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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알 수 없다
정지혜 2015-06-02

<무뢰한>의 이상한 멜로가 드러내는 감정의 흐름들

이상한 시간이 있다. 하루에 단 두번, 낮이 밤으로 밤이 낮으로 바뀌는 새벽과 해질녘. 그 시간을 일컬어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 저기 저 언덕 너머에 보이는 형체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그런 때다. 적과 동지를,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힘든 이 모호한 시간 안에서 모든 사물의 윤곽은 흐릿해지고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맥이 풀린다. 이때를 빌려 사물의 실체를, 저간의 사정을 명확히 포착해내려 한다면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시도였는지 모른다. <무뢰한>은 이처럼 이상한 시간에 기대고 있는 영화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는 시종 여명인지 어둠인지 알 수 없는 푸르스름한 빛 사이를 부유한다. 이것은 단지 영화의 분위기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무뢰한>의 남녀주인공 정재곤(김남길)과 김혜경(전도연)은 이 애매하고 불명확한 시간 속에서 운신하는 사람들이다. 살인사건의 용의자 박준길(박성웅)을 쫓는 형사 정재곤과 박준길의 애인이자 단란주점 마담 김혜경은 “보통 사람”들이 잠을 자거나 숨 한번 돌릴 그 시간에 일을 하고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상한 건 또 있다. 극이 전개되면서 정재곤과 김혜경은 이상한 방식으로 만나게 되는데, 그 와중에 서로가 서로에게 품게 되는 뜻 모를 감정의 실체를 단 한번도 명확한 언어로 발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의 감정은 개와 늑대의 시간 속에서 그 시간의 본질만큼이나 흐릿하고 불명확하다. 마치 이 감정이라는 것은 애초에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웅변하는 것 같다. 반대로, 두 사람의 감정의 흐릿함 덕에 우리는 <무뢰한>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재곤과 김혜경의 접점은, 박준길이 아니다. 정재곤과 김혜경은 이 불분명한 시간대를 뚫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알게 되는 피로감의 세계를 공유한다. 그리고 이 피로감이 만들어내는 예민한 기류를 알아챈 두 사람의 ‘능력’이야말로 이들의 접점이다. ‘아마도 (당신도/그것도) 그렇지 않겠느냐’라는 추측과 무드. <무뢰한>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어둠인지 여명인지 모를 공기를 뚫고 <무뢰한>의 첫 장면이 시작된다. 형사 정재곤의 뒷모습이다. 어딘가 약간 균형을 잃은 듯한 미묘한 엇박자의 걸음걸이다. 멍한 듯한 눈빛 하며 시무룩한 표정까지. 그런 그에게서는 무료함마저 느껴진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성격의 사내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확실한 건 그는 지금 살인 용의자 박준길을 쫓고 있고 그것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거의 모든 동력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박준길이 분명히 애인 김혜경에게 갈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의 주위를 맴돈다. 김혜경이 등장한다. 그녀 역시도 새벽의 푸른 기운을 뚫고 걸어 나온다. 한때는 잘나갔지만 지금은 ‘퇴물’ 취급당하며 성남의 마카오 단란주점에서 마담으로 일하는 여자다. 이 바닥 생활을 한 지 10년째. 지금 그녀에게 남은 건, “미안하다”는 말을 앞에 붙인 뒤 돈을 구해달라 말하는, 용의자가 된 애인과 5억여원의 빚 그리고 자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뒷골목의 사내들뿐이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인생이다. 단 몇 장면만 봐도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림이 그려진다. 숨길 것 없이 ‘깨끗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숨길 수 없어 까발려진 삶을 사는 그런 여자가 김혜경이다.

두 얼굴의 남자와 쌍둥이

이윽고 정재곤이 김혜경 앞에 나타난다. 그런데 그 방식이 좀 이상하다. 돌연 재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제3의 인물이 돼 혜경 앞에 등장한다. 재곤은 혜경에게 자신을 박준길과 감방 동기이며 마카오 단란주점 영업상무인 이영준이라고 소개한다. 재곤은 말없이 상대를 깊이 응시하던 눈빛을 숨긴 채 약간의 넉살과 얼마간의 호기를 더한 이영준이라는 옷을 입는다. 이것은 정재곤의 두 번째 얼굴이다. 이것은 재곤이 판을 깔고 포문을 연 게임이기도 하다. 재곤은 이영준이 돼 혜경에게 박준길에 대해 물어보고, 혜경의 마음을 떠보며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수집해나간다. 재곤은 준길이 혜경을 단란주점에 맡기고 뜯어낸 돈으로 도박을 했으며 그래서 지금 혜경이 빚더미에 올랐다는 것도 전부 다 안다. 이영준으로 변신한 재곤은 혜경 앞에서 자신이 쥔 모든 패를 숨기고도 혜경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패를 얻어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혜경은 정반대다. 혜경은 이영준에게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고 말하며 그의 행동을 이상히 여기지만 그런 그녀의 직감은 이 게임의 승패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것은 안 돼 보인다. 되레 그녀는 이영준에게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이다. 혜경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감추고 숨길 만한 여력도, 여유도 없는 인생이다. 아마도 그런 식으로 그녀는 여기까지 살아왔을 것이다. 재곤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둘 사이의 정보의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서 더 크게 흔들리는 건 혜경이 아니라 재곤이다. 재곤의 흔들림은 진실만을 말하는 혜경 앞에서 진실을 숨기던 재곤이 이영준으로 살면서 언뜻언뜻 보이게 되는 혜경을 향한 (아마도) 진심 같은 것에서 목격된다. 김혜경과 함께 빚을 받으러 다니던 재곤은 혜경이 무뢰한들로 인해 느끼는 모욕을 지켜보게 된다. 재곤은 자신이 용의자를 검거하기 위해 과거에 사용했던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혜경에게 정보를 캐내려는 동료 경찰을 혜경 몰래 저지하고 그녀를 무뢰한들로부터 떨어뜨려놓기까지 한다. 어둠 속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 혜경을 말없이 바라보는 영준(재곤)의 눈빛이나 경찰서 취조실 너머에서 몰래 혜경을 보며 내뱉은 재곤의 짧은 한탄은 그의 마음에 난 균열을 가늠해보게 하는 중요한 단서들이다.

‘두 얼굴’이라는 이러한 장치는 오승욱 감독의 전작인 <킬리만자로>의 쌍둥이 형제와 묘하게 호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형사인 형 해식(박신양)과 범죄 용의자인 동생 해철(박신양)은 전혀 다른 성격과 삶을 산다. 그런 해식은 자살한 해철의 유골을 들고 고향을 찾고 그곳에서 자신을 해철로 착각하는 동생의 옛 동료들과 지역의 폭력배 일당을 만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해식은 자신을 해철로 대하는 번개(안성기) 앞에서 진짜 해철처럼 굴 때가 있다.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 나는 쓰레기라고!”라며 말하는 그는 잠시나마 해철의 얼굴을 빌려서 해식으로서의 자신의 속내를 슬쩍 드러내 보인다. 이때 해식의 얼굴은 본래의 과격하고 외골수의 해식과는 다른 얼굴이다. 해철이라는 페르소나(그리스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에서 유래한 말로 이 가면을 쓰면 또 하나의 인격이 생긴다는 의미로 자아에 대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를 뒤집어썼을 때, 그로부터 생기는 익명성과 타자성이 본래 자신의 감정을 처음으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다. 정재곤에게 이영준은 그런 가면이다. 이영준으로서 김혜경을 만나고 돌아온 정재곤은 분명 과거의 정재곤이 아니다. 사회적이고 공적인 얼굴인 첫 번째 얼굴(정재곤)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두 번째 얼굴(이영준)로 사는 시간 동안 재곤은 분명 자신에 대한 어떤 환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형사와 범죄자의 애인

<무뢰한>의 멜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무뢰한>의 관심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재곤이 느끼는 감정의 환기에 가 있다. 그 감정은 강렬하게 폭발하는 카타르시스와는 엄연히 다르다. 지극히 서늘하고 비정하며 한껏 처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극 후반, 영준과 혜경이 혜경의 방에 누워 나누는 대화는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슬픔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혜경이 영준의 몸에 난 깊은 상처들의 출처에 대해 물었을 때, 영준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거”라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넘기려 한다. 하지만 이어서 “이거 다 기억하냐”는 혜경의 질문에 영준은 혜경을 바라보며 “기억하기 싫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영준이 아닌 재곤으로서 하는 말이다. 누구에게도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던 재곤이 자신의 가장 밑바닥에서 길어올린 말이기도 하다. 에두르지 않고 피해가지 않는 그의 이 말은 혜경을 향한 사랑의 고백으로는 비쳐지진 않을지언정 혜경으로 인해 비로소 환기되는 자기 자신을 향한 작은 위무와 같다. 이 순간에 재곤은 그동안 잊고 묻어두려 했던 자신의 상처를 어쩌면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보게 된다. 이 영화 안에서 가장 많은 상처를 떠안고 사는 사람, 김혜경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 재곤에게 혜경은 말한다. “상처 위에 또 상처, 더러운 기억 위에 또 더러운 기억. 뭐, 그런 거죠.” 혜경이 상처를 이해하는 방식은 결국 상처가 아무는 것을 아예 포기해버리는 데에 있다. 정체도 속내도 도통 알 수 없는 이상한 사내 재곤과 비정하고 극악스러운 뒷골목에서 포기라는 말을 체득해버린 여자 혜경. 그들이 나눈 감정의 실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그냥 그 두 사람이 느낀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 어렴풋한 느낌 안에서 그들은 잠시나마 서로의 가장 깊은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결국 혜경은 영준이 형사 정재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순간, 혜경이 재곤에게 하는 말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말이다. “당신 진짜 이름이 뭐예요?” 혜경의 이 질문은 가장 진실했던 사람이 진실과 가장 멀리 있던 사람에게 던지는 진심에 대한 마지막 탐문이다. 동시에 혜경은 재곤의 첫 번째 얼굴, 그 본연의 모습에 대해 물어온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재곤이 답한다. “내 이름은 정재곤입니다.” 이어서 그는 “난 형사고 넌 범죄자의 애인이야. 난 내 일을 한 거지 널 배신한 게 아니야”라고 덧붙여 말한다. 그의 이 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킬리만자로>의 해식은 끝내 자신이 해식임을 말하지 못한 채 자포자기해버렸다. <무뢰한>의 정재곤은 자신의 존재를 발설하고 제가 살아온 세계로 돌아가는 사내다. 무엇이 더 비극적인가. 영화의 마지막. 어스름인지 여명인지 알 듯 모를 듯한 시간에 정재곤이 걸어간다. 영화는 이 순간의 정재곤의 맨 얼굴을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이윽고 정재곤의 얼굴 위로 뜨는 ‘무뢰한’이라는 타이틀(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뜨는 타이틀이다)은 마치 제3의 심판자가 혹은 정재곤 스스로가 자신에게 내리는 최후의 심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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