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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파라다이스 러브>

오스트리아에서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교사로 일하고 있는 테레사(마가레테 티에셀)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을 친척집에 맡기고 케냐의 뭄바사 해변으로 꿈같은 휴가를 떠난다. 그러나 뭄바사는 사실 ‘슈가 마마’라 불리는 중년의 백인 여성들이 섹스 관광을 떠나는 곳이다. 테레사 역시 ‘간택’을 받기 위해 해안가를 배회하는 ‘비치 보이스’, 흑인 청년들을 만나게 되고 못 이기는 척 그들과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결국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허무뿐이다.

울리히 사이들의 <파라다이스 러브>는 잘 알려진 것처럼 ‘파라다이스 3부작’, 사랑(러브), 신념, 희망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세편의 영화에서 울리히 사이들은 느슨하게 이어진 세명의 여주인공들을 내세워 인생에서 ‘파라다이스’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중년 여성의 섹스(혹은 사랑)이거나(<파라다이스 러브>),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이들의 종교에 대한 광신적인 믿음이기도 하고(<파라다이스 신념>), 뚱뚱해서 남자 친구 한번 제대로 사귀어본 적 없는 소녀의 다이어트(<파라다이스 희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울리히 사이들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파라다이스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파라다이스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절망과 고독이다. <파라다이스 러브>에서 테레사는 돈을 주고 산 흑인 청년에게 매번 다정함을 기대하지만 결국 천국 같은 휴양지에서 철저하게 홀로 남겨져 또다른 의미의 지옥을 경험한다. 말하자면 파라다이스 3부작은 역설에서 시작하는 영화인 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파라다이스 러브>를 주목하게 만드는 것은 울리히 사이들이 만들어내는 화면의 독특한 감각일 것이다. 정지된 한폭의 그림처럼 정교하게 배치된 화면 구성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의 동선은 묘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묘사된 테레사의 육체와 날쌘 동물을 연상케 하는 미끈한 흑인 청년들의 육체가 뒤섞일 때 만들어내는 기이함은 섹슈얼한 차원을 넘어선다. 실제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한 울리히 사이들은 슈가 마마들은 전문 배우들로, 비치 보이스들은 현지에서 직접 캐스팅한 비전문 배우들로 구성한 다음, 이들이 만들어내는 다큐멘터리적 화학 작용을 지켜본다. 그리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그는 모든 대사를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써내려가는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정말 새로운 차원의 영화인가라는 질문에 망설여지는 건 아마도 이 영화가 둘간의 화학 작용을 지켜보는 데서 만족하고 그냥 멈추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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