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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죽음이 두렵지 않은 전설의 외팔이 검객

<외팔이> <실혼>으로 부산에 핸드프린팅을 남긴 배우 왕우

일본에 도시로 미후네가 있다면 홍콩에는 왕우가 있다. 왕우는 홍콩 무협영화의 전설 장철 감독의 영화를 통해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하는 무모하고 초인적인 비장미로 사랑받았다. 다소 가냘픈 몸매에 세련된 외모, 기존의 액션배우들과 차별화된 모던한 이미지도 그의 남다른 매력 중 하나였다. 대만의 영화비평가 페기 차오는 장철의 영화를 두고 ‘남성의 몸을 찬양하는 남성들만의 천국’이라고 말한다. 영국영화협회(BFI)의 의뢰를 받아 영화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로 완성한 <양과 음: 중국영화 속의 성>(1995)을 통해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했던 관금붕은, 동성애자의 입장에서 홍콩영화사를 다시 써가며 남자들의 육체에 대한 자신의 집착과 탐미를 드러냈다. 그는 아버지의 팔을 잡고 갈 때 왕우의 팔을 잡고 있는 듯한 상상에 빠졌고, 아버지의 등을 보면서 왕우의 무협영화를 생각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장철 영화에서 사지에 내동댕이쳐진 왕우의 서늘한 눈빛은 지금도 소름끼치게 만든다. 가령 <외팔이>(1967)에서 하얀 눈밭에 툭 떨어지는 그의 피 묻은 오른팔이나, 세계영화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금연자>(1968)의 대학살은 어떤가. 흰 옷에 피 칠갑을 한 채 죽기 직전까지 화살과 창과 채찍까지 든 무수한 적들과 쉼 없는 대결을 벌인다. 대량의 피와 잔혹한 폭력, 남자 주인공의 처절한 ‘순교’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장철식 폭력 미학이 그를 통해 꽃을 피웠다. 그가 보여준 육체에 대한 고통과 쾌락이라는 모순된 이중주와 잔혹미는 이후 장철 영화를 규정짓는 육체성의 모든 것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외팔이> 시리즈에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는 <자토이치>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 가츠 신타로가, 왕우를 영입하여(물론 그 자신도 자토이치로 출연하여) 외팔이 검객과 맹인 검객의 대결을 그린 <외팔이와 맹협>(1971)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외팔이’는 아시아영화산업을 대표하는 남성캐릭터라 할 수 있다. 진가신이 <무협>(2011)을 통해 왕우를 다시 영화계로 불러낸 것은 그를 향한 최고의 경배다.

왕우는 무모하기에 아름답다. 또한 사리사욕에 가득 찬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다. 호금전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스스로 공명심을 추구하지도 않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제 맘대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늘 마지못해 이런저런 사건들에 휩쓸린다. 그는 자유인이자 방랑객이지만 결정적으로 사회화가 덜 된 미숙아다. <플래닛 홍콩>을 쓴 영화평론가 데이빗 보드웰 같은 경우는 왕우를 설명하면서 ‘부주의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왕우의 액션이 ‘세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늘 이기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라도 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이소룡은 그토록 살고자 했고 왕우는 수도 없이 피를 뒤집어쓴 채 죽음을 갈구했지만, 결국 이소룡은 거짓말처럼 급사했고 왕우는 주름이 늘어서도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다. 그런데 그 아이러니에 또한 감사하다. 그는 지난 7월 15회 타이페이영화제에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한 청몽홍 감독의 <실혼>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 눈빛은 여전했다. 허름한 점퍼 하나를 걸치고 있어도 왕우는 역시 왕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