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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도그마 인증서를 걷어차다”
2001-03-14

베를린에서 만난 영화들 3 - 심사위원상 수상한 <초급자를 위한 이태리어>와 로네 셔픽감독

격동기의 역사, 사회적 이슈를 화폭으로 삼은 영화가 많다는 전통 외에도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초반부의 두드러진 경향은 유머의 득세였다. 코미디 <무지한 요정>부터 사회드라마 <트래픽>, 심지어 암환자의 죽음을 주시한 <위트>까지 웃음기 없는 영화는 찾기 어려웠다. 그중 베를리날레 손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것은 <초급자를 위한 이태리어>. 17년의 영화경력을 지닌 로네 셔픽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이 영화는 코펜하겐 교외 마을 보통 사람들의 일상 위로 순진한 욕망과 지방색, 진한 우정과 가족애, 머뭇거리는 사랑을 샴페인 거품처럼 피어올린다. 게다가 이것이 비장한 도그마 인증서를 이마에 붙인 영화라니! 달콤함에 취한 기자와 평론가들은 “대체 이 동화가 도그마영화로 만들어질 필연적 이유가 뭔가?”라는 딱딱한 질문을 생각해내기 위해 입가의 미소를 부랴부랴 걷어내야만 했다.

새로 부임한 아내를 여읜 목사, 그를 사랑하는 서툰 빵집 점원과 그녀의 못된 아버지, 알코올중독 어머니를 간호하는 미용사, 축구장을 집처럼 아는 매너없는 웨이터, 소심한 호텔 매니저 등 아무래도 인생살이에 능숙해지지 못하는 사람들은 저녁마다 이태리어 강습반에 모여든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들이 하나씩 무르익을 무렵 꿈과 도피의 땅 이탈리아로 향한다. 따스한 정조와 마켓에서의 인기가 베를린에서 2년 전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던 <미후네>를 그대로 닮은 <초급자…>는 덴마크 극장가에서 개봉 6주 만에 도그마 선배 <백치들>과 <셀레브레이션>의 최종 수익을 능가하는 수입을 올려 베를린의 대박을 예고했다.

최초의 여성 도그마 감독이라고 다들 말한다. 당신은 얼마나 ‘도그마틱’한가.

로네 셔픽(이하 로네) 아침에 일어나서 “아, 나는 여자감독이구나”라고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도그마 형제들과 함께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도그마의 규칙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도그마 정신의 정수, 즉 진실이 우선순위라는 약속에 집중했다.

도그마 규칙은 작업의 한계였나 축복이었나.

로네 크레디트에 이름이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속 편했다. 내 이름이야 다음에 고전적인 영화를 다시 할 때 올리면 되니까.

이 영화는 관습적으로 찍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장르영화 아닌가. 도그마를 택한 것은 그냥 파이낸싱의 문제인가. 클로즈업이 많은 점도 눈에 띈다.

로네 봤으니 알겠지만 <초급자…>는 눈짓과 은근한 시선이 중요한 영화다. 캐릭터의 얼굴에 가깝게 다가설 필요가 있었다.

이브 타르디니(제작자) 예산은 100만달러쯤 들었다. 도그마영화를 찍을 때마다 “왜?”냐고 묻는데 우리는 이렇게 갈 수밖에 없다. 일단 돈 문제도 있지만 도그마가 주는 여유는 우리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전에는 생각할 없었던 완전히 정신나간 듯한 아이디어를 가져다준다. 도그마영화는 제작자라면 한번 해볼 만하다. 뒤치다꺼리에 들이는 고생도 없고 모든 스탭이 귀가할 때면 뭔가 갖고 돌아간다. 도그마는 환상적인 놀이마당이다.

라르스 칼룬트 외(배우) 도그마의 차이는 일단 개런티가 적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다시 찍자고 제안할 만한 권리를 준다는 점. (웃음) 보통 상업영화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연극에서처럼 배우가 작품에 관여하고 이바지할 수도 있다.

아주 지역적인 삶을 들여다보는 영화다. 국제시장에서도 이 유머가 통할까.

로네 매우 스칸디나비아적인 영화라고 나도 생각한다. 덴마크 개봉 때는 관객이 2시간 내내 미친 듯이 웃다가 생각해보면 조크도 없는데 왜 그리 웃었을까 스스로 의아해하기도 했다. 덴마크인들은 엄청나게 수줍은 민족이고 다른 지역 관객이 캐릭터들과 공감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는 했다. 게다가 대단히 대사 중심적인 영화니까. 하지만 나는 몇해 전 베를린영화제의 아동영화 페스티벌에 작품을 상영한 경험을 통해 베를린의 관객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영화 속에 음악이 나오던데, 도그마 순결 서약 준수에 문제는 없는지.

로네 그건 진짜 재즈 피아니스트가 촬영 현장인 레스토랑에서 직접 연주한 음악이다. 영화의 결말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

각본에서 영화로 옮겨지면서 변화는 없었나.

로네 애초 계획보다 코미디가 많아졌다. 심각하게 무게잡는 영화가 안 되더라도 나 자신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화면의 색채도 달라졌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분위기는 그대로다.

도그마의 의의는 진실을 읽어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좀 동화같이 느껴진다. 결국은 행복이 모든 인간에게 찾아온다고 생각하나.

로네 이 영화 속의 여섯 캐릭터에게는 그것이 진실이다. 그러나 아마 모든 사람에게 마세라티를 타고 덴마크로 가면 행복해질 거라고 말할 순 없겠지. 그저 보잘것없는 운명도 조금은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바로 내게 요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 (웃음) 원하는 영화를 만들 자유를 얻었고 이곳 영화제에 나를 데려다줬다는 뜻이다.

베를린=글 김혜리 기자사진 이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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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곰상 수상한 <인티머시>(Intimacy)와 파트리스 셰로 감독

▶ 남자연기상 수상한 <트래픽>(Traffic)과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 심사위원대상 수상한 <베이징 자전거>와 왕샤오슈아이 감독

▶ <리틀 세네갈>과 라시드 부샤레브 감독

▶ <슈퍼 8 스토리>와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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