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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유혹,붉은 피 그리고 은빛 플래시”
2001-03-14

베를린에서 만난 영화 2 - 남자연기상 수상한 <트래픽>(Traffic)과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트래픽>의 기자회견에는 배우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커크 더글러스가 평생공로상을 받으러 오는 차에 아들 마이클이나 며느리 캐서린이 오지 않을까 했지만 회견장 벽보에는 감독 소더버그와 제작자의 이름만 덜렁 나붙었다. 그래도 회견장은 막 시사가 끝난 영화에 제대로 박수칠 틈도 없이 달려온 기자들로 빽빽했다. 무수한 카메라 플래시가 소더버그의 뿔테 안경 위에 작렬했다. 그는 감전될 것만 같았다. 1989년 입봉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칸에서 황금종려잎을 딴 뒤 “이제부터 내리막”이라고 말했던 ‘신동’은, 또 한번 세상의 지붕 위에 있었다.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의 흐름과 그것으로부터 피를 빨고 피를 빨리는 사람들의 궤적을 뒤쫓은 <트래픽>은 결론을 내리지도, 감정을 짜내지도 않는다. 다만 관객의 지성을 믿고 그 신뢰에 기초해 대단한 재미를 길어올린다. “댁에게 명령하는 놈도 마약 카르텔과 연관돼 있을지 몰라. 당신 인생 전체가 헛수고야.” 성실한 경찰관에 마약딜러가 던지는 비아냥은 문제의 거대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 거대한 문제로부터 어떤 미국인도 자유롭지 못함을 말한다. 도그마 영화들이 진군하기 전, <스키조폴리스>(1995)에서 이미 핸드헬드 카메라와 자연광만으로 영화를 찍었던 소더버그는 직접 촬영한 <트래픽>에서 흔들리는 카메라와 함께 삼색 필터를 써 권력과 몽환, 탐욕의 공간을 그리면서도 라스 폰 트리에보다는 자기현시가 덜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나는 도그마로부터 벗어난 충동(impulse), 영화적 수단을 축소함으로써 삶에 더 가까이 가는 충동을 좋아한다”는 그는 많은 마약을 실험해보았다지만 무엇보다 일중독자였다.

<에린 브로코비치>와 <트래픽> 이후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감독이 됐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나.

장르의 서랍에서 최적의 재료를 꺼내 적절한 스타한테 맡겼다. 그러면서도 약간은 관습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스튜디오가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믿게 했다. 장르영화는 확정된 스토리 견본을 갖고 있다. 이 견본을 존중하는 한 우리는 그 안에서 고유한 주제를 머무르게 할 장소를 상당히 확보할 수 있다. 나는 몇년 전 소수만 보는 영화가 아니면서도 멍청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직접 카메라를 들었는데.

고교 시절 정사진을 배웠고 단편영화야 물론 직접 찍었다. <라이미>부터 다시 카메라를 잡았다. 가장 큰 이유는 빨리 작업하고 싶어서다. 누군가를 설득하느라 6개월을 보내느니 그 기간 중 내가 찍는 게 낫다. 이는 영화를 더 가깝게 느끼고 처음 영화를 만들던 시절의 감정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비디오 모니터를 보며 촬영하다가 배우와 거리가 느껴져 집어치웠다. 직접 카메라를 작동하면 4, 5피트 앞에서 배우에게 속삭이며 찍을 수 있다. 소규모 스탭으로 하도 빨리 찍다보니 마이클 더글러스는 중간에 트레일러로 돌아가 쉬는 걸 아예 포기하더라.

공간에 따라 컬러를 바꿨는데.

단순히, 관객이 어디서 일어나는 일인지 혼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터로 실험한 거다. 이야기 도중 어떤 문으로 자기가 들어왔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마약 문제에 대해 미국사회는 침묵해왔다.

말한 대로 거대한 침묵이 존재한다. 이 문제에 대해 한편을 들 수 있는 미국인은 거의 없을 거다. 이 영화를 보고 언론과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나 역시 2년 반간 리서치 이후 이 문제에 대해 처음보다 복합적인 견해를 갖게 됐다. 기본적으로 마약사업에서 이익 요소를 제거하고 폭력적이지 않은 중독자를 감금말아야 한다. 지난 몇년간 정책은 그저 마약사범을 감옥에 쟁여넣는 것이었다. 범죄의 관점에서 국민보건의 관점으로 정책이 전환되길 바란다.

스타들을 많이 기용하는 이유는.

나는 더 많은 스타, 더 많은 개봉관을 얻고 싶다.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보는 심각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트래픽>은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관객에게 배우 하나하나가 기억되지 않으면 모두 혼동을 일으킨다는 이유에서도 스타가 필요했다. (웃음)

<에린 브로코비치>부터 좀더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60년작을 리메이크한 차기작 <오션스 일레븐>은 조지 클루니, 줄리아 로버츠, 브래드 피트가 출연하고 19일 크랭크인한다. 강도 스토리다. 나는 교육자 집안에서 범죄와 상관없이 컸는데 왜 자꾸 범죄영화를 만들게 되는지 모르겠다. (웃음)

독일영화가 당신의 영화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

성장기에 벤더스의 영화에 흥미를 가졌다. 70년대는 영화사의 위대한 시기였다. 사실 나의 커리어 전체가, 성인을 위한 영화가 생산되던 근사한 70년대에 살고 있는 척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웃음)

어떤 마약을 하나.

당신이 답한다면 나도 하지. (와인만 마신다고 답하자) 헤로인, 코카인 빼고 나머지는 다 시도해 봤다.

베를린=글 김혜리 기자사진 이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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