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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으로 되돌아가 정공법으로 출발해보고 싶다”

<극비수사> 곽경택 감독

곽경택 감독의 12번째 장편영화 <극비수사>는 감독의 전작들과 여러모로 다르다. 그가 형사영화라는 장르에 도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장동건(<친구>), 정우성(<똥개>), 주진모(<사랑>), 권상우(<통증>), 김우빈(<친구2>) 같은 스타성을 앞세운 남자배우들을 조련해왔다면 김윤석, 유해진, 장영남, 송영창, 이정은 등 이른바 연기 선수들로 출연진을 꾸린 것도 새롭다. 기자시사회에서 첫 공개된 뒤 반응이 좋았던 까닭일까.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곽경택 감독은 인터뷰 내내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자시사회에서 첫 공개됐다. 반응이 좋다.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착한 영화 한편 만들려고 출발한 작품이다. 요즘 나오는 영화들은 유괴다, 뭐다 하면 뭘 자르고, 부수고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이 영화에는 잔인한 장면이 없어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친구2> 취재할 때 만났던 공길용 형사가 해준 당시 사건의 어떤 점에 매료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나.

=어렸을 때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유괴된 아이는 여동생(바른손필름 곽신애 대표)과 같은 학교를 다녔다. 신애가 학교 갔다오자마자 엄마한테 “우리 학교 2학년짜리 애가 유괴당했데이”라고 얘기한 게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들의 가슴을 쓸어담았던 그 사건은 여러 형사들의 힘으로 해결된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공길용 형사, 김중산 도사, 두 사람을 만나 그 사건의 숨겨진 사연을 들으니 황당하고 신기하더라. 자신들의 얘기를 할 때 두 사람의 촉촉한 눈망울을 보고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영화로 만들겠다고 하니 두 사람은 흔쾌히 허락하던가.

=공길용 선생님은 “나이 70이 넘어서 숨겨진 얘기를 털어놓는다고 한들 내를 원망하겠나”라고 마음을 스스로 정리해주셨다. 내가 처음에 얘기 들으러 찾아간다고 했을 때 공 선생님은 오지 말라고 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디션 프로그램 <기적의 오디션>에 출연한 나의 솔직한 모습을 좋게 보시고 허락해주셨다. 김중산 도사님은 “곽 감독님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보세요. 저는 열심히 기도해드릴게요”라고 말씀해주셨고.

-실화지만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했을 때 가장 신경이 쓰였던 건 뭔가.

=실화가 아니었다면 허무맹랑한 코드로 빠질 수 있는 이야기였다. 도사가 범인으로부터 유괴 15일 만에 전화가 오고, 오전 10시에 전화할 거라는 사실을 점으로 맞혔다는 게 황당하잖나. 그래서 주변에서도 유괴쪽으로 풀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하고. 유괴 얘기할 거면 뭐 하러 33년 전 얘기를 하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화적 공감대를 얻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캐릭터 이름으로 실제 인물의 본명을 그대로 쓴 이유는 무엇인가.

=이름이 좋아서. 공길용, 잘 굴러가잖나. 김중산, 도사 같잖아. 두분 모두 이름 사용을 허락해주셨다.

-김윤석, 유해진과의 작업은 어땠나.

=그동안 연기에 에너지를 뺏겨서 다른 파트에 신경 쓰지 못했다. 이번에는 선수들이 알아서 잘하니까 촬영, 미술 같은 다른 파트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김)윤석씨가 한번은 이런 얘길 했다. “감독님, 강호 있죠? 강호는 한두개 가지고 연기 안 합니다. 오케이를 받아도 한두번 더 가자고 합니다.” 자기 얘기를 송강호에 빗대어 하더라. 그래서 속으로 ‘땡큐’했지. 배우가 더 하겠다는데 감사하지. 그의 열정과 성실함에 놀랐다. (유)해진씨는 여느 충청도 사람들처럼 감정 표시를 잘 안 한다. 고민이나 할 얘기가 있어도 잘 안 꺼낸다. “식사하셨어요? 그런데 아까 그거 괜찮아요?”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성격이다. 스타일은 달라도 두 사람 덕분에 편하게 기댈 수 있었다.

-오프닝 시퀀스가 인상적이었다. 동요 <옹달샘>이 흘러나오면서 주인공 공길용과 1978년 분위기를 몽타주로 보여줬다. 동요 때문에 분위기가 묘했다.

=아이가 유괴된 이야기라 아이 목소리가 들어갔으면 좋겠고, 시대 분위기를 내기 위해 전축 사운드 효과를 활용했다. <옹달샘>이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라고 시작하는데 가사 내용이 되게 미스터리한 느낌이 있어 시나리오 때부터 설정했다.

-로케이션 촬영 분량이 많은 데다가 카메라앵글 사이즈가 롱숏이 많아 시대 분위기를 내는 데 손이 많이 갔을 것 같다. 덕분에 미술, 로케이션, 의상, 헤어, 차량, 소품 등 비주얼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디테일하게 재현됐다.

=길거리 장면 분량이 많아 로케이션 촬영을 피해갈 수 없었다. 스탭들을 모아 내 경험에 기초한 작전을 전달했다. 가장 신경 써야 했던 게 패션이었다. 옷, 헤어에 가장 먼저 눈이 가니 아낌없이 지원해라. 차 많이 빌린다고 눈치주지 마라. 그리고 로케이션과 소품까지 이 네 가지를 항상 머릿속에서 잊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카메라앵글을 넓게 쓰면서 시원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야기의 중반부까지 전형적인 형사영화의 구조에 충실하다. 그런 구조에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고민했던 건 무엇인가.

=이번 작품만큼 인서트숏을 많이 쓴 적이 없다. 대사가 나오든, 내레이션이 나오든 무조건 그림으로 메웠다. “관객에게 딴생각할 틈을 주지 않게 해야 한다”는 김창주 편집 감독의 말대로 정신없이 그림을 채워넣어 중반부까지 집중력 있게 끌고 가는 게 목표였다.

-공간이 서울로 이동하는 영화의 후반부, 장영남이 히든카드로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원래는 (장)영남씨가 아이 엄마를, 고창석씨의 아내인 이정은씨가 고모를 연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영남씨한테 아이 유괴 당한 엄마 역을 시킬 수 없겠더라. 그래서 두 사람을 만나 “연기 변신하자”고 배역을 서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영남씨가 1970년대 패션을 너무 잘 소화하더라. 바가지 머리도 잘 어울리고. (웃음) 모니터를 보면서 잘한 선택이다 싶었다.

-유괴된 소녀의 고모가 범인을 기다리고 있고, 공길용 형사가 도로 맞은편에서 잠복하는 여의도 KBS 시퀀스는 인물 동선이 복잡하고, 보조출연자가 많은 데다가 카메라앵글 사이즈가 넓어 매우 어려운 촬영이다. 액션 신 하나 없는데 꽤 긴장감이 넘치더라.

=촬영 후반부에 찍었다. 카메라가 3대나 동원됐고, 제작비가 많이 투입돼 중요한 촬영이었다. 스스로 이 장면에 올인해보자 싶어 원래 3회차로 잡혔던 촬영을 하루 만에 찍었다. 감독 의자 치우고, 막 뛰어다니면서 모니터 확인하며 80컷 가까이 찍었다. 그날 현장에서 윤석씨가 기똥찬 아이디어를 2개나 냈다. 윤석씨가 운전한 차량 번호판이 부산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윤석씨가 “감독님, 범인이 부산차라는 걸 알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하면서 번호판을 가리는 설정을 추가했다. 여고생들이 방송국에서 나온 스타를 보기 위해 몰려가는 장면에서 윤석씨가 “감독님, 저 무리에 뛰어들어 범인의 차량을 따라가고 싶다”고 해서 가만히 서 있는 원래의 설정을 바꾸었다. 그가 낸 자연스러운 디테일들이 극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범인을 아주 나쁜 인간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이유가 뭔가.

=공길용 선생님의 묘사에 따르면, 범인이 아주 악질은 아니었다. 당시 잔상이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실제 사건이 벌어진 뒤 <수사반장>에서 그 사건을 다뤘는데 고 추송웅씨가 범인을 연기했다. 추송웅이라는 배우가 악인과 선인 구분이 잘 안 되잖나. 인간적인 느낌도 있고. 공길용 형사의 증언과 추송웅씨 이미지가 합쳐지면서 그렇게 묘사한 것 같다.

-김중산 선생에게 영화가 얼마나 흥행될 건지 물어봤나.

=안 물어봤다. 그저 선생님은 “영화 잘될 거고, 기도 많이 하겠습니다”라고 하셨다.

-<친구>의 명성을 넘기 위해 <극비수사>를 치열하게 작업했다고 했다.

=자극적이지 않은 이야기 하나만 가지고 성공하고 싶었다. 전작 <친구2>는 잃었던 영화산업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안 꺼낼 수 없었던 카드였고, 다행스럽게도 ‘낫 배드’라는 평가를 받으며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2008) 이후 영화감독으로서 가능성을 다시 인정받기까지 6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억수탕>(1997) 같은 따뜻한 작품 <극비수사>를 통해 원점으로 되돌아가 정공법으로 출발해보고 싶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동생인 바른손필름 곽신애 대표와 <완전한 심판>이라는 판타지 스릴러를 준비하고 있다. 부산이 아닌 서울이 배경이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7년 만에 살아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시나리오가 6고까지 나왔고, 주연배우 캐스팅이 마무리되는 대로 8월 말 촬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판타지 스릴러는 이번이 처음인데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이 될 것 같다.

-거의 쉴 틈 없이 바로 시작하는 일정이 아닌가.

=괜찮다. 그동안 충분히 많이 쉬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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