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복절도할 엽기적인 커플도 봤다.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커플도 봤다. 간혹 서먹서먹한 커플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커플도 봤다. 그러나 이렇게 따뜻하게 기분좋은 커플은 처음이다. “선생님은 진실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열일곱 소녀와 “세상을 띄엄띄엄 살 순 없을까?”며 자문하는 서른두살 남자. 그들의 만남과 소통을 그린 <버스, 정류장>의 김태우와 김민정은, 얌전하고 내성적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세상없이 유쾌한 청춘들이었다.
“내 얼굴이 어려 보여서 그런 거야.” “내가 정신적으로 성숙해서 그런 거라니까요.” 71년생, 82년생. 한살 빠진 띠동갑인 이들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놀리다가 여고생처럼 맞장구치며 속닥거리는 모습은, 누구에게 실례인지는 모르겠지만, 동갑의 연인 혹은 익숙한 친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막역함도 “백이면 백, 모든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나리오”를 들고 “가장 근접한 느낌”을 찾기 위해 감독과 배우 둘이 머리를 맞대고 나누었던 길고 깊었던 대화의 시간들이 없었다면 가능하기나 했을까?
지난해 가을 비오는 정류장에서 만나 올해 봄 노란 봄꽃 같은 영화 하나를 버스에 싣고 찾아온 이들은 영화홍보를 위해 급조된 ‘전략적 제휴’형 히터가 아니라 오래된 익숙함으로 축적된 ‘천연 연료식’ 난로로 스튜디오의 온도를 10도쯤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