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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 무당 노릇을 강요받는 젊은 과부
이화정 사진 백종헌 2015-07-13

<손님> 천우희

따지고 보니 87년생 천우희는 항상 실제보다 한참 어린 소녀로 각인되어왔다. <써니>(2011)에서 본드에 취해 깨진 병을 들고 매점에서 악다구니를 쓰던 ‘본드녀’가 그녀였고, <한공주>(2013)에서는 끔찍한 성폭행의 피해자이지만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고 죄인처럼 도망 다녀야 하는 17살의 ‘공주’였다. <우아한 거짓말>(2013)에서 그녀는 가난한 환경에서도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는 책임을 진 의젓한 언니 역할로 소임을 다했다. 앞서 <26년>(2012)에서 권정혁(임슬옹)의 누이로 잠깐 얼굴을 비칠 때도 그녀는 교복 차림이었다. 이 많은 소녀들 사이에서 교복으로 상징되는 해맑은 소녀의 이미지를 단 한번도 ‘입어보지 못했’다는 지점에 이르면, 배우 천우희가 대변하는 분위기가 보다 명확해진다.

“<우아한 거짓말> 때 이젠 교복을 벗어야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웃음)” 전쟁통에 가족을 잃은 젊은 과부. 마을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무당 노릇을 강요받는 기구한 운명의 여인 미숙 역을 캐스팅하면서 김광태 감독은 “<한공주>에서 천우희가 보여준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매료됐다”고 말한다. 욕심 없는 맑은 심성을 감추고 신들린 무당을 연기해야 하는 억울한 상황. 그 복잡미묘한 미숙의 표정을 통해서 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읽혀야 했다. 짧게 등장하지만 그만큼 난해한 캐릭터고, 그 때문에 이 역할을 선뜻 수락한 여배우들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천우희로서는 교복과 소녀의 키워드를 벗고 마을의 손님 우룡(류승룡)과 멜로의 감정까지 엮어내야 하는 것도 전에 없던 도전이었다. “껑충 연령대가 높아졌다. 부담은 됐지만 기존의 역할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욕심을 좀 부렸다. 일부러 살도 좀 찌웠다. 다행히 아이를 안은 장면들을 모니터로 보는데 실제 아기 엄마 같고 잘 어울리더라. (웃음)”

미숙은 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같은 캐릭터지만 천우희가 접근한 방법은 오히려 심플했다. “적어도 미숙을 ‘연기’하지는 말자는 것이 원칙이었다.” 좀 어려운 말 같지만 “너무 내색하거나 의도적으로 연기를 하면 결국 캐릭터가 부자연스러워진다”는 말로 유추해보건대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 관건이었던 것 같다. 천우희는 현장에서 장난도 잘 치고 밝은 모습을 보이던 기존 작품들에서와 달리, 이번에는 좀 차분하게 감정을 유지하는 데 주력하며 미숙의 감정을 따라갔다고 한다. 김광태 감독은 <손님>에서 이렇게 그녀의 해석을 토대로 만들어진 미숙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이 상당하다고 보증한다. “현장에서 카메라가 돌아가면 시나리오에서 기술한 미숙과 달라지는데 늘 기대치를 넘어서거나 다른 방향을 보여주더라. 그게 자극이 되고 영화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줬다. 배우의 힘이라는 게 그렇게나 컸다.”

지난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한공주>를 끝내고 사실 천우희에게도 적잖은 고민이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든 작품만 할까. 삶의 짐을 짊어진 캐릭터들의 고통이 늘 나를 감싸고 있었다. 힘들지만 완수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달려왔던 것 같다.” 가볍고 발랄한 또래의 연기가 탐났던 것도 사실이다. “지쳐 있던 때였는데, 누군가가 네게는 그런 어려운 연기를 할 수 있는 깊이감이 있으니까 힘내라는 이야기를 해주더라. 자부심이 생겼다. 업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더 잘 표현해야겠다 다짐했다.” 마라케시영화제에서 <한공주>를 본 마리옹 코티야르의 연기에 대한 호평, 주목할 만한 여배우라는 평단의 찬사, 그리고 수상까지 이어지며 지난해 천우희는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했다. 그리고 지금 충무로에서 그녀는 ‘여배우들이 기능적으로만 소모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 있는 배우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아무래도 그런 관심 때문에 ‘천우희가 누군데, 그렇게 잘해?’ 하는 좀 날선 시선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다. 부담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는 중간도 안 왔다는 생각이 든다. 편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어차피 나한테 연기는 평생 할 일인데. (웃음)” 올해는 벌써 <뷰티 인사이드>와 <곡성>의 개봉 라인업이 잡혀 있다. 그 긴 여정에서 색다른 길이 될 <손님>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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