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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키우는 재미 아슈? <주 타이쿤>
2002-02-21

컴퓨터 게임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은 적이 있다. 손가락만한 강아지들이 하루하루 변해가는 모습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걷기는커녕 기지도 못하는 녀석들이 온몸을 버둥거리면서 젖꼭지로 필사적으로 나아갔다. 배가 부르면 짧은 네 다리를 하늘로 하고 터질 것 같은 핑크색 배를 벌렁 드러내고 씩씩거리며 자다가 가끔 이빨도 없는 조그만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곤 했다.

그러다 젖을 떼자 어미는 강아지들을 나 몰라라 팽개치고 따뜻한 히터 앞을 떠나지 않았다. 바들바들 떠는 강아지를 데려다가 베개 위에 올려놓고 이불을 덮어씌워 재웠다. 손바닥에 올라갈 정도로 작은 녀석을 혹시 깔아뭉개기라도 할까봐 걱정스러웠지만 그 어린 것을 혼자 재우기엔 집이 너무 추웠다. 아침이 오면 녀석은 바늘 끝 같은 조그만 이빨로 내 귀를 잘근잘근 깨물었고, 덕분에 매일 늦게 일어날 걱정은 없었다. <주 타이쿤>은 <레일로드 타이쿤>이나 <롤러코스터 타이쿤> 등 다른 ‘타이쿤’자가 붙은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동물원을 운영해 수익을 올려야 한다. 동물 우리와 기타 여러 시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능력있는 직원을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변덕이 심한 관람객의 반응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다른 게 아닌 동물원을 경영하다 보니까 경영 시뮬레이션적 재미말고도 뜻밖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주 타이쿤>을 플레이하면 동물과 함께하는 생활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성공적인 동물원 운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동물 관리다. 산책로를 만들고 매점을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쾌적한 환경에서 동물들이 즐거워하지 않으면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지치고 화난 동물들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없다. 재규어는 열대우림 지역에서 살고 아프리카 사자는 사바나 지역에 서식한다. 환경을 원래 살던 곳과 비슷하게 해주지 않으면 머리 위로 빨간 얼굴이 떠오르며 화를 낸다. 재규어와 타이완 표범은 둘 다 열대우림 지역에 사는 동물이지만 재규어는 케이폭 나무, 타이완 표범은 망그로브 나무를 좋아한다. 어설프게 가시목련 나무라도 심어줬다가는 즉각 심통을 부린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재규어를 한 무리에 여러 마리 넣어두면 당장 분란이 일지만 사자는 원래 여럿이 함께 생활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혼자 있으면 외로워한다.

취향에 맞게 우리 바닥을 단장하고 나무를 심고 바위도 갖다놓으면 기분 좋은 녀석들의 머리 위로 미소짓는 녹색 얼굴이 떠오른다. 느긋하게 배를 깔고 누워 관람객을 여유있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졸리면 이리저리 뒹굴면서 기지개를 켠다. 쌍쌍이 우리에 두고 편안하게 해주면 새끼가 태어나기도 한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천방지축 뛰어다니다가 넘어지기도 한다.

<주 타이쿤>은 동물과 사람이 느끼는 교감을 다른 동물원 경영 게임보다 훨씬 더 잘 표현하고 있다. 이것저것 시중을 들면서 녀석들의 반응을 살피다 보면 정작 돈 버는 일은 어딘가 뒷전으로 밀려난다.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동물의 생태에 대해 알아가는 즐거움도 크다.

개나 고양이, 토끼나 페렛과 함께 사는 건 행복한 경험이지만 죄를 짓는 것이기도 하다. 애완동물이란 딱지가 붙여져서 키우는 동물들은 무기력하다. 원래는 강하고 자유롭던 동물들이 이제는 주인의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미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사랑해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