했는데 문소리 선배가 들어와야 할 타이밍이 되니 감독이 한번 더 찍자는 거다. 그래서 처음 촬영할 때의 느낌을 비워내는 것이 오히려 힘들었다.

김태훈_정말 좋았던 점은, 감독님이 이 장면에서 어떻게 하라고 말해주는 게 아니라 우리의 연기를 보고 카메라로 감정이 극대화 되게끔 이끌어줬다는 거다.

문소리_신인감독들이 으레 본인만 신인이고 다른 스탭들은 경험이 많으니까 현장에서 빨리 결단을 내리는 것이 능력있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장에서 고민을 오래하는 걸 두려워하곤 하는데, 촬영 들어가기 전 나는 박명랑 감독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다. 잘 찍는 사람일수록 현장에서 더 오래 끝까지 고민한다, 그렇게 고민하는 모습에 우리가 존경심을 갖고 더 도와주게 된다고 말해줬다. 요즘은 프로덕션 문제도 있고 해서 빨리빨리 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얘기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고민할 것은 끝까지 고민해서 좋은 결과로 보여주면 된다. 박명랑 감독도 스튜디오 신에서 끝까지 치열하게 고민을 많이 해서, 우리도 그를 믿고 같이 고민을 했다.

조진웅_누나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사실 그 스튜디오 장면이 정말 찍기에도, 연기하기에도 어려운 신이었다. 그 하얗고 휑한 공간에서 어떻게 영화 같은 장면이 나올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과적으론 이음매나 컨셉의 분위기가 잘 살아난 것 같다. 그러고보니 <분노의 윤리학>은 신인감독과 베테랑 배우들의 만남이었다.

문소리_아무리 처음 장편 데뷔하는 감독이라고는 해도, 자기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베테랑이었다. 그래서 신인이라고 느낄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조진웅_감독님이 나에게 명록이란 캐릭터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말을 해줬다. 그만큼 배우에 대한 신뢰가 깊었다.

곽도원_박명랑 감독이 배우 칭찬을 정말 많이 한다. 다들 그렇게 안 느꼈나? 나는 살다살다 칭찬을 그렇게 많이 들어본 건 <분노의 윤리학>이 처음이었다. “100점인데요”, “최곤데요”, 계속 그런 말을 한다. 그러면서 결국엔 이러더라. “최고인데… 다시 한번만 가죠?”(웃음)

조진웅_감독과 술먹으며 들은 얘긴데, 미국에서 연출 공부를 할 때 ‘칭찬하기’가 교본의 첫 챕터라고 하더라. 그게 굉장히 배우를 업시키는 것 같다.

김태훈_내가 인상깊었던 건 배우를 대하는 감독님의 방식이었다. 보통은 어떤 부분들이 달랐으면 좋겠다고 배우에게 직접 말을 하는데, 그러면 배우로서는 이걸 어떻게 더 잘해야 하나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박명랑 감독님은 다음 테이크를 갈 때 그냥 편하게 다시 한번 가자고 얘기를 해줬다. 나는 그 방식이 굉장히 좋더라.

얘기를 들어보니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던 것 같다.

조진웅_우선 배우들과 친해지기 위한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어서 편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 은근히 힘이 많이 든다.

김태훈_나의 성향과 에너지가 다른 배우들과 잘 섞였던 것 같다. 이런 작품은 찍으라면 또 찍을 수 있을 정도로 작업 과정이 즐거웠다.

곽도원_난 좀 반대의 경우다. 인간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보니 거리두기가 안되는 거다. 태훈이를 때리는 장면에서도 ‘많이 아플 텐데’ 하며 걱정부터 되고. 너무 친해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문소리_자본의 논리에 의해 제작되는 영화와 다르게, <분노의 윤리학>은 시나리오가 먼저 나오고 투자와 제작이 잇따른 작품이다. 그래서 더 의미있고, 현장 분위기가 좋았을 수도 있다. 나는 영화하는 사람으로서, 배우로서, 어떤 방식으로라도 이런 시도들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어찌됐든 영화 제작과 관람의 기본적인 조건상 관객은 우리가 제공하는 영화만 볼 수 있지 않나. 그들에게 많이 선택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보다 더 다양한 영화를 선보이는 것이 무의미하지는 않다고 본다. 영화라는 직업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생계뿐만은 아니잖나.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도 영화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인 것 같다.

<분노의 윤리학>의 다섯 악인을 소개합니다

현수(김태훈) 여대생 진아를 사랑했지만, 수택과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뒤 우발적으로 그녀를 살해한다. 진아를 뒤따라 목숨을 끊으려던 순간, 정훈이 설치한 도청장치를 발견한다.

정훈(이제훈) 진아의 옆집에 사는 경찰. 또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스토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아를 스토킹하다가 현수의 살인장면을 목격한다.

선화(문소리) 수택의 아내이자 부잣집 사모님. 네 남자가 얽혀든 사건의 핵심적인 열쇠를 쥐고 있다.

수택(곽도원)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교수. 진아가 살해되던 날, 그녀의 집에 있었다는 이유로 살인 누명을 쓴다. 감옥에 갇혀 아내 선화가 구해줄 날만을 기다린다.

명록(조진웅) 진아가 다니는 룸살롱의 포주. 사업 수완이 좋고 필요하면 폭력도 불사한다. 진아가 죽은 뒤 우연히 정훈을 만나 진짜 살인범의 정체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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