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누군가에게 슬픔은 폭탄보다 거대할 수 있지
장영엽 2015-06-16

<라우더 댄 밤즈> 요아킴 트리에 감독

<라우더 댄 밤즈>

추억과 슬픔은 누구에게든 다르게 적히는 법이다. 노르웨이 출신의 신인감독 요아킴 트리에의 <라우더 댄 밤즈>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고요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복합적인 내러티브와 감각적인 영상으로 옮긴 영화다. 종군 사진작가였던 이자벨(이자벨 위페르)이 차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남편(가브리엘 번)과 두 아들(제시 아이젠버그, 데빈 드루이드)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파하고, 추억하며, 함께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디려 애쓴다. 노르웨이 출신의 감독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건 36년 만의 일이다. 전작 <리프라이즈> <오슬로, 8월31일>을 통해 등장인물의 감정과 드라마를 흔치 않은 방식으로 직조하는 데 장기가 있음을 보여준 요아킴 트리에에게, 그의 첫 영어영화 연출작인 이 작품은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도약의 한 걸음이다.

-제목에 대한 질문을 해보자. <라우더 댄 밤즈>는 영국 록그룹 더 스미스의 컴필레이션 앨범과 같은 제목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들의 음반에서 영감을 얻었나.

=이 영화를 구상한 건 꽤 오래전 일인데, 음…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더 스미스 역시 엘리자베스 스마트의 시 <그랜드 센트럴역에서 나는 앉아 울었네>(By Grand Central station I sat down and wept)로부터 그 제목을 차용하지 않았나. 나는 ‘라우더 댄 밤즈’라는 제목을 좀 다른 의미로 사용했다. 비극적이고 거대한 일들이 일어나는 이 세상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느낄 슬픔은 정말 사소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슬픔은 폭탄보다 거대한 존재일 수 있다. 그런 의미로 제목을 붙였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는 단계에서 어떤 고민을 했나.

=처음에는 가족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했다. 예를 들어 슬픔은 함께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각자 다르게 경험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가족들이 함께, 또 따로 겪는 감정들에 대한 고민을 했다. 더불어 나는 존 휴스가 연출한 <조찬클럽>(1985)의 현대 버전을 만들고 싶었다. 그 영화를 뉴욕에서 찍은 줄 알고 뉴욕으로 가서 영화 준비를 하는데 알고 보니 시카고에서 찍은 영화더라.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선택했기에 얻은 것들이 있을 거다.

=프랑스인 출신의 종군 사진기자인 엄마 캐릭터가 등장하기에 뉴욕은 최적의 장소다. 매그넘 같은 대형 사진 에이전시가 있고, 다양한 인종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 뉴욕이니까. 더불어 나는 미국 동부 해안가의 낙엽을 담은 영화도 꼭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뉴욕이라는 장소가 그걸 가능하게 해줬다.

-이자벨의 직업을 종군 사진작가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종군 사진작가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직업에 있어서는 엄청난 능력자들이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다. 위험에 중독된 듯 보이는 그들의 자기파괴적인 기질, 안주하지 않는 모습, 다른 사람이 걱정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이기적인 면모.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자질들이 매우 흥미롭게 보였다. 이자벨 위페르가 한 가족의 어머니와 사진작가로서의 다양한 모습을 멋지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정말 훌륭한 배우다. 나는 여태까지 그녀처럼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변모시키는 배우를 만나본 적이 없다.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등장인물 각자의 시점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처음부터 이러한 구조를 염두에 뒀나.

=처음부터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보다 등장인물 각자의 이야기가 점진적으로 전개되는 구조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소설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계속 시점이 점프하기 때문이다. 나는 더불어 개별 등장인물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하고, 각자의 사연이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함께 이끌어갔으면 했다. 내게 이건 꽤 실험적인 방식이었다.

-이 영화는 상실에 대한 슬픔을 다루고 있지만, 꽤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들이 행복에 도달하기까지 절대로 쉬운 과정을 거치는 건 아니지만, 생각해보니 이 영화가 내 전작을 통틀어 가장 밝은 결말로 마무리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아마도 우리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의미를 재부여하는 행동이 내겐 희망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