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나열하면 지루해질 것 같다. 몇편만 꼽아보자. <바틀 로켓>의 귀여운 삼인조 멍청이들,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의 지소와 그의 심심한 부하들, <로얄 테넌바움>의 정서 불안증 아버지(벤 스틸러)와 그의 어린 두 아들, <문라이즈 킹덤>의 씩씩한 주인공 소년과 그의 카키 스카우트 단원 동료들, 공통점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실은 이렇게 물어야 맞다. 웨스 앤더슨의 모든 (거의가 아니라 모든!) 장편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물은 무엇인가. 삼인조 멍청이들은 노란 옷을, 지소와 그의 부하들은 빨간 모자와 파란 옷을, 아버지와 두 아들은 빨간색 바탕에 흰 줄무늬가 있는 트레이닝복을, 소년과 카키 스카우트 단원 친구들은 갈색의 단원복을 입는다. 그러니까 ‘유니폼’, ‘유니폼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앤더슨의 영화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사물이 유니폼만은 아니지만 유니폼만큼 절대적인 것은 없다.
심지어 앤더슨의 신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유니폼들의 전시장인 데다 이 영화에서 유니폼들은 스토리라인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그가 갈아입는 유니폼들은 시퀀스별로 구분될 정도다. 호텔 유니폼→죄수복→수도복→제빵사의 유니폼→다시 호텔 유니폼. 표현하기에 따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주인공 구스타브가 자기의 명예로운 유니폼을 잃었다가 되찾는 이야기 구조다.
앤더슨 영화에서 유니폼은 왜 중요한 사물이 된 것일까. 앤더슨이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라는, 부디 맥 빠지는 그런 소리는 하지 말자. 앤더슨이 입는 옷은 그의 패션이지만 앤더슨 영화의 유니폼은 패션이 아니라 영화적 기호다. 그 기호가 앤더슨 영화의 모조적이며 우화적인 인상과 색감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건 확실하다. 색 자체의 명료함과 그 명료함으로 구축되는 어떤 효과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도 묻고 싶다. 유니폼은 어느 때에 입는가. 경기에 참가한 운동선수들은, 어떤 회사의 직원들은,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왜 그들 나름의 유니폼을 맞춰 입는가. 유니폼에는 ‘우리가’, ‘다 같이’, ‘동일하게’, ‘입는다’라는 명제가 새겨져 있다. 유니폼은 집단의 의복이며 혹은 긍정적으로 표현할 때 공동체적 의복이다. 앤더슨의 영화에서라면 유니폼은 주로 가족이나 친구들의 공동체, 헐렁하면서도 끈끈한 그 공동체의 의복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죄수들이, 수도승들이, 그리고 색은 제각각이지만 동일한 모양의 옷을 입은 ‘십자열쇠협회’의 멤버들이 구스타브를 돕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일 때, 바로 그들이 그런 공동체의 의복을 입고 있다.
앤더슨의 영화를 유별난 개별자의 세상에만 시선을 돌리는 영화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헐렁하지만 끈끈한 공동체적 인물들의 삶이 얼마간 더 큰 화두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런 인물들이 배제되지 않는 한 이런 내기를 걸어도 좋다. 유니폼은 반드시 돌아온다, 또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
사물이 감독에게
앤더슨 양반, 저 유니폼입니다. 뭐, 당신의 차기작쯤에 나올 미지의 유니폼이라고만 해둡시다.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제이슨 슈워츠먼, 빌 머레이, 오언 윌슨, 에이드리언 브로디 등과 친한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말입니다, 그들 몸에 맞는 옷말고 여인들의 유니폼이 한번 되어보고도 싶습니다. 다음 영화에서는 그럴 기회를 한번 줘보는 것은 어떤가요. 어때요, 당신도 좀 궁금하지 않습니까.
사물 퀴즈 01
이런 것까지 유니폼이냐고 당신은 따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내는 퀴즈이기도 하다. 아무리 작고 볼품없는 유니폼이라도 그들이 그걸 함께 입는다는 것이다. <판타스틱 Mr. 폭스>에서 왕년의 닭 도둑인 폭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들의 닭을 훔치러 잠입한다. 그때 그와 그를 따라가는 좀 모자란 친구와 어린 친척 여우가 다 함께 입는 유니폼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