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할 나위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던 고등학생 신이치(소메타니 쇼타)는 어느 날 밤 이상한 일을 겪는다. 잠을 자던 중 작은 뱀처럼 생긴 정체 모를 물체가 자신의 오른손 안으로 파고든 것이다. 신이치는 꿈이라 생각하고 넘어가지만 다음날 아침 자신의 오른손이 말까지 할 수 있는 다른 생물로 변해 있음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놀랄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날을 기점으로 일본 전역에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신이치는 이 사건이 자신의 오른손을 차지한 ‘기생수’와 연관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2005) 시리즈 등을 연출한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의 <기생수 파트1>은 이와아키 히토시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완결편인 <기생수 파트2>는 오는 4월 일본에서 개봉예정이다). 만화 <기생수>는 1988년에 연재를 시작한 후 기발한 상상력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제기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영화화에 대한 기대 역시 높았던 작품이다. 원작 팬들은 인간의 몸을 산산이 해체해버리는 강력한 폭력과 문명사회에 대한 시니컬한 유머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세계를 다른 매체에서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기생수 파트1>은 원작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폭넓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영화로 옮기는 데 실패한다. 영화는 원작의 ‘곁가지’에 해당하는 신이치의 아버지나 텔레파시 소녀 카나 등 만화 <기생수>의 많은 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냈고 에피소드의 구성 역시 과감히 재배치했다. 이를 통해 신이치와 다른 기생수들과의 싸움을 그리는 데 더 힘을 쏟으며, 나아가 이야기의 빠른 전개에 주력한 것이다.
물론 이야기 전개의 효율성에 방점을 찍은 감독의 선택이 그 자체로 나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까지 거침없이 잘라낸 것은 명백한 실책으로 보인다. 특히 유약하던 소년 신이치가 점차 다른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이라든지, 신이치와 ‘오른손’의 기묘한 연대를 한두개의 사건으로만 기능적으로 짚고 넘어가는 것은 결과적으로 영화의 감정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린다. 만화 <기생수>의 장점은 단순히 기생수의 기괴한 모습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피와 살이 난무하는 폭력 묘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기생수 파트1>은 겉으로 드러난 에피소드를 따라가기만 하다 그 아래 녹아 있는 인물의 심리 변화를 놓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