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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 하는 건 내 장례식 치르는 기분”
2002-02-27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에 참석한 스즈키 감독

노래와 춤, 액션은 기본. 서스펜스는 옵션? “오락영화는 노래와 춤, 액션이 있어야 하고, 그 안에 서스펜스와 관객을 놀라게 만드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폭력 미학의 거장, 스즈키 세이준 감독이 들려준 확고한 ‘오락영화관’이다. 문화학교 서울과 시네마테크 부산이 주최한 <폭력의 엘레지-스즈키 세이준 회고전>에 참석한 스즈키 감독 기자회견이 지난 2월20일 오전 10시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렸다. 올해 79살인 스즈키 감독은 계단을 오르는 것도 힘들어하는 등 거동이 불편하다고 들었는데, 모든 질문에 나직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으며, 답변 뒤에는 “이해했느냐, 답변이 됐느냐” 일일이 확인하는 성실함을 보였다. 회고전에 대한 소감을 묻는 첫 질문에 “아직 살아 있는데 회고전을 하는 것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장례식을 하는 기분”이라고 답해 분위기를 풀어주기도 했다.

1960년대 도쿄영화광들의 우상 스즈키 세이준은 싸구려 오락영화를 만들면서도 기존의 영화문법을 파괴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스즈키 감독은 “평생 오락영화만 만들어왔기 때문에 작품에 메시지를 넣지 않았다. 인간성이나 사회성을 넣은 진지한 영화는 하지 않는다. 영화가 재미있느냐, 없느냐만 고려했다”고 말했다. <살인의 낙인> 등 60년대 닛카츠 스튜디오에서 만든 작품과 ‘다이쇼 낭만 3부작’ 등 80년대의 작품의 스타일이 확연히 다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일본영화가 사양길을 걸었던 60년대엔 모든 영화를 회사가 기획, 관리했다. 이시하라 유지로 같은 스타를 내세운 오락영화가 중심이었고, 20∼25일 만에 한편씩 만들었다. <살인의 낙인>도 회사에서 요구해서 찍은 것이다. 80년대의 독립프로덕션에서는 회사의 요구가 없었다. 나의 기본 가치관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지고이네르바이젠>은 메이저 배급망을 통하지 않고 독립프로덕션이 배급했는데 극장을 잡지 못해 텐트를 치고 상영하기도 했다.”.

살아가면서 특별한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스즈키 감독은 “기자회견도 그것에 위배되는 사건”이라고 말해 한바탕 웃음을 끌어내기도 했다. 스즈키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 등의 행사에 참석한 뒤 22일 한국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