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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종합운동장이 살처분장으로?
장영엽 2013-08-13

컨셉아트로 미리 보는 <감기>

CG팀이 완성한 대치 장면.

감독 김성수 / 출연 장혁, 수애, 박민하, 유해진, 이희준 / 제작 (주)아이러브시네마, (주)아이필름코퍼레이션 / 개봉 8월15일

‘천당 아래 분당’이라고들 한다. 이 살기 좋고 평화로운 서울 근교의 도시가 어느 날 갑자기 1초에 3.4명씩 죽음의 바이러스에 걸리는 아비규환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면? 김성수 감독의 10년 만의 복귀작 <감기>는 치사율 100%의 감기 바이러스가 창궐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재난영화다. 보이지 않고 체감할 수 없는 공포가 더 무서운 것이라고 했던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스펙터클의 재난 없이도, 사람들은 무색무취의 미세 바이러스 때문에 서로를 불신하고 광기에 사로잡혀간다. 감염자와 비감염자 사이에 벽을 세우고, 벽 안의 감염자들에겐 더이상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조차 허용하지 않는 도시. <감기>의 ‘괴물’이자 진짜 재난은 감기 바이러스가 아니라 사람들이다. 불신과 공포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서 인간으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이곳에 감염 전문의 인해(수애)와 그녀의 딸(박민하), 그리고 인해에게 애틋한 감정을 가진 구조대원 지구(장혁)가 있다. 이들은 총과 탱크, 그리고 전기 벽으로 완전히 차단된 지옥 같은 분당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성수 감독의 스케치.

김성수 감독은 <감기>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준비하며 하나의 이미지에 마음을 사로잡혔다고 한다. 어른과 아이가 손을 맞잡고 걸어간다. 그 어떤 위협도 느껴지지 않는 이 다정한 이미지를 방해하는 건, 탱크로 가드를 올리고 방패와 전투복, 그리고 방독면으로 완전 무장한 다수의 군인이다. 그들 주변을 감싸고 있는 스모그의 혼탁한 기운처럼 맨손으로 인간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거대한 벽과 맞서야 하는 보통 사람들은 한없이 무력해 보인다. 하지만 수많은 재난영화들이 보여줬던 것처럼 <감기> 또한 상황의 판도는 결국 ‘보통 사람들’의 힘에 달려 있을 거다. 그들이 만들어낼 드라마에 대해서는 추후에 더 자세히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감기>의 컨셉아트를 통해 ‘지옥 아래 분당’의 면모를 들여다볼 때다. 박일현 미술감독, 류재환 VFX 슈퍼바이저가 안내한다.

1 경계라인

치명적인 감기 바이러스로 인한 국가 재난사태 1호 발령. 분당으로 향하는 지하철이 끊기고, 마트가 폐쇄되며,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모든 통로가 차단된다. 이 작품이 사실적인 재난영화가 되길 바랐던 김성수 감독의 의도에 따라, <감기>의 컨셉아트는 ‘감염질병 발생 시 단계별 대책’ 같은 실제 자료와 매뉴얼을 토대로 제작진의 상상력을 더해 완성됐다. 분당과 서울을 잇는 경계인 분당-수서간 도로 앞에 세워진 전기 철책망 또한 그런 상상의 산물이다. 특히 경계라인에서 일어나는 분당 시민과 군인의 대치 장면을 구현하는 건 박일현 미술감독이 이끄는 미술팀에도 중요한 과제였다. 이미 <화려한 휴가> 당시 통제된 광주의 모습을 구현한 바 있는 박일현 미술감독은 “광주민주화항쟁의 이미지”와 더불어 영국의 유명 예술가 집단인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에 소속된 작가들이 선보인 “방독면과 군인들, 학살에 대한 이미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2 감염캠프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들과 감염 의심자들이 수용된 ‘감염캠프’는 <감기>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차별, 두려움과 공포가 맞물린 핵심적인 장소다. 그런데 잠깐, ‘캠프’라고? “전쟁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유엔이나 재난구역에서 난민 시설을 만들잖나. 그런 실제적인 자료들도 참고했지만, 캠핑장을 보는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도 참고했다. 탄천변에 수많은 텐트들(사진 위)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격리 수용되는 상황을 떠올렸을 때, 그 안(사진 아래)에서도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예를 들면 정부에서 세운 가건물도 있을 테고, 구호물자로 받은 텐트도 가져와서 쳤을 거다. 이런 다양한 시설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탄천변에 세워진 거대한 캠핑장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박일현 미술감독)

2-1 달리는 울타리

감염캠프의 모습을 구상하며 김성수 감독은 미술팀과 CG팀에 한 설치미술가의 작품을 공유하길 원했다. 그건 바로 설치미술가 크리스토 야바체프의 <달리는 울타리>라는 작품이다. 광활한 풍경에 거대한 천으로 만든 울타리로 구획을 짓는 야바체프의 작품은 “일상적인 공간에 갑작스러운 경계가 생겼을 때 사람들이 받게 되는 충격과 이질감의 정서”(박일현 미술감독)를 환기한다.

2-2 비닐과 스모그

“현장에서 스탭들이 그런 말을 했다. 우리 영화는 비닐과 스모그의 영화라고.” 류재환 슈퍼바이저의 말처럼, <감기>의 밑그림을 구상하는 데 있어 비닐과 스모그라는 소재는 중요했다. 투명하기 때문에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이쪽과 저쪽을 차단하는 ‘막’의 역할을 하는 비닐은 바이러스가 창궐한 도시 안에서 통제당하고 감시당하는 <감기>의 등장인물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인 소재였다. 스모그의 경우 바이러스와 감염을 다루는 재난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소독’의 이미지였음이 분명하지만, 이와 별개로 한치 앞 상황을 알 수 없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혼란과 무기력함의 정서와도 맞아떨어지는 소재였기에 중요했다는 것이 제작진의 생각이다.

3 살처분장

2010년 구제역 사태 당시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던 수많은 돼지들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탄천종합운동장을 배경으로 한 거대한 살처분장은 ‘분당 지옥도’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완성하는 클라이맥스의 공간이다. 관객의 허를 찌를 제작진의 ‘한수’는 이 공간이 외딴곳의 구덩이가 아닌 종합운동장을 배경으로 한다는 데에 있다. “대부분의 재난영화를 보면 종합운동장이나 공공시설 같은 곳이 수용캠프로 쓰인다. 우리도 처음에 분당 내에서 감염캠프로 구현할 만한 공간을 떠올렸을 때, 탄천종합운동장이 1순위였다. 그런데 이건 다른 재난영화도 너무 흔히 써왔던 설정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렇다면 허를 찔러 운동장을, 사람을 구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들의 최후가 되는 공간으로 설정하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들을 나눴다.”(류재환 슈퍼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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