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캐릭터 하나는 확실하다. 최근 ‘양꼬치엔칭따오’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배우 정상훈이다. 정상훈은 <SNL코리아> 시즌6의 한 코너인 ‘글로벌 위켄드 와이’에서 엉터리 중국어 연기를 펼치는 중국 특파원 ‘양꼬치엔칭따오’를 맡으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SNL코리아>에는 지난 2월부터 합류해 ‘양꼬치엔칭따오’로 인기를 얻었고 국내 최초로 칭타오 맥주의 광고모델까지 되었으나 배우가 아닌 개그맨으로 알려지는 웃지 못할 부작용(!)도 발생했다. 하지만 정상훈은 “18년 동안 ‘어디서 많이 본 사람’으로 지냈는데 이젠 ‘양꼬치엔칭따오!’라고 외치며 달려와주는 이들이 생겨 무척 재밌고 좋다”고 말한다. 진지한 뮤지컬 배우이자 유쾌한 SNL 크루, 또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이기도 한 그에겐 하루하루가 “긍정의 날들”이다.
-<SNL코리아> 시즌6을 얼마 전 마치고 요샌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10주년 기념 공연 연습에 한창이라고.
=연습도 매일 하고 있고, 오늘은 <평양냉면> 뮤직비디오 촬영도 한다.
-tvN 예능 <촉촉한 오빠들>이 금세 종영해 아쉬웠겠다. 이웃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훈훈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출연자로서 당연히 아쉽다. 프로그램의 취지는 좋았지만 시청률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신동엽의 권유로 <SNL코리아> 시즌6에 크루로 합류했다.
=결혼하고 나니 가계도 생각해야 했다. 때마침 (신)동엽이 형이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해주셨다. 너무 좋았다. 막연하게 나도 언젠간 방송을 하겠거니 했는데 <SNL코리아>로 물꼬를 트게 돼 기뻤다.
-무대 연기를 하던 실력이 스탠드업 코미디에서도 빛을 발한 케이스 같다.
=무대 활동이 내겐 아주 큰 경험적 자산이다. 뮤지컬에 익숙해서 그런지 내 연기에 관객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기분이 이상하다. 뭔가 놓친 거다. 내려와서는 뭐가 잘못된 걸까 연구하고, 놓친 걸 보완하는 쪽으로 코너를 짰다. 그 덕분에 생방송 환경에도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낯선 얼굴이니만큼 구성원으로서 인정받는 시간도 필요했다. 친한 친구가 이상한 농담을 하면 ‘얘 웃기네’ 싶지만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이상한 농담을 하면 ‘뭐야, 저 병신은?’ 하게 되잖나. (웃음)
-‘양꼬치엔칭따오’가 무엇 때문에 사랑받았다고 생각하나.
=아마도 ‘양꼬치엔칭따오’가 관객 자신들과 비슷한 평범한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레벨 차이가 별로 안 나는 개그랄까. 못하는데 잘하려고 애를 쓰는 게 측은하기도 할 테고. 또 살면서 다들 한번씩 중국 사람 흉내 내보지 않나. 개그가 쉬우니까 회사원 장기자랑 때 ‘양꼬치엔칭따오’를 많이 따라한다고 들었다.
-딱 홍콩영화와 중국 무협영화 흉내내며 놀던 세대가 아닌가. 거기서 영감을 얻은 건가.
=그땐 진짜 많이들 따라했다. 성룡, 주성치…. <영웅본색>(1986)에 나오는 노래도 따라하고. 가사, 제목도 제대로 모른다. 그냥 들리는 대로 한글로 써서 외우는 거다. 얼마전 오랜만에 옛 친구들 만나서 같이 그 노래를 불렀는데 서로 다 다른 가사로 부르는 게 아닌가.
-그 덕에 국내 최초로 칭타오 맥주의 광고모델까지 됐다.
=다들 진짜 광고가 아니라 개그 동영상인 줄 아시더라. (웃음) 첫 방송 이후 칭타오 맥주에서 맥주를 20박스 보내주었다. 고맙게 잘 마셨다. 그로부터 3주쯤 지나 피자헛에서 연락이 와서 피자헛 유튜브 광고를 찍었다. 와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네? 싶었다. 속으로 칭타오 맥주 광고도 찍으면 최고겠다 싶었는데 진짜 맥주 광고 제의가 들어왔다.
-평소에도 양꼬치와 칭타오 맥주를 즐기나.
=친한 형이 양꼬치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 자주 먹는다. 상표등록도 했으니 같이 양꼬치 가게를 새로 열자고 했는데 됐다더라. 지금 가게가 잘되는데 굳이 나와 동업할 리가. (웃음)
-상표등록을 한 건 그래서였나.
=그냥 이 개그는 나의 것이라는 표시다. 하도 떠들고 다녀서 다들 알더라. (웃음)
-‘양꼬치엔칭따오’에선 가짜 중국어를 하다 말고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연기를 마무리한다.
=실제 고향은 서울이다. 조연배우로서 좋은 무기를 많이 갖고 싶어서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를 연구했다. 두 지역 사투리를 정말 잘 쓰는 분이 성동일 선배다. <그린로즈>(2005) 때 같이 일해봤는데 그 뒤로 성동일 선배가 내 우상이 됐다. 어느 날 단막극에서 작은 역할을 맡으신 걸 보았는데 선배에게는 역할이 너무 작은 게 아니냐 했더니 ‘나한테 작은 배역은 없다’고 하시더라. 그 말이 가슴에 울렸다.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다른 레퍼런스들이 또 있다면.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들과 <미스터 빈> 시리즈는 꾸준히 본다. 찰리 채플린 무성영화 중에서도 <황금광시대>(1925)와 <시티 라이트>(1931)를 특히 좋아한다.
-서울예대 시절엔 개그클럽에서 활동하며 개그맨 선배들과 어울렸는데 배우로 데뷔를 했다.
=당시 잘나가던 선배들이 MBC 공채 개그맨 시험 콘티까지도 짜줬다. 못 살려서 똑 떨어졌지만. SBS 드라마 PD에게 캐스팅돼 정극으로 일을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고마운 일이다. 개그만 했으면 뮤지컬 무대에 대한 갈증을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르니까. 영역 확장이 쉽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데뷔작 <나 어때> 이후 활동이 뜸했고 2000년대 들어 부쩍 뮤지컬 작품이 늘었다.
=연기는 계속하고 있었는데 일이 안 풀리는 단계였다. 연예인병이랄까. 정작 공부는 안 하고 세상 탓만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막역한 동료인 정성화씨가 먼저 무대로 활동폭을 넓히고 내게도 권했다. 이렇게 놀라운 곳이 있었는지 미처 몰랐다. 그 뒤로 쭉 무대에 올랐다. 어디에도 기댈 수 없고 혼자 자신을 끌고 가야 하는 힘든 필드다. 공부를 많이 해야 했다.
-잘 안 풀리던 때엔 뭘 하며 시간을 보냈나.
=정성화씨와 조그만 작업실을 차려서 둘이 뮤지컬 대본도 많이 썼다. 물론 둘만의 것으로 끝났지만. (웃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다를 수 있단 걸 알았다. 하고 싶은데 역량이 안 된다면 그건 욕심인 거다. 누구라고 나만큼 노력을 안 하겠나. 지금의 나를 잘 다듬어서 더 빛나게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괜히 사이즈도 안 맞는 XL 옷을 입으면 남들이 걷어 입어라, 줄여 입어라 간섭하게 된다. 그냥 잘 맞는 사이즈를 찾아 입는 게 훨씬 멋져 보일 텐데.
-티스토리 블로그에 ‘양꼬치엔칭따오의 20가지 육아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육아 관련 글도 썼다. 생활감이 묻어나는 상세한 육아일기다.
=얼마 전엔 그걸로 책 쓰자는 제안도 들어왔다. 아내가 자연분만을 하면서 병원에 소속된 프로그램을 함께 들었다. 아빠들이 같이 들으면 참 좋겠더라. 주변에도 예비 아빠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접근하기 더 쉬울 것 같다. 우리 집의 경우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가야 하는데 경제적으로 부담돼 내가 직접 돌보게 됐다. (웃음) 열심히 아기를 돌본 결과로 아기가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게 되면 그 기쁨이 굉장하다.
-연예인으로서 가족의 근황을 공개한다는 데 부담은 없었나.
=나의 육아 경험담을 공유하고 싶기도 했고 더 많은 아빠들이 육아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기들이 예뻐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유명해지면서 어떤 책임감도 생겼다. 공중도덕도 더 잘 지켜야 될 것 같고. 그런데 그전에 내가 우리 아기들의 거울이란 걸 알게 돼 스스로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진 부분도 있다.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기로 인해 사람이 바뀐다는 게 참 신기하더라.
-‘월세 유세윤’ 프로젝트의 <평양냉면> 콜라보레이션에 참여해 음원도 냈다.
=그 프로젝트 재밌겠다고 전에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곡 나왔으니 들어보라더니 내 파트의 가사는 내가 써오라고 하더라. 사실 나는 평양냉면도 자주 안 먹는데. (웃음)
-이후 계획은.
=올리브TV의 음식 예능 <비법>을 시작한다. 요리 못하는 다섯 패널이 요리 잘하는 일반인의 레시피를 따라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요리를 좀 하는 편이긴 한데 모시는 일반인들이 워낙 선수셔서. (웃음) 다음주가 첫 녹화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을 알아가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좋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
한국 초연 10주년 기념 <맨 오브 라만차>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지하감옥에 수감된 죄인 세르반테스가 감옥 안에서 벌이는 연극을 그린다. 라만차에 사는 알론조는 자신을 돈키호테라고 여겨 시종 산초를 데리고 모험을 떠난다. 알론조는 하녀 알돈자를 고귀한 여인 둘시네아라고 찬양하고 알돈자는 그의 정성에 감복해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둘은 끝내 무너지고 만다. 이번 공연은 한국 초연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정상훈은 지난 시즌에 이어 <맨 오브 라만차>에서 산초 역을 연기한다. 괴팍한 주인을 따라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도 산초는 절대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는다. 왜냐고? 산초의 대사를 빌리자면,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