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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 사랑한 거장 3인- 로버트 알트만, 빔 벤더스, 코스타 가브라스
2002-02-21

영화가 내 시간을 가로챘네베를린=글 문석ssoony@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수십년 동안 자신만의 철학과 스타일을 고수해왔고 여전히 신작을 고대하게 하는, 몇 안 되는 감독들을 우리는 거장이라고 부른다. 이름의 무게가 발휘하는 인력(引力)으로 관객을 끌어당기는 세명의 거장이 올해 베를린영화제를 찾았다. <고스포드 파크>의 로버트 알트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의 빔 벤더스, <아멘>의 콘스탄틴 코스타 가브라스가 그들. 이들 거장이 펼쳐놓은 필름의 두루마기에는 어떤 무늬가 박혀 있는지 찬찬히 살펴본다.로버트 알트만의 <고스포드 파크>`밀실추리극, <게임의 규칙>을 만나다`

“이렇게? 흠, 이건 어때?”2월10일 오후 9시 베를린 하얏트호텔 2층 기자회견장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로버트 알트만 감독은 괴팍한 성격의 노인네`라는 소문이 근거없을뿐더러 그의 재능을 시기하는 누군가가 퍼뜨린 악성 루머라고 확신할 것이다. 포토 스탠드에서 자신들이 요구하는 온갖 표정과 포즈를 거리낌없이 취해준 그를 사진기자들은 `진짜 신사`라고 불렀다.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는 열정적이며 성실하고 유머넘치는 매너를 보여줬고, 기자들의 다소 형식적인 질문에도 고수다운 현답을 돌려줘 우렁찬 박수세례를 받았다. 물론 이날 모습이 평소 알트만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기자회견장에 나타나기 직전 받았던 생애 두 번째 금곰상 트로피가 그의 `괴팍함`을 부드럽게 간지럽히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알트만이 베를린을 찾은 것은 평생공로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2월20일로 일흔일곱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입장이지만, 다른 원로 인사들처럼 세계 영화제에 얼굴을 비춰주며 안락한 `노후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는 그의 보따리에는 최근작 <고스포드 파크>가 담겨 있었다. 이미 지난해 런던영화제에서 공개된 바 있고, 골든글로브를 비롯해 AFI, 뉴욕비평가협회, 전미영화비평가협회 시상식을 통해 그에게 감독상을 안겨주기도 했던 이 작품은 비록 비경쟁 부문에 속했지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76년 금곰상 수상작 <버펄로 빌과 인디언들> 이후 알트만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베를린 관객의 환대 덕분에 주최쪽은 <고스포드 파크>의 추가상영을 잡아야만 했다.한 상류층의 별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는 <고스포드 파크>는 베를린에서 프랑수아 오종감독의 에 여러 차례 비교되곤 했다. 두 작품은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선 나머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야만 하는 샴쌍둥이 같은 관계였다. 모두 `Who- dunnit 무비`(제한된 공간에 갇힌 사람들 중 누가 범인인지를 가려내는 영화)의 구도로 출발한다는 점과 두 감독 모두가 이같은 장르영화와는 만리장성을 쌓아놓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인물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이 그랬듯, <고스포드 파크>는 궁극적으로 전형적인 범인 맞히기 영화와는 다른 길을 걸어나간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32년 영국 런던 교외의 한 별장. 사냥파티를 하기 위해 상류층 인사들이 모이고 수발드는 하인들도 같은 곳에 머물게 된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얽히고 설켜가며 며칠 동안 지내야 하는 이곳의 공간은 엄격하게 양분돼있다. 상류인사들의 공간은 2층이고 하인들이 차지하는 곳은 1층이다. 식사시간 등 정해진 경우가 아니면, 그들은 서로의 공간을 점유하거나 함부로 침범할 수 없다. 하지만 항상 은밀하게, 또는 공공연하게 규율을 위반하는 자는 있게 마련이다. 영화는 외부와는 고립된 이곳에서 별장의 주인이자 파티의 주최자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궤도를 타기 시작한다. 범인은 누구인가, 1층 사람인가 2층 사람인가, 살해 동기는 뭔가 등등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이야기는 도르르 풀려나간다.<고스포드 파크>는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자 배우로도 출연한 밥 발라반이 알트만에게 어떤 작품이든 함께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한 데서 출발했다. 이에 대해 알트만은 “나는 `Who- dunnit 무비`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해보고 싶다”며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가 생각한 기본적인 구상은 시골의 큰 집에 사냥파티를 위해 모든 사람이 한데 모여 있고, 그 가운데 살인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이 작품을 생각하면서 나는 을 떠올렸고, 그 작품은 애거사 크리스티를, 애거사 크리스티는 영국을 떠올리게 했다. 영국에서 영국 배우들과 함께 촬영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30년대 상류층 별장이라는 시공간 배경 속에서 계급적 진실과 거기에 내재한 분노, 복수심, 사랑, 질투 등을 두루마기 펼치듯 보여주는 <고스포드 파크>의 미덕은 이뿐만이 아니다. 일관되고 안정적이며 우아한 스타일은 이 영화를 빛내주는 또다른 지점이다. 훌륭하게 꾸며진 세트에서 카메라는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인간 군상들의 앞, 옆, 뒷모습과 그림자에 가려진 내면을 드러낸다. 알트만은 “왜 1932년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을 하기로 생각했나, 당시의 계급구도가 이 영화와 관계가 있나”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거야 영화에 대한 내 아이디어가 그 시대의 상황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사실 내 나이 또래에게 그때는 현대에 해당한다”며 익살을 떨기도 했다.<고스포드 파크>가 보여주는 가장 큰 영화적 아름다움은 <플레이어> <숏컷> <패션쇼> 등에서 그랬듯, 초점을 한 캐릭터에서 다음 캐릭터로 끊임없이 이동시키며 인간관계라는 소우주를 여행한다는 점이다. 이제는 아예 `앙상블영화`라고 불리는 이 소장르의 원조 알트만은 캐릭터간의 수평이동에 1층과 2층간의 수직이동을 추가한다. 카메라는 계단을 쉴새없이 오르내리며 날줄과 씨줄로 얽혀버린 이들의 `위험한 관계`까지 탐험한다. 그런데 과연 그는 이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기 그지없는 시나리오와 콘티를 머릿속에 미리 그려놓는 것일까. “영화에 대한 구상은 촬영을 시작하기 전이 아니라 촬영을 하면서 만들어진다”는 알트만의 이야기는 알쏭달쏭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다음의 설명과 붙여서 생각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게 된다.“사실 이런 벽화 그리기 식의 영화는 이젠 그만 찍을 예정이긴한데…. 아무튼 일단 연기자에게 역할이 넘어가면 그들은 이 벽화를 색칠하는 안료가 된다. 그들의 연기는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캐릭터이자 배우 개인으로서의) `진짜 진실`을 지켜본다. 그렇게 되면 나는 아, 이 영화를 이 방향으로 틀 수 있겠군, 또는 저 방향으로 몰고갈 수 있겠군, 하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알트만은 시나리오 작업과 병행해서 캐스팅 작업을 서둘렀고, 배우들을 미리 소집해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익히고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이처럼 배우로부터 영감을 얻어 영화를 만드는 그의 스타일은 “나는 내가 한번도 보지 못한 장면을 찍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는 그의 영화관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자신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한 비법을 소개했다. “한번도 못 본 영화를 찍으려면 우선, `이 부분에서 내가 어떻게 연기해야 하냐`라는 연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회피해야 한다. 앞으로도 나는 어떤 대가를 치른들 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을 거다. 한번도 보지 못한 장면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장면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 그는 “나는 영화를 만들 때 일단 2차원적인 계획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캐스팅을 한 뒤 연기자를 집어넣으면 3차원을 구상할 수 있게 된다”며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믿음도 영화 제작 방식에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고스포드 파크>는 배우를 철저하게 믿는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윌슨 부인 역의 헬렌 미렌과 콩스탕스 역의 매기 스미스는 말할 나위도 없고, 케이트 윈슬렛, 라이언 필립, 클라이브 오언 등이 만들어내는 적절한 호흡의 연기는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강하게 끌어당긴다. 알트만은 “당신은 연기자들을 좋아한다고 말해왔는데, 배우가 아닌 일반 사람들도 좋아하나”는 질문을 받고, “어쩌면 내 말을 듣고 모두들 놀랄지 모르겠는데, 나는 연기자들도 사람일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확실치는 않다…. 어찌됐건 그들이 사람 흉내를 훌륭하게 낸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라고 말해 기자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평생공로상을 받으니…“끔찍한 저질영화가 내 스승”베를린영화제가 주는 `평생공로상`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로버트 알트만은 “평생공로상을 받은 것은 물론 영광이다. 하지만 이 상이 말 그대로 평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내겐 앞으로도 여러 가지 계획들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하면서, 오는 5월15일부터 뉴욕에서 신작 <전압>의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베를린 일간지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선 2004년쯤 자신의 78년작 <결혼>을 오페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알트만 감독은 “그동안 만든 영화 중 어떤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드냐”는 질문을 받고선 “당신은 자식이 있냐”고 되물은 뒤, “당신이 자식에게 그러듯, 나는 그들을 똑같이 사랑한다. 하긴 어쩌면 그중에서 가장 덜 성공한 영화를 가장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망하게도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한다”라고 재치있게 답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은 가끔씩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감독이 누구냐’고 묻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잘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게 영향을 준 영화는 정말 끔찍하고 저질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영화들을 보면서 저렇게는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왔다. 당연히 나에게 영향을 준 감독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껄껄 웃기도 했다.또 할리우드의 아웃사이더로 오랫동안 버텨온 자신의 존재 조건에 관해 알트만 감독은 “나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와 사이가 나쁘지 않다. 우리는 다만 서로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오로지 한 종류의 영화만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어찌됐건 메이저 스튜디오와의 관계는 이런 거다. 그들은 신발을 팔지만, 나는 장갑을 만든다. 사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셈이다”라며 여운을 남겼다. 한편 그는 이와 관련해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나는 나 자신을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결국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장애인처럼 간주한다. 나는 절대로 흥행에 눈을 파는 작품을 만들 수 없다. 난 나 자신에게 충실할 수밖에 없으니까.”<사진 설명>1. 로버트 알트만 감독2. 영화 <고스포드 파크>▶ 제52회 베를린 영화제

▶ 사카모토 준지의 <KT> 첫 공개

▶ 빔 벤더스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 콘스탄틴 코스타 가브라스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