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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준지의 <KT> 첫 공개
2002-02-21

역사의 그림자를 향해 펀치를 날리다<나쁜 남자>와 베를린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한 한·일 합작영화 <KT>는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얼굴> <신 인의없는 전쟁> 등으로 명성을 날려온 일본의 사카모토 준지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은 영화에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이들의 귀마저 달싹하게 했다. 대부분의 작업이 일본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73년 일어난 김대중 납치사건을 그린다는 사실 외엔 그동안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이 영화가 마침내 베를린영화제를 통해 국내 관계자들에게 첫선을 보였다.나카조노 에이스케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는 탓에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경계없이 섞여 있는 이 영화는 `자위대의 군사력 강화`를 주장하는 자위대 장교 도미타(사토 고이치)와 일본에서 정치활동을 벌이던 김대중을 제거하려는 중앙정보부 요원 김창원(김갑수)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여기에 3류 신문에서 일하는 좌파 학생운동가 출신 기자 가미카와, 김대중의 보디가드를 맡게 되는 재일동포 2세 청년, 유신시대 학생운동을 벌이다 고문의 상처를 입고 일본으로 건너온 유학생 정미 등이 복잡하게 얽혀들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KT>가 다루려는 것은 김대중 납치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이 영화는 이 사건의 범인이라 할 수 있는 도미타와 김창원의 내면을 훑어내리며 개인과 운명과 역사의 상관관계를 파고든다. 사카모토 감독은 각각의 이유와 역사를 갖고 있는 두 사람의 개인사를 조명하면서 이들의 행동을 정당화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무딘 칼날을 들어 쉽게 단죄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 영화는 역사라는 맹목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탁한 물살에 휩쓸려가는 군상을 강한 이미지로 잡아낸다. 배우들의 정지 동작이나 어두운 그림자가 유난히 검은 골을 만들고 있는 인물들의 표정은 사진이나 유화보다는 목판화를 떠올리게 한다.하지만 <KT>가 담아내려는 이야기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 의욕 과잉이 결국 문제가 된다. 한·일 감정, 미-일방위조약, 재일동포의 처우, 팍스 아메리카나, 일본 전공투 세대와 다른 세대간의 단절 등 너무 많은 사안을 향해 날려대는 펀치는 비껴맞기 일쑤다. 이들 사안에 관해 핏대를 세우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것이다. 결국 영화 속 주인공뿐 아니라 영화 자체도 역사적 사안에 발목이 붙잡힌 것은 아닐까.

▶ 제52회 베를린 영화제

▶ 베를린이 사랑한 거장 3인- 로버트 알트만, 빔 벤더스, 코스타 가브라스

▶ 빔 벤더스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 콘스탄틴 코스타 가브라스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