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
2002-02-28

침묵의 소리를 들어라

Graduate 1967년, 감독 마이크 니콜스 출연 더스틴 호프먼

<EBS> 3월2일(토) 밤10시

1960년대 미국영화는 이른바 ‘반문화’의 시대를 경험한다. 청년문화와 B급 장르가 주류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지 라이더> <졸업> 등의 영화는 미국영화에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을 온당하게 만들었다. 이중에서도 <졸업>은 가장 보편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은밀하게 포장된 상업성을 간직하면서 청년 관객의 아낌없는 애정을 받았다. 성장과 불륜, 그리고 일탈의 모티브를 하나씩 이어붙인 <졸업>은 시대를 불문하고 미성숙한 젊음의 가슴을 달굴 만한 구석이 있다. 한편의 농축된 시를 연상케 하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학교를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온 벤자민은 부모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 벤자민은 로빈슨 부인과 불륜관계에 빠져들고 우연히 그녀의 딸인 일레인과 만난다. 벤자민은 일레인의 뒤를 따라가 진심으로 사랑함을 밝히지만 로빈슨 부인 등의 개입으로 일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벤자민은 일레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할 계획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유명한 결혼식 장면으로 이어진다.

<졸업>의 도입부는 영화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체크할 만하다. 벤자민은 경제적인 부와 빛나는 미래를 눈앞에 두고 있건만, 모든 것에 시큰둥하다.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막막한 상태이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영화 도입부에서 벤자민이라는 인물의 고립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카메라는 벤자민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촬영하고 있지만 사운드는 화면 밖 사운드로 처리된다. 타인들이 지껄이는 소리는 그에겐 그저, 난잡한 소음일 뿐이다. 잠수복을 입고 집안의 수영장에 발을 딛는 벤자민은 오로지 자신의 시점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모든 것은 불투명하고 부모의 극성스런 잔소리도 멀리 떨어져 있으며, 물 안의 세계는 고요함 자체다. 인물의 대화 역시 잦은 편집으로 맥이 간헐적으로 끊기고 그들간의 거리감은 아득하게 부각된다.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하는 어른들의 물음에 벤자민은 “잘 모르겠어요”를 연발한다. 그건 가장 솔직한 젊음의 고해성사다.

<졸업>은 ‘환멸영화’라는 용어로 설명되기도 한다. 중산층 가정에 속한 청년의 기성세대에 대한 비웃음,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의 위선을 경멸한다는 의미다. 시각적 구성에 있어 프랑스 누벨바그의 영향을 드러내는 <졸업>은 잘 만들어진 드라마 이상의 감흥을 담고 있지는 못한 것도 사실. 사회적 풍자와 로빈슨 부인을 비롯한 캐릭터의 어이없는 소극 사이에서 방황하던 <졸업>은 순진하다고 하기엔 히트작이 될 만한 요소를 영악하게 농축하고 있다. 게다가 벤자민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기엔 너무 탐욕스럽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