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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독주, 짜릿한 협주, <알리>
2002-03-14

마이클 만 감독, 윌 스미스 주연의 <알리>

● 서부극의 시대가 지나간 지금, 할리우드가 역사를 대변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다. 첫째는 위대한 인간의 전기영화를 통해서이며 두번째는 특정 사건을 전체적이고 생생하게, 제법 사실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세번째는 한 가지 주제를 따라 허구와 인공물을 잔뜩 가미한 테마파크를 만듦으로써다. 이 세 가지 길들은 한번에 하나씩 사용되는 것은 아니고, 함께 뒤섞임으로써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서로를 이리저리 비옥하게 만들어준다.

요즘 들어 상당히 성공적인 이런 역사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여러편 나오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마이클 만의 <알리>는 보기에도 즐겁고 또 사려깊게 만들어진 작품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놀라운 인간 중 하나였던 알리의 삶을 훌륭히 그려낸다. 이 영화를 특히 빛나게 해주는 것은 배우 윌 스미스다. 헤비급 챔피언의 상징인 무하마드 알리 역을 맡아 근육을 잔뜩 붙인 커다란 덩치와 설득력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 그는 배역에 대한 적절한 자신감을 풍기며 독주한다.

만 감독은 노련한 <인사이더> 스타일의 영웅적이고 저널리스틱한 방식으로 알리의 생애를 관객에게 보고하는데, 이는 단순한 폭로가 아니라 생동감있게 흐르는 이야기다. <알리>는 생기있는 카메오들로 붐비며, 정확하게 잘 계산된 반주를 밑에 깔되 이를 효과적으로 은폐하는 전염성 강한 영혼의 박동을 흘려넣고 있다.

영화의 첫 절반은 근사하게 서서히 펼쳐진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첫 한 시간은 더 근사하다. 마이클 만은 샘 쿡의 나이트클럽 공연장면과 영웅의 어릴 적 모습을 빙글빙글 휘두르며 번갈아 보여주는 전율스런 몽타주로 영화를 시작한다. 이 몽타주는 1964년 2월, 절대 그 누구도 깰 수 없다는 챔피언 소니 리스턴과의 알리 첫번째 타이틀전으로 이어진다. 길지 않은 인생 여러 단계에서 묘사됐듯이, 청년 캐시어스 클레이는 개체량을 재는 순간까지도 말수가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리스턴의 얼굴에 대고 랩에 가까운 말의 공격을 쏟아낸다. “소니 리스턴, 넌 챔프가 아냐! 이 똥멍청아!(You’re not a champ! You’re a chump!) 나비같이 날아 벌처럼 쏘아주겠다! 돈을 잃고 싶은 놈들만 소니한테 걸어! 덤벼, 임마, 덤벼!”

만은 영화 첫머리를 몇개의 주요 결전장면들로 만들고, 팍 고개를 숙여 빠져나오며 춤추듯 움직이는 알리 스타일의 액션 무도법을 심혈을 기울여 묘사한다. 152분을 통틀어 이보다 더 짜릿한 흥분을 주는 순간은 없다. 당연하다. 캐시어스 클레이의 세계챔피언 도약이란, 케네디 암살 여파와 비틀스 미국 입성과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개봉이라는 당시의 어마어마한 사건들 중에서도 마음을 특히 사로잡는 사건이었다. 이리하여 새로이 등극한 이 챔프는 자신의 ‘노예이름’을 버리고 이슬람으로 돌아서며 공개적으로 말콤 엑스와 형재애를 과시하는 등 자신의 틀을 즉각 깨나간다.

알리-말콤 관계는 스파이크 리의 전기영화 <말콤 X>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만은 말콤 역을 맡은 마리오 반 피블스의 믿음직한 연기를 통해 이를 묘사해낸다. 진짜, 윌 스미스-마리오 반 피블스의 캐스팅 앙상블은 너무나도 눈부셔서, 다른 돋보이는 배우들, 제프리 라이트(경기장의 사진작가 하워드 빙햄)조차 영화의 멋진 리듬 속에 그저 사라져버릴 지경이다(제이미 폭스의 드류 분디니 브라운과 미켈티 윌리엄슨의 돈 킹 그리고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손지 클레이 등 돋보이는 조연들이 많이 나온다).

<알리>는 알리의 가장 중요한 두 타이틀매치인 64년의 리스턴전과 10년 뒤의 조지 포먼전을 영화 처음과 끝에 두지만, 덜 알려진 알리의 첫 아프리카 방문을 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전조를 깔며 자이레 클라이맥스(알리-포먼 전)를 차근차근 준비해나가고, 이 영화의 3분의 1가량을 베트남전 참전거부를 외친 가장 유명한 단일인물로서의 그의 삶에 바친다. 이는 마이크 마키스의 책 <구원의 노래: 무하마드 알리와 60년대 정신>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초점을 맞춘 것인데, 이중 많은 부분이 멋진 비음을 섞은 존 보이트(하워드 코셀)의 놀라운 연기에 의해 영화에 소개된다.

그런데 불행히도 바로 여기부터 이 영화는 첫 한 시간 동안 보여준 풍요로운 컨텍스트들을 잃어간다. 예를 들어 영화는 알리의 반전 주장과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진 마틴 루터 킹의 미국 정부정책 공격, 이 두 사건 사이의 “스캔들”과 관계에 대해 되짚어볼 여유가 없다. 그리고 알리의 반전운동이, 특히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다른 흑인 운동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살펴볼 겨를이 없는 것이다. 역사적인 질감도 많이 경감되었다. 알리가 챔피언에 다시 도전한 1974년은 닉슨이 물러나고 <대부2>가 개봉되는 등 황홀한 사건들이 특히 많았던 해인데 말이다(결전 전 알리가 한 말, “닉슨이 물러난 걸 보고 세계가 놀랐을 것 같소? 진짜 놀랄 일은 따로 있소, 내가 조지 포먼을 눕힐 때 가서 보쇼”는 영화에서 영리하게도 빠졌다).

어쨌든 여전히 영화는, 포먼을 8회전에서 갑자기 KO시키는 천재의 전략을 빛나게 조명함과 동시에, 아주 설득력있게 알리를 세계의 인물로 그려낸다. 포먼을 때려눕힌 이 결투는 20세기 스포츠 사상 아마도 가장 황홀한 매치였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액션은 그 자체만으로 많은 것을 설명한다. 스미스는 그가 연기하는 배역 그 자체라고 할 만치 훌륭했지만, 어떻게 보면, 배우는 자신의 연기만 남기고 옆으로 물러서버린다. 계산과 순수, 떠버리 익살과 진지함, 달콤함과 강인함의 모순적인 결합은 알리라는 인간의 놀라운 인간성을 특징지워주는 자질들이며 이는 노련하게 잘 묘사되었지만, 결국에 가서는, 미스터리로 남는 것이다.짐 호버먼/ 영화평론가·<빌리지 보이스>(<빌리지 보이스> 2001.11.5.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